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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jazz Jun 20. 2023

(주재원 귀임 D-10일) 복잡 미묘한 심경

(주재원 귀임 D-10일) 복잡 미묘한 심경


귀임으로 인해 미리 이삿짐을 싸서 한국으로 보낸 건 작년 12월 중순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짐들이 나가고 나니 더욱 넓어 보이는 이 곳 이스탄불 부촌(?) 동네의 집에서는, 사람 목소리가 울려서 들릴 정도로 뭐가 없는 허전함이 그대로 드러나더라고요. 하지만 이 넓디 넓은 집에서 최소한의 가구와 가전으로도 약 6주간의 시간이 불편함 없이 흘러가고 있는 걸 보면, 제가 그동안 참 쓸데없는 짐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이삿짐을 받고 나서도 당장 어딘가에 처박아 놓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짐들도 개중에는 엄청 많을 겁니다. 저희 가족의 이삿짐이 담긴 컨테이너는 작년 말에 이스탄불 항에서 통관을 마친 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지금쯤은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터인데, 어처구니가 없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다 꺼내보고 버릴 것들은 더 과감하게 다시 다 버려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해외 주재원 임기 4년 동안 분수에 맞지 않게 이렇게 큰 집에서 참 안일하게 살다 보니 이런 저런 물건들 – 있으면 물론 좋지만 사실상 없어도 되는 - 이 점점 쌓여만 갔고, 짐 보내기 전에 나름대로 점검하여 많은 것들을 버렸다 싶었는데도, 뭘 아무리 버린다고 한들 한국에서 거주할 때 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짐들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집이 넓으니 막 사서 쟁여놓는 이 무지한 인간의 무서운 습성!) 이스탄불과 안탈리야 고고학 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박물관에서 사놓고 읽지 않은 터키의 역사와 문화 등에 관한 책들(심지어 영문판), 십자군과 오스만 제국 군대가 맞붙는 모양의 체스, 성 소피아 성당과 갈라타 타워 그림 액자, 그리고 코로나 시국 이전인 2019년 봄에 바르셀로나 여행 갔다가 사온 FC 바르셀로나 120년史 책 등등. 몇 년 동안 외국 물 좀 먹었다고 (그래 봤자 그깟 터키 물인데) 그 전에 한국의 좁디 좁은 아파트에서 살았던 기억을 다 잊어‘버려서’ 한국의 좁은 집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버리기’의 개념 조차 상실해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근데 이건 뭐… 결국은 한국에 돌아가서 차가운 현실에 맞닥뜨려져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스스로를 위안해 봅니다.


각설하고… 사실 주거 환경만 보면 정말 꿈만 같은 이 곳 이스탄불에서의 생활도 이젠 정말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한편으론 그리운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더욱 그리운 저의 고향 서울이지만, 만 4년 동안이나 지내왔던 이 곳에서의 날들이 쉽게 잊혀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터키 정착 초기에 당장 한국 가고 싶다, 서울 가서 친구들 만나고 싶다, 이런 말들을 여러 번 반복했던 둘째도, 그리고 그나마 그냥 적당히 적응하던 첫째도, 이 두 아이들은 떠날 때가 되어서인지 지금은 오히려 터키에 좀 더 살았으면 하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물론 저의 아내도 내심 저의 임기 연장을 바라는 눈치였고요. (최근 터키 리라화의 가치 급락 등 다시 한번 쇼핑의 천국이 되어 버린 터키에서 쇼핑이나 실컷 하는 거라면 사실 저도 좀…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만…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임기가 끝났으니 이젠 떠날 때가 되었죠.) 그러나 저는 현지인 없이 근무하는 ‘독박’ 주재원으로서 주로 본사에서 요청한, 당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 – 어떤 때는 본사와 시차까지 맞춰서 해야 하는 일 - 이 너무 많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우 힘들었기에 마음 속으로는 계속 빨리 돌아가자, 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곳에 情이란 게 든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요. (이 곳 터키인들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피가 흘러서인지 예상 외로 情이 많기로 유명한 인종입니다.)


어찌됐건 그렇게 4년이 지났습니다. 아이들도 훌쩍 자랐고, 저도 많이 늙었습니다. 그래도 이 석회 물로 매일 머리를 감았지만 탈모가 오지 않은 것을 그나마 매우 다행으로 여기고 있고, 각기 다른 이유로 매년 응급실을 드나들었지만 심각한 건강 문제가 생기지 않았던 것 또한 큰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나 사실, 해외 주재원 치고 현지 병원을 너무 많이 다녔기에 할 말은 참 많지만 이 글에선 이와 관련된 내용은 그냥 언급하지 않으렵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해외에서 4년 잘 버텼고, 나중에 혹시라도 다시 한번 해외 근무의 기회가 올진 잘 모르겠지만, 만약 다른 국가에 주재원으로 다시 나가게 되더라도 가족 모두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 게 또 하나의 수확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첨부된 사진은 이스탄불 아시아 사이드에서 처녀의 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제 모습입니다. 원래 이스탄불의 겨울은 주로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계속 이어지는데 (지중해성 기후의 음습한 겨울)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날이 쌀쌀해졌지만 모처럼 날씨가 맑아서 아쉬운 마음에 작별인사 하듯 이스탄불의 주요 랜드마크를 거의 마지막으로 둘러본 것 같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제가 아끼는 장소들은 여전히 참 좋았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더군요. 이제 열흘 뒤 이곳을 떠나면 언젠가 다시 와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요? 여기가 내가 4년 동안이나 살았던 곳이다! 라면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다시 내려다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아시아인의 관점에서는 실크로드 육로의 서쪽 끝이자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비잔틴 제국이 진출한 동쪽 끝인 이 곳 이스탄불은, 제가 4년이나 거주했지만 여전히 볼거리가 가득한, 동서문물의 집산지이면서 신비한 신화로 가득찬,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3천년 古都입니다.




@ Kız Kulesi, Istanbul, Türkiye.


2022년 1월 18일, 개인 facebook에 기재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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