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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 Oct 30. 2022

편식이 준 선물

저는 해산물만 아니면 다 괜찮아요.

"점심 뭐 먹지?"

"저는 해산물만 아니면 다 괜찮아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산물에서 느껴지는 바다 비린내가 싫었다. 특히 몸에 좋다는 등 푸른 생선들이 내겐 견디기 힘든 매스꺼움을 선사했다. 식탁에 생선 구이라도 올라오는 날은, 그 냄새 때문에 밥을 먹기 힘들었다. 구이뿐 아니라 멸치 육수를 사용한 된장찌개, 굴이 들어간 김치, 멸치 볶음 등 아주 조금이라도 바다 향이 느껴지는 음식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식자재 절반을 차지하는 해산물을 못 먹는 사람이 되는걸 원치 않으셨던 부모님은 편식 교정법을 총동원했다. 흰 밥 사이에 생선살 숨기기, 돈가스처럼 튀기기 등. 유 여사 작전이 먹히지 않으면 강 선생도 거들었다. 군대 가서 반찬 남기면 얼차려를 받는다, 나중에 처가댁에서 생선 구워주면 안 먹을 거냐 와 같은 논리였다. 물론 그러한 말들도 내 기호를 바꾸진 못 했다. 그들이 더욱 강하게 나를 몰아붙일수록 나도 더 완강하게 거부했다. 


  내가 해산물을 안 먹는 것은 편식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맛이 없다'는 이유는 아니다. 나는 비린 맛에 매우 민감하며 조금만 느껴져도 구역질과 함께 뱃속에 있어야 할 것들을 눈으로 보았다. 이 과정은 매우 고역스럽고 주변 사람들 입맛도 떨어뜨리므로 부모님도 어느 순간 내게 해산물 권하길 포기하셨다. 그렇다고 모든 종류의 해산물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게, 새우와 같은 절지류, 김, 미역 등의 해조류 그리고 오징어, 문어 등은 내 기준으로는 비린맛이 거의 없어 먹을 수 있다. 어묵탕도 가능하며 (캔) 참치도 잘 먹는다. 물론 새우깡과 자갈치도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의외라고 생각하는 점은 내가 '회'를 먹는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혓바닥이 자본주의라느니 비싸고 맛있는 것만 골라먹는다느니 하며 놀렸다.


 생각해보면 살아 있는 물고기들에겐 비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바다도 강도 물고기가 많이 산다면 물이 맑고 깨끗하단 뜻이지 냄새가 나진 않는다. 사실 원래 물고기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죽고 나면  체네 염분 조절 역할을 해주던 TMAO (산화 트리메틸아민)가 더 이상 산소 공급을 받지 못하고 분해돼 TMA(트리메틸아민)가 되고, 이것이 바로 비린내의 주범이 된다. 즉 물고기는 죽은 시점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비려지는 것이다. 회가 비리지 않은 이유는, 활어 상태의 물고기를 바로 썰어 제공하기 때문에 TMA가 매우 적어서이지, 내 혓바닥의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다. TMA는 물에 잘 용해되며 염기성이기 때문에, 생선은 조리 시 흐르는 물로 깨끗하게 씻고, 레몬즙과 같은 산성을 띠는 소스를 사용하면 비린내를 줄일 수 있다. 


 내 경우 TMA를 수용할 수 있는 역치가 일반인에 비해 매우 낮아, 아주 조금의 비린맛만 느껴져도 구역질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편식은 나쁜 것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나를 바라봤던 어른들은, 내 잘못된 식습관을 나무라며 계속해서 해산물을 강요했고, 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나 큰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나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 내겐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이 기억은 무의식 깊숙한 곳에 각인돼 이후 내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타인에게 (그들이 싫어할 거라 예상되는)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그들의 행동,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게 됐다. 어떤 사람이 상식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내 기준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할 때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 한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편식은 안 좋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여행 떠나길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내겐 음식의 다양성이 주는 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슬픈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 편식은 내게 보이는 것, 상식적인 것, 옳다고 여겨지는 것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생각의 근육을 만들어 줬다. 만약 내가 편식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고치기를 강요당하고, 그것을 시도하고 끝내 실패한 경험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편식은 내 눈에 투영된 이미지 너머에 있을지 모를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을 알려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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