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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17. 2019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항암 처방 전문가 김리연

“재수하던 친구가 비웃던 전문대생, 뉴욕서 억대 연봉 간호사 됐죠”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항암 처방 전문가 김리연

전문대 간호학과→삼성서울병원→뉴욕 3대 병원

간호대 학생들이 꼽는 최고의 ‘인생 멘토’


“대학 입학 후, 제 꿈은 미국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하니까 주위에서 비웃었어요. 전문대생이 존스홉킨스 간다는 꼴이라구요. 지금이요? 존스홉킨스·하버드 졸업생과 같이 일합니다”


김리연(36) 간호사는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New York Presbyterian Hospital)에서 일한다.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은 US뉴스가 2019년 선정한 ‘최고의 병동(Best Hospital Honor Roll)’ 5위에 든 곳이다. 뉴욕 내 최고의 병동으로 꼽힌다. 김 간호사는 이곳에서 항암제 처방 전문가(Medical Care Verification)로 활약하고 있다. 항암제 처방 전문가란 최근 미국 의료계에 새롭게 생긴 직업이다. 항암제 종류가 많아지면서 부작용도 빈번하게 발생하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병원에선 따로 처방만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뒀다. 김 간호사는 항암 병동 간호사로 근무한 6년 경력을 인정받아 올해 초부터 처방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다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항암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김리연 간호사. /사진_김지아

김리연 간호사가 뉴욕 최고 병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의료 전문가로 일하며 받는 연봉은 1억5000만원. 의사들의 처방을 확인하고 오류를 알려주는 게 주 업무다. 의사가 내린 처방약을 한번 더 살피고 부작용을 찾아본다. 항암제 용량이 알맞는지, 임상 결과는 어땠는지 등을 꼼꼼히 점검한 뒤 최종 처방전을 작성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까지 근무한다. 금요일은 자택 근무를 하는 편이다. 일주일 중 하루는 자유롭게 일하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리연 간호사는 대한민국 간호대 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


“어릴때부터 미국에서 다양한 인종과 일해보고 싶다는 꿈을 꿨어요. 제주도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제주도에서 졸업했거든요.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열망이 있었나봐요. 그림 그리기·춤추기·영어를 좋아했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고등학생 때, 엄마가 미국에서 일하려면 기술이 있는 게 좋겠다며 간호대를 추천해주셨습니다. 2002년 제주한라대학교 간호과에 입학했을 때 재수하던 친구가 했던 말이 잊히지 않아요. ‘간호대에도 급이 있는데 지방 간호대엔 뭐하러 가냐’구요. 제 꿈과 소신에 따라 대학을 선택한거였죠. 전문대를 바라보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어요. 한번 뒤처진 인생은 영원히 낙오해야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싫었습니다. 미국에 가려고 더 간절히 바랬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어요.”

김리연 간호사의 일상. /본인 제공

◇제주 전문대 졸업생 중 최초의 삼성병원 입사자


김리연 간호사는 제주 전문대 졸업생 최초로 삼성병원에 입사했다. 간호대학 3학년 때 삼성병원에 실습을 떠난 게 입사 계기였다.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한 한을 원하는 직장에 입사해 풀고 싶었다. 실습 마지막 날 찍은 병원 사진을 휴대폰 바탕화면에 깔고 매일 다짐했다. 평일에는 학점 공부에 매진했고 주말엔 토익·텝스 학원에서 살았다. 면접 전에는 삼성병원 홈페이지를 꼼꼼히 살피며 병원조직·문화·인재상 등을 암기하듯 외웠다. 최종 합격 결과가 나오자 동기들은 물론 담당 교수님마저 깜짝 놀랐다. 전교 1등도 떨어진 삼성병원에 김리연이 어떻게 합격했나 하는 것이었다. 


“지방 전문대를 나와 삼성서울병원에 입사한 비결에 대해 아직도 많은 질문을 받아요. 합격 이유를 정확히 꼬집어 말하진 못하겠어요. 다른 간호사에 비해 영어 점수가 높았고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간호사는 환자에 대한 끈기와 정성이 중요한 직업이에요. 얼마나 진정성 있게 환자를 대할 수 있는지 등을 면접에서 적극적으로 어필했어요. 저는 실습에 나갔을 때부터 어르신 환자들에게 마음을 많이 썼는데 그 점도 잘 봐주신 것 같습니다. 혼자 입원한 할아버지·할머니 환자와 팔짱을 끼고 병동을 걸어 다니기도 하고 월드컵 때 낙담한 환자들에게 ‘꼭짓점 댄스’를 춰 주기도 했죠. 환자를 향한 좋은 간호사가 되겠다는 진정성을 면접에서 보여주면 합격 가능성이 커진다 생각해요.”

뉴욕 베스 이스라엘 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본인 제공

◇입사 후 2년간 재가 돼버린 ‘태움’···퇴사해 승무원·패션모델 경험도


“수간호사님은 이비인후과에 오래 있으셨어요?” 삼성 이비인후과 병동에 신규로 입사한 김리연 간호사가 과장님(수간호사)과의 첫 만남에서 했던 질문.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공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가워졌다. 다음날 그녀는 이비인후과 병동 전체에 ‘하늘같은 선배한테 경력 따지는 당돌한 신입’으로 소문이 났다. 병원에는 엄숙한 조직 분위기 외에도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신입이 들어오면 교육은 딱 한 번뿐이었다. 새내기 간호사가 업무 관련 질문을 하면 ‘태움’이 시작됐다. “하도 자신감 있길래 천재가 들어온 줄 알았지”, “그것도 모르면서 국가고시는 어떻게 합격했대” 등의 언어폭력이 이어졌다. 머리를 볼펜이나 서류로 콕콕 내리찍는 일도 있었다. 정해진 시간(8시간) 외의 근무를 해도 추가 수당은 나오지 않았다. 쉬는 날엔 병동 꾸미기·행사 준비·송년회 장기자랑 등의 잡다한 일을 해야 했다.

간호사의 고충을 소셜미디어·블로그 등을 통해 나누고 소통한다. /김리연(@jadore_nyc) 간호사 인스타그램

“삼성병원을 거쳐 잠깐 성모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거든요. 인계해주는 선배가 이러더군요. ‘이 교수님 수술 들어갈 땐 프림 둘, 설탕 둘.’ 그 말을 들었을 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호사는 의사의 비서가 아니라 동등하게 일하는 직장 동료입니다. 직업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데 왜 커피를 타야 하나요? 하지만 막상 병원에서 일하면 이런 말이나 행동 자체가 정상인 듯 조성된 곳이 많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오히려 피해를 봅니다. 물론 좋은 선배로서 이끌어준 멘토들도 있었어요. 서울병원에서 만난 남연희 선생님은 실수했을 때 인격 모독이 아니라 엄격하게 꾸짖어주셨어요. 기운이 없을 땐 집으로 데려가 삼계탕도 끓여주신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병원 문화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삼성서울병원에서 2년간 일한 뒤 퇴사했어요. 미국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어학점수를 따기 위해서였죠.”


◇삼성병원 재입사 후 미국 간호사 자격증·어학점수 취득  


2007년 7월, 만 2년을 채운 뒤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쉬는 동안 학원에 다니며 다양한 일을 벌였다.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받고 패션모델로 잡지에 나온 적도 있었다. 다양한 나라를 여행 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승무원 면접을 보기도 했다. 8개월간 이곳저곳 기웃거려보니 있을 곳은 병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병원에 지원하기엔 2년 경력은 보잘것없었다. 다음 해 삼성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수술 보조로 재입사했다. 삼성병원은 재입사 사례가 드물다. 그만큼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재입사 후 2년간 경력을 쌓으며 미국 간호사 면허를 취득했다. 아이엘츠(IELTS)에서도 고득점이 났다. 회사에 다니면서 서울글로벌센터·서울국제유학생포럼·외국인 무료 건강검진 봉사단 등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4년 차 간호 경력을 쌓던 해, 유학생 교류센터에서 만난 한국인 교포와 결혼식을 올렸다.

뉴욕에서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다. /김리연(@jadore_nyc) 간호사 인스타그램

◇결혼 후 미국행···첫 직장은 소원대로 뉴욕병원   


“신혼집은 남편의 직장이 있던 워싱턴 DC에 자리를 잡았어요. 대형병원에서부터 불임 클리닉·성형외과·작은 소아과까지 하루에 수십통의 이력서와 지원서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연락 오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어요. 미국 병원은 내부 직원의 추천이나 다른 병원의 소개를 통해 취업하는 경우가 많아 인맥이 중요해요. 하루에도 1000통 넘는 지원서가 쌓인다고 합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병원 취업을 두드렸습니다. 뉴욕 3대 병원 중 하나라는 베스 이스라엘 병원(Beth Israel Hospital)에 오픈하우스(지원자들을 자유로운 파티 분위기에서 만나 인터뷰하는 이벤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곳에서 인사담당자를 만나 3번의 길고 긴 면접 끝에 입사했어요.”


미국 병원에서 일하는 것도 순탄치 만은 않았다. 다만 한국 병원보다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가 전문 의료인으로서 의사와 동등한 협력 관계라는 점은 분명했다. 미국에선 일반 간호사도 공부를 더 해서 전문 간호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의사처럼 처방권이 생긴다. 또 보수 면에서도 의사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 병원은 간호사가 간호학과 관련해 대학에서 공부를 더 하겠다고 하면 석사 과정까지 학비 전액을 지원해준다. ‘간호사는 병원에서 뛰어서는 안된다’는 룰도 있다. 한국에서 근무할 땐 12시간 넘게 뛰어다녔던 김리연 간호사는 서로가 서로를 닦달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문화에 좀 더 여유롭게 환자를 진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 국내 대학 강연에 참석한 김리연 간호사. 블로그를 통해 간호과 학생들의 고민을 해주는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 캡처

“미국 병원에서 근무한지 6년째입니다. 올해부턴 항암제 처방 전문가로 일하면서 제약 분야에 관한 경력을 쌓고 있죠. 환자를 병동에서 직접 보진 않고 차트나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는 일이에요. 미국 간호사의 초봉은 8600만원 정도입니다. 한국의 간호대 학생들이 제 책을 읽고 상담하는 이메일을 많이 보내와요. 누구나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합니다. 한국을 탈출해 미국에 자리를 잡았지만 한국의 의료산업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어요. 한국 대학에서 강연 초청이 오면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한국이 좀 더 발전한 시스템으로 의료 전문가를 양성하고 대우해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죠. 저희 할아버지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 활약하신 김대원 독립유공자시거든요.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사명감이 있어요. 저는 앞으로 제가 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전문대를 나와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절 보고 전국의 수많은 지잡대(지방·전문대학을 낮잡아 가리키는 말) 학생들이 아무리 무시당해도 굴하지 않고 도전할 거라 생각해요.”


글 김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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