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기로 결심했다.

#000 프롤로그

by 안유


밝고, 웃음이 많고, 장난기도 많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좋아하는 나.


40대의 어느 날,

터질 것 같은 두통에 내과를 방문하여

고혈압과 빈혈이 생긴 것을 알게 되고

끊지 못할 약을 먹기 시작한 때부터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심장도 아프고

당장 죽을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곤 했다.


더불어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전에 없던 무기력함이 계속되었다.

검사를 해봐도 잘 조절되고 있는 혈압이나 빈혈 외에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너 아무래도 불안장애가 생긴 것 같은데

검사를 좀 받아보는 게 어때?


어느 날, 누군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불안장애.. 불안장애..

아 그래..

이 모든 게 불안장애 증상과 일치하는구나..


감사일기를 써보세요.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무조건 나가서 생각 없이 걸으세요.

병원 약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답니다.

병원의 도움을 받아 보세요.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의 상태를 보고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고

나는 생각보다 사랑받는 사람이구나라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이전의 나로 돌아가서 제대로 살고 싶다.

라는 생각에

병원에 계신 지인분께 전화를 드렸다.

지인분도 일단 의사를 만나보자며

같은 조언을 해 주셨고


[신경정신의학과]


그렇게 난 평생 갈 일이 없을 것 같던 그곳을

내 발로 찾아가게 되었다.


10분 정도 작성하는 질문지를 보며 체크를 할 때는

나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50프로 정도의 우울함과

불안장애 지수가 많이 높네요.


서면 진단 후 며칠이 지나 첫 상담시간.

앞으로의 상담 방향과 치료계획을 이야기한 뒤

선생님은 내게 폭격기 같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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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왜 제가 이런 얘기까지 하고 있죠?

여기서는 아무 말이나 하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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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날의 나

선생님의 질문에 쏟아내기 시작한 꼬마 시절 나는,

똘망똘망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였지만

자존감이 낮고 쉽게 주눅이 드는,

눈치를 잘 보는 아이였더라.


그렇게 질문 속 세월을 거슬러..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요?

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아빠는..이라고 뱉어낸 순간

눈물샘이 펑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빠는 나의 10주년 결혼기념일,

특별한 기념일 여행을 떠났던 내게 걸려온,

불안한 목소리의 엄마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세상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떠나셨다.


지금(훌쩍) 아빠가 계시다면(훌쩍)

나에게(훌쩍) 어떤 말을 해주셨을지(훌쩍) 정말 궁금해요(엉엉)


선생님은 불안의 시작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어제의 나일 것이고

내일의 나를 만드는 것도 오늘의 나일 것이다.

수많은 질문 속에

희미하게 알 것 같기도 한 그 어떤 시작은

분명 안아주고 토닥여줘야 할

그때의 나이겠지.


오늘도 난 모두의 조언을 하나씩 실천해 보며

아빠라면 내게 어떤 조언을 해주셨을까 생각해 본다.


모두가 너의 편인데 뭐가 무서워.

그냥 이 상황을 즐기면 돼.


결혼식 날 식장으로의 입장을 앞둔 내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을 때

손을 잡아주신 아빠가 해주신 말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풀어내다 보면 공책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던

어제의 나는 없다.

해답을 찾기보다 버텨지는 시간에 감사하며

그렇게 오늘을 살아간다.

아니, 살아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내 안에 장벽이 되어 두텁게 쌓여갈 때까지

나는 오늘을 살아내기로 했다.


그렇게 루하루

오늘을 기록해 보기로 결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