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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17. 2019

“뉴욕의 낮은 목소리 듣는 한인 검사입니다”

뉴욕 검찰청 사회정의부 이민규 검사

미국 시민권자, 한국서 군 복무 중 로스쿨 도전

“사회적 약자 이야기 듣고 싶어”


“군 시절, 새벽 2~3시가 가장 좋았어요.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습니다. 화장실 불빛에 비춰가며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LSAT·Law School Admission Test) 기출문제를 풀었습니다.”

이민규(30) 검사는 미국 뉴욕 검찰청에서 일하는 새내기 검사다. 2018년 10월 뉴욕 검찰청 사회 정의부에 입사했다. 미국과 한국의 국적을 모두 갖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건축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이었다. 이민규 검사는 17살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2011년 육군 제55보병사단에 입대했다. 군 선임들은 “시민권이 있는데 군대에 왜 들어오냐, 스파이 아니냐”며 그를 이상하게 여겼다.

뉴욕주 검찰청 사회정의부 소속 이민규 검사. /사진 : 김지아

-군에서 공부해 뉴욕 검찰청에서 일하고 있다. 보통 어릴 때부터 법조인을 꿈꾸지 않나.


“어릴 때부터 뭘 하고 싶다는 목표가 없었다.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 그때그때 좋아하는 걸 선택해 왔다.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웨슬리언 대학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에서 미술·정치경제학·중국 한시 수업 등을 수강했다. 대학 졸업 후엔 한국에 들어와 입대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다. 병영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중 맞후임이 보던 책에 관심이 생겼다. 미국 법조계에서 유명한 법률 사전인 ‘블랙법률사전’이라는 책이었다. 그날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 기출문제집을 보내달라 부탁했다. 다리가 휘청거리는 군용 책상 위에서 법 공부를 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군대에서 LSAT를 공부했다, 풀어 본 문제집은 50권 정도다. 나중에 보니 허리만큼 쌓여있었다. 제대 후 시험을 치러 콜롬비아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했다.”


-독학으로만 LSAT 시험을 치른 것인지.


“제대한 뒤 3개월 정도 서울 종로의 한 학원을 다녔다. LSAT는 180점 만점으로 170점 이상 받으면 상위 10위권 대학에 지원해 볼 만하다. 내가 학부 때 특이한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니고 법과 관련한 과목을 수강한 게 아니어서 시험에서 점수를 잘 받는데 주력했다.”

306보충대와 콜롬비아 로스쿨 졸업식에서. /이민규 검사 제공

-초보 검사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다. 뉴욕 검찰청에 출근하자마자 만난 제소자(Complainant) 역시 한국인 할머니였다. 미국에서 한인 자산가로 유명한 회장님의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분이었다. 회장님이 지병으로 사망하자마자 유가족에게 해고당했다. 부당 해고라며 찾아오신 분이다. 하지만 해고자 측은 제때 임금을 줬고 부당 해고라는 증거가 없어 법적 해결책이 없었다. 고민 끝에 국가 보조금 혜택을 모두 찾아 받을 수 있게 도와드렸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억울하다며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화에 스트레스도 컸다. 한 달쯤 지나자, 할머니가 찾아와 ‘노인네 투정 받아주느라 고맙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건 검사님뿐이었다’고 고마워했다. 할머니를 내심 귀찮게 여겼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제소자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다 보면 시간도 많이 들고 감정 소모가 심할텐데.


“세상에 냉정하고 차가운 법조인이 있다면 따뜻한 법조인도 있어야 한다. 법조인으로서의 원칙이 있다면 경청하기다. 뉴욕은 수많은 이민자가 모인 불안정한 도시다. 이런 지역의 검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막막한 제소자들은 희망을 얻는다. 업무 중 시민의 신고 전화를 받고 법적 해결책이 있는지 상담해주는 ‘인테이크(Intake)’가 있다. 단순 하소연이 대다수라 보통 수사까지 가지 않는다. 동료들은 기피하는 일인데 이 업무에서 성취감을 얻는다. 모든 것이 분주한 뉴욕에서 살다 보면 인생이 어딜 향해 가고 있는지, 사회는 무엇을 쫓고 있는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화려하고 큰 성공을 거둔 스토리가 끝없이 들려오는 곳이다. 이런 도심의 한 편에서 돈도 인맥도 없는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하는 게 내 역할이다.”


-’뉴욕은 거대한 욕망 덩어리’라 표현하며 불법 임금체불·성매매·마약 등의 문제도 언급했다.


“뉴욕커라고 하면 좋은 직장에 다니며 고소득을 올리는 도시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뉴욕커 중에는 비정규직·고졸·이민자 출신도 많다. 문제는 이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이다. 뉴욕에서 수십개의 피자 체인을 운영하는 로버트슨(가명)씨는 3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했다. 6년간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밀린 체불임금이 한국 돈으로 25억원에 달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뉴욕에 온 이주 여성들을 이용하는 성매매업자도 많다. 직업여성들은 권총을 들이미는 고객에게 성행위를 강요 당하고 매를 맞다 큰 부상을 입기도 한다. 피해자 대다수는 언어가 서툴고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소속한 부서는 검찰청의 사회정의부(division of social justice)다. 이들 또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다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내 일이다.”

뉴욕 검찰청의 사무실. /이민규 검사 제공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말이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로스쿨 1학년 때 치렀던 대형 로펌 면접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파트너 변호사가 ‘만약 본인의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일을 하면서 편치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잘못된 답변이란 걸 알면서도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로펌에서 떨어진 이후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같은 법조인이라 해도 변호사(士)와 검사(事)는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 검사는 ‘일 사(事)’라는 한자를 쓴다. 검사는 한자 모양처럼 깃발을 높이 들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원칙과 소신을 갖고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박봉과 막대한 업무량에도 뉴욕 검찰청에 남고 싶은 이유다.”


-한국 검사와 미국 검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미국 검사들은 한국에서처럼 ‘떡검’이나 ‘검새’라는 욕을 듣진 않는다.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미국 검사들은 대한민국 검사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검사들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대배심 제도를 따르고 있다. 형사사건에서 피의자를 기소하려면 대배심(평시민 중 무작위로 선발된 집단)에게 기소를 청구해야 한다. 16~23명의 시민 중에서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수사할 수 있다. 기소라는 국가권력의 최종 결정권은 일반 시민에 있는 셈이다. 또 미국 검찰은 연방 검찰청·주 검찰청·지역 검찰청으로 권한을 분산해놨다. 연방 검찰이 뇌물을 받고 덮은 사건을 주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거다. 서로를 감시·견제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한 곳에 권력이 몰릴 가능성이 적다. 업무량도 미국 검사들은 평균적으로 오후 7시쯤 퇴근한다. 큰 사건이나 중요한 재판이 있을 때 9시~10시 정도 야근을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선 법률 자문 받기 어려운 소외층을 위해 민사소송을 병행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다. 개인 단위는 아니고 인원수가 많은 사건들 위주로 사연을 받는데 이 업무 때문에 ‘라디오 DJ처럼 사연 듣는 검사’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출근하고 있는 이민규 검사. /이민규 검사 제공

-봉급이나 처우는 어느 정도인가. 


“연봉은 5000만원 정도 수준이다. 이 돈으로 맨해튼에서 살기에는 불가능해 뉴저지쪽으로 이사했다. 월세는 2000달러(약 230만원) 정도다. 또 뉴욕은 물가가 비싸다. 한국에서 8000원이면 식사를 할 수 있는데 뉴욕은 그 돈으로 베이글 한 쪽 정도를 간신히 사 먹는다. 식비가 아까워 점심을 가끔 거를 때가 있다. 동료 검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두 브루클린·퀸즈에 산다. 그래도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정점에 있는 미국, 그것도 뉴욕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사명감에서 일한다. 우리가 하는 일로 미국 사회가 점차 바뀌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출근한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일단 뉴욕 검찰청에서 경력을 더 쌓아볼 생각이다. 뉴욕 검사들은 계약직이다. 보통 계약이 1-3년 단위로 이뤄진다. 이후 한국에 돌아올 수 있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FLC(foreign legal counsel) 전형을 통하면 한국 로펌 취업할 수 있다. 선택 기준은 두 가지다. 개인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인가다. 난 아직 젊은 데다 부양해야 할 처자식도 없다. 지금 하는 고생이 나중에 새로운 꿈을 꿀 때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초호화 아파트를 보유한 도시 뉴욕은 열 발자국만 걷다 보면 노숙자가 있다. 다양한 인종과 아이디어가 모여든 뉴욕은 처음 일을 시작하고 배워나가기 좋은 곳이다.”

최근 뉴욕에서 일하는 한국인 검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는 뉴욕의 초보 검사입니다'를 출판했다. 한국에서 독자와 만나고 있는 이민규 검사. /생각정원 제공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법조인이 되면 출세할 수 있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렸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법조인으로 살 것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사건, 소외된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변호사·검사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경청하는 검사가 되고싶다.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까지 'Save Yourself(자신을 구하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글 김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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