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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Aug 17. 2023

나의 바스크 친구들(3)

아쇼카펠로우-호세마리-

 Jose Maria Luzarraga. 호세 마리아 루자라가. 나의 두 번째 바스크 친구다. 지훈이란 이름이 한국에서 흔하듯, 스페인에서 호세 역시 자주 듣게 되는 이름이다. 호세는 MTA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으로 지난번 글의 주인공인 존의 담당 팀코치였다. 스페인의 대표 이름답게 MTA하면 호세를 떠올릴 만큼 MTA의 교육사업 전반을 담당,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교사들의 교사가 있듯, 팀코치들의 팀코치가 바로 그다.


 호세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거꾸로캠퍼스(이하 거캠)였다. 당시 거캠은 평창동에서 12명의 학생과 수업을 하고 있던, 생긴 지 몇 달 되지 않은 학교였다. 이 낯선 대안학교를 어떻게 알고 왔을까? 대답은 아쇼카에 있다. 첫 번째 글에서 언급한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정찬필)은 2016년 아쇼카펠로우로 선정되었는데 호세 또한 아쇼카펠로우라 서로 알 수가 있었던 것.

호세는 다른 팀코치와 함께 거캠을 방문해 학생들과 얘기를 나눴고, 이후 한국에서 몇 차례 더 만남을 가지며 거캠은 레인을, 레인은 거캠을 알아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거캠 졸업생들 중 일부는 매년 레인에 진학하고 있다.

미래교실네트워크, 아쇼카, 레인 등 생소한 용어들은 지난 글에서 언급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freehj21/149

 이후 존을 만났던 상하이에서 호세와도 두 번째 만남을 이어갔다. 일주일의 레인 취재를 끝낸 후 돌아가는 날, 작별의 포옹을 하며 내게 말했다.

Keep shining

지금까지도 종종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무엇보다 “Be shiny”가 아니어서 더 좋았던 말. 무엇이 되어라가 아닌, 현재 너의 멋진 모습을 잘 간직해.라는 짧은 메시지는 나의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힘은 큰 것이 아닌 이런 작은 디테일에 있다. 교육자의 입장으로 한마디 더 보탠다면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힘을 줄 때 진심으로 믿어주며 내뱉는 말 하나가 평생의 원동력이 되어 그 사람을 쓰러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사회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 있다. “넌 잘 되겠다.” 선생님에게는 스쳐 지나가며 건넨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믿게 되었다. 나는 잘 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호세의 말도 그랬다. “나는 반짝이는 사람이구나.”


 여기서 잠깐, 아쇼카와 아쇼카펠로우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호세에 대해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1편을 안 보고 2편만 봤을 때 내용의 퍼즐이 안 맞춰지듯, 이 글도 그런 단점이 존재한다. 혹시나 필요한 독자를 위해 이전 글도 첨부해 본다.)

 1981년 설립된 아쇼카는 지금까지 95개국에서 약 4천여 명의 사회혁신가(앙트러프러너)를 후원해 온 글로벌 커뮤니티 조직이다. 아쇼카는 해결이 어려운 사회문제를 기존의 틀을 깨며 해결하는 사회혁신가를 ‘아쇼카펠로우’로 선정한다. 총 5단계의 인터뷰와 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만큼 펠로우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호세는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을까? 아쇼카 홈페이지에서는 다음의 말로 호세를 설명한다.


 “교육에 새로운 비전을 정의하고 실현함으로써 팀프러너와 체인지메이커의 국제적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호세는 왜 교육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을까? 다양한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기업가였던 호세는 어느 순간 소진된 자신을 발견하고 인도로 떠나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곁을 지키는 봉사활동을 한다.


죽음의 순간을 지키며 깊은 슬픔과 고통을 느꼈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기도 했다고 말하는 호세


이 경험으로 그는 사회문제에 헌신하고자 마음먹는다.인도에서 돌아온 호세는 젊은 세대가 열정과 꿈과는 괴리된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긍정적인 사회 영향(은 맨 하단에 짧게 설명했습니다)을 기반으로 핀란드의 티미아카데미아 교육방식을 도입, MTA를 공동 설립하고 LEINN(레인)이라는 앙트러프러너십 학사과정을 만든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레인은 세상을 책으로 학습하는 대신 실제로 팀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한다. 그리고 이 팀은 4년간 유지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팀을 와해시킬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배우고 일하는 법, 나의 흥미와 재능을 최대한 찾고 아이디어로 만들고 실행하는 법을 배운다.(자세한 방법이 궁금한 독자들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분량이 길어질 수 있어 책으로 출간된다면 챕터를 분리해 넣으려 한다.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아쇼카펠로우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그가 갖고 있는 문제해결 전략이 다른 지역이나 상황에도 적용 가능해야 한다. MTA는 현재, 스페인, 독일, 한국, 멕시코, 중국에 11개 지역에 랩(lab)을 확산시켰고, 학사과정뿐 아니라 기업인들, 스타트업 및 사내 혁신가를 대상으로 한 석사과정, 대학과 연계한 체인지메이커 과정, 팀코치 양성과정 등의 프로그램을 국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럼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레인의 졸업생 중 50%는 사회혁신 분야에 참여하고 97%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일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1~2%만이 사회혁신 부분에 참여하고 유럽의 실업률이 20%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주목할 만한 결과이다. 하지만 교육자로서 나는 이런 정량적 수치만이 다가 아님을 안다. 졸업 후 일을 하지 않더라도 4년의 과정 동안 변화된 삶의 질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MTA 교육을 접한 사람들은 이 경험이 개인과 일의 영역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의 제자이기도 했던 서울 레이너(LEINNer, 레인 재학생)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살아내야 함을 배우고 있어요”


 2008년 MTA 설립 이후 약 15년간 호세는 사회혁신가로 헌신하는 삶을 살며 많은 사회와 교육문제를 해결해 왔다. 한국인인 내가 보기에는 가족에게도 충실했지만(가족과의 저녁약속이 있으면 회의 중간에도 집으로 간다.) 개인과 가족의 삶을 돌보는 데는 소홀했고 본인 역시 지쳤다고 한다.


그러던 중 혈액암이 찾아왔다.


 한국에 올 때도 비행기 시간 앞뒤 10분의 틈도 없이 빡빡한 일정으로 전 세계를 다니고,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하는 제3세계 청년들을 위해서 아프리카로 MTA를 확장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단절된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대륙을 쉽게 넘나들던 때의 상태는 아니었다.


 올해 1월 한국에서 LEINN을 리딩하고 있는 신랑의 스페인 출장에 동반하면서 호세와 함께 빌바오에서 만나기로 했다. 실제 만났을 때의 호세는 훨씬 깊은 울림과 그간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준다. 그래서 호세를 꼭 만나고 싶었다. 특히 한국에서 레인을 운영하는 신랑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스페인 출발 3일 전, 이비자에서 가족과 지내고 있는 호세가 빌바오로 올 수 없다고 전했다. 담당 주치의의 불허.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지만 어린아이의 면역력을 지닌 호세에게 아직 ‘이비자 밖은 위험해’인 상태였다.


 대신 그는 우리를 이비자로 초대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기회가 될 때 만나야 한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클럽메카로 알려진 이비자로 향했다. 겨울의 이비자는 클럽의 ㅋ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평온했다. 제주와 발리의 색을 팔레트에 조금씩 섞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호세가 12살 아들과 함께 직접 공항으로 데리러 왔다. 겨울이지만 이비자의 뜨거운 태양에 적당히 그을린 모습이었다. 다행이었다. 충분히 건강해 보였다. 살이 너무 많이 빠져 헐쑥해졌던 얼굴에도 살이 붙었다.


“You look good and healthy! I was worried a little bit, but now I’m so relieved.”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걱정했는데 안심이 돼.”


 호세를 보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 웃으며 말했지만 나의 마음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누군가의 건강의 회복이 이토록 반갑게 느껴지는 뜨거운 경험이었다.

 호세의 가족과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우리 셋은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국에서 레인을 이끌고 있는 신랑은 호세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와인과 치즈가 듬뿍 들어간 바게트를 먹으며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는 내용도 모르는 부분도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나고 자리를 옮겼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간판이 있는 특이한 상점이었다. 옷부터 소품들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넘쳐나는 진지했던 대화에 밸런스를 잡아주는 유쾌한 장소였다.


집으로 가는 길, “크리스티나가 좋아할 것 같은 곳이 있는데 잠깐 들렀다 가자.” 라며 한 곳을 더 방문했다. 수공예 제품을 판매하는 디자인 숍. 신랑과 나는 약간 놀랐다.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호세가 어떻게 내 취향을 알았지?’ 호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상대를 잘 파악한다는 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볼 수 없는 영역이다. 관찰하고 기억하는 것. 어렵지 않지만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마 레인운영과 관련된 내용이 중심이 되어 있던 점심의 대화에서 살짝 빠져있는 나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작은 일상의 순간에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행하고 있었다. 서울 레이너가 했던 말이 이런 것 아닐까?


 다음날은 한국의 설 당일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로 시작하는 영상편지를 우리 부부와 함께 찍어 한국의 MTA 식구들과 아쇼카코리아 대표에게 보냈다. 아쇼카코리아 대표에게 보내는 메시지에는 한국에서의 MTA운영과 관련하여 남편이 고민하는 부분을 언급하는 센스도 발휘했다.

그리고 오후, 우리 부부는 마드리드로 떠났다. 이비자 공항에서 우리가 공항검색대 너머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호세는 떠나지 않고 계속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그 자리를 지켰다. 다음 만남도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우리의 마지막 모습까지 기억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호세의 뒤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따뜻한 노을이었다.


Ordinary people can do extraordinary things when they undertake as a team
팀으로 할 때 평범한 사람들은 비범한 일을 해낼 수 있다.


호세가 MTA를 만들며 내세운 슬로건이다. 평범한 이름의 호세는 개인으로도 분명 혁신가였지만 MTA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비범한 일을 해내왔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도 특별하게 만드는 능력은 그가 대단한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표현을 머뭇거리지 않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더 건강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아래는 위 글의 몇가지 용어에 대한 추가설명이다.>


*팀프러너:  앙트러프러너가 개인을 지칭한다면 팀프러너는 팀안에서 앙트러프러너십, 즉 주도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팀의 구성원을 말한다.

*체인지메이커: 사회 혹은 특정 노력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교육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다.

*몬드라곤협동조합: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경제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기업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공하고 연대, 민주주의, 사회 원조를 촉진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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