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 리뷰

영화적 이미지와 말하기 방식

by MIA
maria_po_fin_개봉일관람등급O.jpg


*리뷰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마리아' 되기


마리아는 배우의 꿈을 갖고 영화 촬영 현장에 뛰어들어 배우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가 촬영 방식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자, 감독은 그저 으레 그렇게 해왔다는 말로 사과를 대신한다. 감독의 해명은 예술관이 아닌 이기적인 변명일 뿐이었다. 영화 배우로서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마리아에게 기쁨보단 괴로움이 더 컸다. 그때 받은 트라우마는 마리아를 평생 따라다니며 마리아의 내면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한 시간을 통과해 온 주인공이 자신의 입으로 과거에 관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가령 그는 다음의 영화 현장에서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을 거절하고 불필요한 인터뷰를 거절한다. 그리고 배우로서 바라는 점을 묻는 인터뷰어에게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달한다. 겪지 않아도 되었을 시간이라면 좋았겠지만 상처 없는 인생은 없듯, 마리아 또한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되어가는 시간을 감내하고 비로소 배우로서, 자기 자신으로서 마리아로 거듭난다.



2 (1).jpg


7.jpg


2) 영화적 이미지


특히 영화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시각적인 분위기를 국가 단위로 구분하는 것이 정확한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한국 영화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색감과 장면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처럼, 공간은 일상 속 현실임이 분명한데도 독특한 색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비견할 만하다고 느꼈다. 그만큼 세밀하게 연출된 공간감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이질감이 눈에 띄었다. 한국 영화에서 흔히 접하는 정서적 밀도나 드라마적 서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영화는 시각적 경험 자체를 즐기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또한 전체적으로 주연 배우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가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 굉장히 좋다고 느꼈다. 외모적으로나 연기적으로, 현실에 맞선 외롭고도 용기 있는 주인공 자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영화가 굳이 특이한 구도나 인공적인 색감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유는 카메라가 배우들에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하기도 했다.


영화는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몸짓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덕분에 관객으로서 인위적인 연출보다도 배우들의 연기와 존재감에 몰입하며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소재가 주인공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도 영화의 전략이 돋보였다.



6.jpg


3) 영화의 말하기 방식


한 가지 아쉬움은 이야기 전개 방식을 이보다는 색다르게 기획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에서 비롯한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시간순으로 그리며 불필요한 암시나 돌려말하기 없이 메세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편집 방식 때문인지 영화가 주인공의 일대기 중에서 주요한 부분을 뽑아 차례대로 나열하고 그 자체를 충실히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는 목적인가 싶었지만 더 나은 대안이 있었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물론 어떤 영화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배우들의 연기력과 아름다운 미장센이 돋보일 수 있도록 섬세하고 특별한 연출 방식이 더해졌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영화가 ‘영화 현장에서 여성의 위치’를 그린다는 메시지를 이미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다음 단계의 영화적 성취를 더 노려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플롯을 극적으로 활용했다면 같은 이야기라도 훨씬 다채로운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마리아가 인터뷰에서 감독의 조건으로 “투명하고 정직하게, 날 진지하게 대해달라”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녀가 그간 겪어온 고통을 가늠하게 만드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 장면을 영화 초반부에 배치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되면 뒤이은 장면들의 순서와 맥락도 달라지고,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역시 바뀌었을 것이다. 관객이 느끼는 감정과 몰입의 깊이 또한 조금 더 진화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적 이미지와 말하기 방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단순히 이야기를 보는 재미를 넘어서 화면 속에서 느껴지는 정서와 분위기, 그리고 영화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한다.




**이 글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로 작성하였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553





작가의 이전글[Review] 경험 위에서 그림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