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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Nov 23. 2024

서울 전시 4일 차

인생은 시험의 연속.

전시의 마지막 날 일정을 마쳤다. 이번 달에만 세 번째 전시이다. 바로 몇 주 전에 있었던 첫 번째, 두 번째 전시에서 누구를 만났는 지도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매 전시마다 한 바탕 회오리 같은 일정들이었다. 전시장이란 육탄전을 벌이는 전장과 같아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때로는 밀당을 하고 때로는 긴장감 속에서 팽팽한 기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현장의 들썩이는 분위기에 혹은 긴장감 속에 없던 힘도 생겨 힘든 일정을 초인적인 힘으로 마칠 수 있게 된다.


어릴 적 학교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말이 두 개가 있는 데,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중학교 때 야한 동영상을 돌려보던 아이들에게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하게 될 일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 알려고 하느냐, 지금 다 알아버리면 어른이 되어 무슨 재미로 살려고 하냐. 이런 말씀이셨다. 당시 이 말을 한 선생님의 나이 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말은 틀렸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은 무한하다. 미리 알아서도 식상해지지 않는 즐거움도 있다. 재미를 미리 안다고 나중에 그 재미가 없어지거나 그 외의 다른 즐거움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솔직하지 못하니 아이들이 어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또 기억나는 말은, 선생님이 시험 공부하기를 너무나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인생은 원래 시험의 연속이다. 지금 학교에서 보는 시험이 끝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 대학생이 되어도 시험을 보고 회사에서도 시험을 본다. 그러니 시험을 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잘 보아라 이런 취지의 말이었다. 이 말은 맞았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기말고사, 중간고사, 고입 시험, 대입 고사가 있었고 회사에 가서도 업무와 성과의 평가라는 시험을 치러야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도 시험이고 사업을 하면 다시 매일매일이 시험이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어린 학생들이 알 수도 없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도 아니지만 맞는 말이었다.


십 수년 전부터 국내외 전시를 수 없이 준비하고 참가하였지만 전시를 치를 때면 여전히 긴장된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요, 전시는 또 다른 시험이다. 열심히 준비하고 시험장에 들어서도 잘 모르는 문제가 나오고 빼먹고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 하지만 모르는 문제라 하여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그냥 틀려버릴 수는 없다. 아는 만큼이라도 쓰고 모르면 찍어서라도 답을 맞히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시도 시험처럼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시험지를 거두어 간다. 열심히 한 만큼의 좋은 성적이 나오리라 기대하겠지만 내가 맞았다고 생각한 답들이 모두 정답일리는 없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지만 다음 시험을 위하여 기출문제를 돌아보고 실력을 닦아야 한다. 보보시도장 (步步是道場). 사업도 역시 실력을 쌓아가는 수련의 과정이다.  


또 한 번의 전시를 치렀다. 시험을 치르고 난 후의 허탈감과 뿌듯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전시 중에 만난 다양한 이들과 어떻게 사업을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아진다. 이제 시험에 익숙해질 나이도 되었는 데 그게 그렇지도 못하여 매번 시험 전날처럼 날 밤을 새우며 속을 끓인다.


하지만 꿈을 꾸며,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꿈꾸는 자는 지치지 않는다. 이 말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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