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T야?

F였는데요, 간헐적 T가 되었습니다.

by 김도비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내게 T냐고 물었다, 그것도 아주 못마땅하다는 목소리로. MBTI가 초딩들 사이에서도 유행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밈까지 알 줄은 몰랐는데 충격이었다. 게다가 나는 F 아닌가. 하지만 내가 F라는 사실을 밝힌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엄마 T냐는 이 명백한 욕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애들 아빠는 T 끝판왕이었다.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는 재미가 가득하던 연애 시절에야 그가 T인 것이 유쾌했고 그의 문제 해결 능력도 멋졌지만, 전공을 바꾼 이후 그의 머릿속은 온통 공부로 가득했고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가정을 꾸려나갈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게 힘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싫어했던 그런 전남편의 모습을 이혼하며 내 자신에게서 여러 번 발견했다. 나는 마음이 갑갑하거나 불안하면 밖으로 나가 달렸는데 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밤 9시 반이 되면 잘 준비를 시키며 아이들을 닦달했다. 잠들지 않은 아이들을 두고 나가면서 때로는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도 잘라먹고 현관문을 닫았다.


퇴근하고 일과를 마친 후 뻗어서 휴대폰 삼매경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때때로 고민을 얘기해도 대충 대답하거나 짜증을 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회한과 자기 연민에 빠져 지친 내가 자꾸만 아이들에게 무심해지고 있음을. 학업에 매몰되었던 그와 이혼 후유증에 절여진 내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어쩌면 이혼하면서 자꾸 슬퍼지는 내가 싫었던 것도 상습적 무심함에 한몫했다. 나는 질질 짜는 걸 멈추고 야무지고 싶었다. 과거가 주는 슬픔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모두 다 지나가면 그만이라고, 너무 잘 살지 못해도 그냥 살면 된다고 생각해야 살 수 있었으니까. 나에게만 그래야 했었는데, 아이에게도 대충 살라고 해서는 안 되었는데 말이다.


엄마 T냐며 첫째가 볼멘소리를 한 그 순간 내 뇌피셜은 사실로 드러났다. 세상 사는 고단함과 일상을 공유할 때 돌아오는 심드렁한 반응이 어떤 상실감을 주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고 있었다니. 무기력을 학습하며 내 마음이 서서히 공허해졌듯 아이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고, 그러니 나부터 잘 회복하라는 말에 죄책감 눌러가며 이기적으로 살아온 지도 벌써 일 년 반이 넘었다. 그동안은 최선인지 차악인지 모를 자기합리화를 이어가며 스스로에게 엄마가 되어주듯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내왔다. 좀 살 것 같아진 걸 보니 소기의 목적을 약간은 달성한 듯도 하다.


그러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남기 전에 아이들의 마음을 잘 보듬어주어야겠다. 밤에 새로 결심을 해 본들 아침에 드러운 방구석을 보면 또 화가 나겠지만, 이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힘들 때마다 나를 이해하고 위로했듯 아이들의 마음도 그렇게 살피고 아껴야겠다. 해명하지 않아도 엄마를 따뜻하게 F로 불러주는 그날이 얼른 오면 좋겠다.



2024년도 가을에 쓴 글을 이제야 발행합니다.

딸아이는 이제 곧 6학년이 되네요. 아이들의 마음을 잘 보듬어 주어야겠다는 그때의 제 결심은 얼마나 무르고 부질없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저는 다시 쓰고 읽는 사람, 돌아보고 반성하는 사람이 되려고요.


잘 부탁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