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강원도에서 군생활 했다. 짚차 운전병이었던 나를 괴롭힌 건 고참들의 갑질도, 영하 20도의 동계검열도 아니었다. 빌런은 예민하고 꼬장꼬장한 40대 준위였다.
그는 나에게 주차를 어떻게 해야만 선탑자의 발걸음을 최소화하고 차량에 올라탈 수 있는지에 대한 주도면밀한 교육을 반복해서 주입했다. 심지어 대기업 회장님 수석 운전기사 수준의 완벽한 드라이빙 기술과 운전예절까지 요구했다.
회장님의 삶과 그를 모시는 분들의 직무능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는 나는 그의 요구에 맞춰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참들의 군기를 아득히 뛰어넘는 정신적 갈굼에 시달려야 했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정신적 압박감은 극에 달해 급기야 신체적 이상징후로 표출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틱장애였다. 멈출 수도, 조절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최대한 자제하다가 혼자만의 공간에서는 무한 헤드뱅잉을 하며 고장 난 두뇌의 욕구를 분출해야만 했다.
보직을 바꿔 갈굼에서 해방됐지만 끊임없이 끄덕대는 나의 머리는 통제할 수 없었다. 틱장애는 물귀신 마냥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제대 후에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었다. 눈치가 심한 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틱의 분출을 막았다. 그러다 사람들이 눈을 돌린 틈을 타 잽싸게 몇 번 연달아 끄덕이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생활하곤 했다. 다행히 음성틱이 아니라서 사람들 눈만 피하면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때 관심을 둔 게 명상이었다. 명상과 정신세계에 강력한 이끌림이 있었고, 책을 보며 이런저런 불교 참선을 따라 했다. 틱장애를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틱장애와 명상은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였고, 그 문제를 연관 짖는 어떠한 사례나 연구도 없었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심취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위빠사나를 만났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해하며 통찰하는 수행방식이었다. 이 수행법은 도저히 끊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나의 정체성에 착 달라붙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틱장애를 조심스럽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위빠사나 수행에 익숙해지면 몸의 변화에 아주 민감하게 된다. 의식하는 행동뿐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행동까지도 알게 되고,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조짐이 느껴진다. 이런 능력이 틱장애를 나의 몸과 분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목의 움직임이 사전에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그 느낌을 바라본다. '바라보면 사라진다'는 위빠사나의 격언처럼 사정없이 흔들고 싶은 그 떨림의 충동은 아주 잠깐의 파문만 일으킬 뿐 서서히 녹아 없어졌다. 그러다가도 해안가의 파도처럼 흔들고 싶은 충동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럴 때면 목에 힘 한번 빡! 주고는 또 가만히 바라본다. “집착을 내려놓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번뇌를 소멸하고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위빠사나의 가르침이 그대로 실행되는 경험이었다.
위빠사나 명상을 시작한 1년 후 나의 틱장애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 꺼떡대던 머리는 하루 서너 번 목에 힘을 빡! 주면 해결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틱장애와 귀벌레증후군. 이 둘은 집중할 수 없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그런 나를 위빠사나는 틱장애와 귀벌레 증후군에서 탈출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중력 고자’인 내가 앉은자리에서 열 시간은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몸과 마음의 변화에 민감해지면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뇌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게 됐다. 그전에는 공부 도중 몇 시간을 잡념 속을 헤매다 허망하게 지나버렸다. 그러나 위빠사나는 나에게 잡념을 허용하지 않았다.
방법은 같았다. 순간순간 끊임없이 밀려오는 잡념과 노래들을 '아 이런 생각, 이런 곡들이 들리고 있구나'라고 아무런 판단 없이 바라본다. 그러면 볼륨이 차츰 낮아지다가 어느새 꺼져버린다. 특별한 행위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생겨나면 바라보고, 다시 생겨나면 또다시 바라보고… 집착하지 않고, 끌려가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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