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수능 금지곡으로 알려진 이 현상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노래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현상을 의미한다. 1978년 영국 소설가 데스몬드 배글리가 소설 '플라이웨이'에서 처음 언급한 용어다. 전 세계 사람들의 98%가 이 현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오래 지속되며, 가사가 있는 노래가 73.7%, 광고 음악이 18.6%, 기악곡이 7.7%를 차지한다.
90%의 사람들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경험하고 있으며, 네 명 중 한 명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경험하곤 한다. 이게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귀벌레 증후군’이다. 수능 전에 절대 들어서는 안된다고 해서 일명 ‘수능 금지곡’으로도 불린다. 심리학에서는 ‘상상음악’ 또는 ‘비자발적 음악의 형상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샤이니의 〈링딩동〉이 악명 높다. 「프로듀스 101」의 메인 테마 〈Pick Me〉 역시 그에 못지않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는 세대를 아우르는 수능 금지곡이다. 요즘은 로제의 〈아파트〉와 케이데헌의 〈골든〉도 한몫 거들고 있다.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이 노래에 한 번 빠져들면 잠시나마 자아도 잊고, 현실 세계마저 잊는 묘한 초탈을 경험하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노랫말이 잠시 반복되다 어느 순간 사라진다. 좀 귀찮긴 해도 그리 문제 될 녀석은 아니다. 그러나 집중력이 낮고 뇌의 근력이 약해진 사람들에게는 다르다. 특히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인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제가 랩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한 번 꽂히면 공부할 때마다 자꾸 랩의 반복되는 구절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당연히 공부에 집중이 1도 안 되고요. 성적은 바닥이고, 집중이 안되기 때문에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또 우울해지 고를 반복합니다. 정신분열증인가요? ADHD인 거 같기도 하고, 심각하면 정신과에 한 번 가보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 도와주세요.
인터넷 의학상담 코너에 올라온 내용이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의 절박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책을 아무리 읽어도 글자는 눈을 스쳐 지나갈 뿐 뇌 속에 침투하는 일은 없다. 뇌 속은 이미 ‘아파트’가 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에게 패턴 인식은 곧 생존이었다. 풀숲이 흔들리는 패턴을 보고 맹수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발자국 모양으로 먹잇감을 추적했다. 계절 변화를 읽어 씨앗 뿌릴 시기를 정하고, 별의 움직임으로 길을 찾았다.
매번 새롭게 생각할 필요 없이 과거의 패턴을 기억해 두었다가 비슷한 상황에 빠르게 적용하는 것 ㅡ 이것이 인간의 뇌가 진화시킨 생존 전략이다.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가며 계산하는 것보다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패턴을 완성한 후 빠르게 추론하는 편이 훨씬 빨랐다. 사자가 덤벼드는데 "저 무늬가 사자 무늬인지, 호랑이 무늬인지 하나씩 확인해 볼까?"라고 생각했다간 사자의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되어버린다.
이 능력은 지금도 우리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의미 없는 소음이나 무작위 이미지 속에서도 반드시 질서를 찾아내려 한다.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의미 없는 무작위 낱말에서 규칙을 찾아내어 말을 만들어 낸다. 라이온 킹의 OST를 들으며 “아 그랬냐~ 발발이 치와와~ 스치고~ 왜냐하면 왜냐하면~”처럼 전혀 다른 외국어에서 비슷하고 익숙한 우리말을 찾아낸다. 뇌가 어떻게든 패턴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유용한 능력이 수능금지곡 앞에서는 독이 된다는 사실이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은 우리 뇌가 가장 좋아하는, 가장 명확한 패턴이다.
수만 년 동안 생존을 위해 갈고닦은 이 본능이, 지금은 공부를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귀벌레 증후군의 정확한 원리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도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다. 다만 일부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는 음악을 일종의 녹음기처럼 저장해 두었다가 때때로 무작위로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 결과 특정 멜로디가 의도와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후렴구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는 뇌가 쉽게 기억하고 오래 붙잡아 둔다. 이런 음악은 한 번 들으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지고, 어느 순간 자동으로 떠오르기 쉽다. 이 현상은 스트레스나 불안 상태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긴장이나 감정적 압박이 커질수록 뇌는 익숙한 자극을 더 자주 떠올리는데, 그 과정에서 저장된 음악이 자동으로 재생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귀벌레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뇌의 음악 저장·재생 시스템과 감정 상태가 함께 작동하면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에서는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귀벌레 현상을 더 자주 경험하는 경향이 보고된다.
물론 귀벌레가 나타나는 원인은 하나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기억, 감정, 스트레스, 지루함, 집중 상태 같은 여러 요인이 서로 얽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특정한 이유 하나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귀벌레 증후군이 특별한 이상 현상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뇌의 자연스러운 작동 방식이라는 것이다.
첫째, 뇌가 한가로울 때
운전하거나 잠들기 직전, 지루한 수업처럼 마음이 한가로워지면 뇌는 빈 시간을 채우려고 노래를 재생한다. 뇌가 "할 일이 없네? 그럼 노래나 틀어볼까?"하고 자동재생을 켜버리는 것이다. 인지과학자들은 대화를 하지 않고 침묵할 때 귀벌레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음악을 기억하고 재생하는 뇌 부위가 말하기를 담당하는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스트레스와 불안 상태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귀벌레를 더 자주 경험한다. 어려운 과제를 앞두면 긴장이 높아지고, 뇌는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려고 익숙한 음악을 떠올린다. 시험 기간에 더 심하게 노래가 맴도는 이유다.
셋째, 뇌가 과열되었을 때
정신노동자, 감정노동자, 밤샘 알바생처럼 두뇌를 혹사하는 사람들에게도 귀벌레가 많다. 뇌가 너무 피곤하면 새로운 정보의 입력과 출력을 막기 위해 억지로 기억 속 음악을 재생시킨다. 꺼지지 않는 컴퓨터처럼 뇌가 피곤해지면 뇌는 익숙한 노래로 생각을 차단한다.
넷째, 강박 성향과 스트레스 회피
강박 경향이 있으면 좋아하는 음악은 물론 평소 싫어하는 음악도 반복될 수 있다. 참거나 다른 생각을 안 하면 자꾸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고, 뇌는 그걸 막으려고 음악을 강제 재생한다. 귀벌레가 일종의 현실 도피인 셈이다.
귀벌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하이먼 주니어 학자가 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참가자의 2/3가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를 좋아했다. 긴장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싫은 노래는 잘 맴돌지 않는다. 뇌가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작용으로 귀벌레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수능이나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면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공부할 때 우리 뇌는 엄청난 일을 한다. 글자를 읽고, 의미를 파악하고, 이전 내용과 연결하고, 기억에 저장한다. 이 모든 과정에 작업 메모리가 동원된다.
작업 메모리는 뇌의 작업대다. 이 작업대 위에서 우리는 정보를 일시적으로 올려놓고 가공한다. 문제는 이 작업대가 그리 넓지 않다는 데 있다.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음악이 끼어든다.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다. 특히 가사가 있는 노래라면, 뇌는 그 가사를 언어 정보로 인식하고 처리하려 든다. 리듬과 멜로디 역시 청각 정보로서 뇌의 주의를 끌어간다.
"괜찮아, 나는 음악 들으면서도 공부 잘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뇌과학은 냉정하게 말한다. 인간의 뇌는 두 가지 복잡한 인지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팀은 멀티태스킹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작업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매번 전환할 때마다 집중력을 잃고 다시 집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이렇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 노래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 잠깐 그쪽에 주의를 빼앗긴다 → 다시 문제로 돌아온다 → 또 멜로디가 신경 쓰인다 → 다시 문제로...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일반적인 음악도 이 정도인데, 수능금지곡은 훨씬 악랄하다. 앞서 말했듯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은 우리 뇌가 자동으로 패턴을 인식하고 거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반복되는 후렴구는 귀벌레 현상을 일으켜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게 한다. 결과는 어떨까? 작업 메모리의 절반 이상이 그 노래에 할당된다. 영어 지문을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쿵쿵따 쿵쿵따"가 재생되고 있다. 수학 공식을 외우려는 데 뇌는 그 노래의 다음 가사를 예측하느라 바쁘다.
더 심각한 건, 노래를 끈 뒤에도 이 효과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다가 갑자기 수능금지곡이 떠올라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는 게 익숙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것과 효율적이라는 것은 다르다. 음악을 들으며 공부할 때와 조용한 환경에서 공부할 때, 같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남는 정보의 양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음악을 들으면서도 공부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음악 없이도 집중할 수 있을까?"로.
음악이 집중력을 방해한다면, 아예 소리를 차단하고 공부하는 게 최선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완전한 무음 상태도 때로는 집중을 방해한다. 너무 조용하면 시계 초침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옆 사람의 숨소리까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또한 갑자기 들리는 작은 소음에도 크게 놀라 집중이 끊긴다.
중요한 건 '소리의 유무'가 아니라 '소리의 종류'다.
연구자들은 집중력에 도움이 되는 소리를 찾아냈다. 바로 '백색소음'과 '자연의 소리'다. 이런 소리들의 공통점은 패턴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뇌가 그 소리에서 규칙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결국 뇌는 그 소리를 배경으로 밀어 두고 다른 일에 집중한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보다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된다고 말한다. 카페의 적당한 웅성거림이 다른 잡음을 가려주고, 일정한 수준의 각성 상태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너무 조용하면 졸리고, 너무 시끄러우면 집중이 안되는데 카페는 딱 그 중간 지점에 있다.
방법 1: 껌을 씹어라
영국 레딩대 연구팀이 98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마룬파이브의 중독성 강한 노래를 들려주고, 세 집단으로 나눴다.
첫 번째 집단: 가만히 있기
두 번째 집단: 손가락으로 테이블 두드리기
세 번째 집단: 껌 씹기
결과는 껌을 씹는 집단이 다른 두 집단보다 노래가 떠오를 확률이 3배 줄었다. 음악을 듣고 기억하는 뇌 부위가 말하기를 담당하는 곳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껌을 씹으면 귀벌레 현상을 만들지 못한다.
방법 2: 적당한 난이도의 인지 과제
뇌 인지기능을 활성화하면 머릿속에서 맴도는 노래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단어를 뒤집는 게임 '아나그램'이나 수학 퍼즐 '스도쿠'를 했을 때 귀벌레 현상이 줄어들었다.
주의할 점: 너무 어려우면 안 된다. 소설 읽기나 너무 어렵지 않은 퍼즐 수준이 적당하다.
방법 3: 심호흡 후 생각 멈추기
시험 중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일단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생각 자체를 그만두는 것이 낫다. 억지로 머릿속을 정리하려 할수록 귀벌레 현상만 더욱 심해진다. 그래도 계속 맴돈다면 최근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사건이나 매우 화가 나는 상황을 떠올려라.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방법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잠시 뇌를 환기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방법 4: 곡의 마지막 부분 떠올리기
그 곡이 끝나는 맨 마지막 부분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뇌는 완결된 곡은 다시 재생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방법 5: 느린 속도의 음악 듣기
반복되는 음악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뇌가 끌려간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느린 음악은 지루하다고 판단해 더 이상 떠오르지 않게 된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시도해 볼 만하다.
방법 6: 가장 확실한 방법 - 아예 듣지 않기
가장 완벽한 대처법은 수능 몇 주 전부터 아무런 노래도 듣지 않는 것이다. TV도 틀어서는 안 된다. 청각적인 소리가 아닌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멜로디는 지속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정말 오랫동안 아무 노래도 안 듣다 보면 억지로 떠올리려 해도 오래 맴돌지 않는다.
이상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명확한 한계가 있다. 이런 방법들은 대체로 정상적인 집중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귀벌레 현상에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우리 같은 집중력 고자들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집중력이 약한 뇌는 애초에 생각의 작업대가 좁다. 여기에 노래 한 곡이 들어오면 작업대의 절반이 순식간에 점령된다. 게다가 그 좁디좁은 작업대마저 잡다한 물건들로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래서 정작 올려두어야 할 '생각'은 발붙일 자리를 찾지 못하고 가장자리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껌을 씹고 퍼즐을 풀어 잠깐 조용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후렴구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 머릿속을 점령한다.
그렇다고 마냥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수능금지곡 탈출. 이건 단순히 머릿속 음악을 끄는 문제가 아니다. 진짜 집중이 무엇인지 훈련하는 것이다. 그 훈련은 공부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며 해야 할 수많은 일에서 강력한 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