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험 위에서 그림 말하기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리뷰

by MIA
[표1] 메트로폴리탄(전면개정판).jpg



도슨트의 미술관 소개서, 그림 해설집 등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에 관해 말하는 책들이 점점 더 늘어가는 추세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아무래도 저자의 개인사적 맥락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전도 유망한 <뉴요커> 직원이었던 저자가 직장을 관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은 건조하게 바라보면 꽤 적절해 보이는 책의 마케팅 포인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런 그가 말하는 그림은 어떤 힘을 갖게 되는지 궁금해져 책을 보았다.



(75)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빙빙 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 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을 느끼는 것만 허락되었다. …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 저자의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를 잃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누군가를 잃고서 나의 진짜 그림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여겨지는 단락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한 표현 말고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좀 더 와닿는 이유는 나는 내가 스스로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묘사한 경험과 비슷하게도, 이건 그림이라는 매체가 가진 성격이자 힘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림은 침묵을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서성거리게 하고 교감하고 달콤한 슬픔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 속에 있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림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의 경험을 이해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뒤에서 소개되는 그림들 또한 대개 그런 경험 위에서 묘사되거나 서술된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53)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더한 총합은 그보다 훨씬 큰 것, 바로 톰에 관한 기억을 만들어내서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된다. 그 기억은 티션의 초상화와 매우 비슷하다. 밝고,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퇴색하지 않는 이미지 말이다.


티션(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의 애칭)이 그린 그림, <남자의 초상>에 관한 해설 부분을 예로 들면, 처음에는 이런 방식의 묘사가 금방 와닿지는 않았다. 그림 감상에는 관객 각자가 처한 고유한 상황이나 경험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는데, 이 책에는 이렇듯 꽤나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묘사가 꽤 많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해설자의 경험이 때론 그림에 앞서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과연 맞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림이 가진 역사적 맥락과 기법, 작가의 의도에 근거하여 그림을 보는 방식 외에, 혹은 그 단계를 넘어선 이후의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그림이 말해지는 시점은 언제나 관객이 그림을 보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림이 그려진 맥락과 전혀 관련 없는 개인사가 그림을 뒤덮는 현상이 항상 옳을까? 이에 관해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관객 개인이 가진 정서는 자체로 고유하기에 가치가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56) 많은 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이 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점점 명확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 현실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


예술과 작업에 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부분도 많아 좋았다. 특히 위 문단을 보고 나서 요즘 구상하는 작업에 관한 생각이 새로워졌다. 나의 작업은 주로 인간의 감정과 연관이 있고 대개 슬픔과 그리움을 향하는 내용을 담곤 하는데, 다음 작업도 비슷한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구상할 때마다 드는 의구심이란 이런 것이다. ‘누가 원할까?’ ‘이 얘기가 꼭 필요할까?’ 같은 것들. 하지만 그런 소재나 주제를 ‘선택하고야 마는’ 이유는, 하고 싶은 얘기가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용이 아니라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는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걸’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때가 자주 있다.



(325-326) 옛 기독교 예술품과 거기에 깃든 빛을 발할 정도로 선명한 슬픔이 좋다.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이 그림이 톰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의 이런 부분은 성스러운 기능을 수행해서 우리가 이미 밀접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해한 것에 가닿게 해준다. …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저자는 미술관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작품 몇 점을 꼽는다. 그 중에서도 제일 필요로 하는 그림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결론을 내리며 위와 같이 말한다. 저자를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단 하나의 경험은 그가 그림을 보고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순간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자주 비슷한 맥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마지막 챕터까지도.


이 책은 그런 방식으로 그림을 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의 여정을 그대로 담은 듯하다. 곳곳에 실린 명화를 모사한 도판도 매우 매력적이다. 이 리뷰에 적지 못한 자세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가득 담겨 있다. 미술관 곳곳을 탐험하듯 생생하게 묘사된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Screen Shot 2025-10-10 at 9.15.26 PM.png




**이 리뷰는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로 작성하였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845

작가의 이전글[리뷰] 아름다운 사진, 그리고 사진집을 만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