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 마음이 그렇듯이.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 하루 스스로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떠올랐고, 다시 수면 아래로 잠겼으며, 아직도 떠오르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아마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마음이 그만큼 복잡하다.
자신의 감정을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연애에서도, 자신의 커리어에서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왜 그럴까?
1. 자신의 감정을 모르면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모른다.
누구나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짝사랑을 하다, 상대방이 나에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혼자 포기해 본 경험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종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상대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는 질문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을 볼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설계하고 싶은지, 내가 그 사람과 대화할 때 어떻게 해야 안정감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왜 잘 모를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애 프로그램에는 '직진' 캐릭터가 등장한다. 최근 화제가 된 환승연애 시즌4에서도 자신이 관심 있는 이성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출연자가 있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시청자들은 그녀의 저돌적인 플러팅에 '밉상이다', '여우 같다' 등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녀가 이 프로그램에서 커플 매칭에 성공하던 안 하던, 앞으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상대를 만나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집단주의적인 우리나라 정서상 다른 경쟁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진하는 건 예의가 없다거나 무례하다고들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원하는 이성은 단 한 명이다. 경쟁자는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 그 사람을 사로잡는 걸 내 마음이 원하고 있는데, 과연 다른 경쟁자의 눈치를 보는 게 맞을까? 마음 깊숙이 들여다보면, 신경 쓰지 않고, 쟁취하는데 집중하라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목표에는 타인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적어도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페어플레이고 뭐고 없다 생각한다. 쟁취하는 자가 승리자일 뿐이다. 놀랍게도 이 룰은 직장이나 커리어에서도 동일한 법칙으로 적용된다. 학교나 도덕에선 이 룰을 반대로 주입시켜서 그렇지,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의 본성과 욕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야생적이고 잔인하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스님이나 신부님처럼 다른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라면 몰라도. 그분들도 그게 가능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매일 수련하고, 기도하시는 걸 거다.
2. 내가 느끼는 감정은 틀리지 않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이기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집단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3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 아이의 원초적인 본능을 종종 가까이서 목격하곤 한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 와 자신의 물건을 만지면 아이는 분노한다. 잠시 빌려달라고 해도 극도로 싫어하고 화를 낸다. 아마 모든 아이들이 그럴 것이다. 자신의 소유권이 침해당하면, 감정적으로 좋지 않다.
하지만 점점 성인으로 자라면서 우리는 이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아마도 세 살 아이가 좀 더 자란다면,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허락 없이 만졌을 때 정중하게 거절하거나, 허락을 구해달라 요청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렇게 감정을 '조절'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식만 익히면 된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교육들이 그 감정 자체가 '잘못됐다'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 내 영역을 침해했을 때 불편한 감정이 치미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건 동물들도 느끼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교육과 교양은 그 불편한 감정을 적당히 조절하고, 적당히 표현하는 걸 가르친다. 하지만 잘못된 교육은, 사실 많은 교육이 이미 침범하고 있는 영역이지만, 그와 같은 감정이 틀렸다고 말한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에게 양보해야지,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화내지 말고 나눠줘" 이렇게 말이다.
감정 표출에 엄격하고, 통제력이 강한 부모에게 자란 아이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고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울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울지 마!"라고 다그치거나, 화를 내면,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라고 꾸짖는다. 심한 경우, 수많은 남자들은 "사내 새끼가 그딴 일에 왜 울고 그래"라고 벌컥 화를 내는 아버지와 마주한다.
그렇게 어린아이 땐 자연스럽게 느껴왔던 감정을 '조절' 하는 것을 넘어서, 점점 스스로 무뎌지고, 언젠가부터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리는 성인이 된다. 어차피 미친 X처럼 날뛰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겠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우리가 해야 할 미션은 미친 X처럼 날뛰는 감정을 잘 도닥이고, 함께 이끌어 나가는 것이지, 그 목을 싹둑 베어버리는 게 아니다. 미친 X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아주 많은 경우 그 이야기는 진실에 가까운 뉴스를 전한다.
3. 감정을 언어화하기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 비트겐슈타인
우리의 감정은 언어로 표현했을 때, 인식할 수 있다.
언어화하기 전의 감정은, 그냥 감정 그 자체다. 그 뭉텅이를 들여다보며 해독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밖에 없다. 이 행위는 인공지능도 절대 못하고, 가까운 관계도 대신 해줄 수 없다.
연애를 하면서 섭섭한 감정이 들었음에도, 좀 더 성숙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또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그 감정을 애써 모른 척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자신과의 감정에서 필패하게 된다. 이 감정은 앙금처럼 바닥에 깔려 순식간에 폭발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최초의 발화점이 됐던 섭섭함이라는 감정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기록과 해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기에, 타인을 설득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최초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미친 X로 남는다.
진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최초로 섭섭한 감정이 들었을 때, 정확히 스스로의 감정을 인지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이 과정을 자꾸 건너뛰면, 나중에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만다.
살인, 강도, 성범죄와 같은 중범죄자 집단 안에서, 어린 시절 학대 경험 비율이 일반 인구보다 유의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러 코호트 및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신체적 학대나 방임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성인기 폭력 범죄로 체포될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Widom, 1989; 2001).
캐나다 수형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교도소 수감자의 약 절반이 아동기 학대 경험을 보고해 일반 인구에 비해 매우 높은 유병률을 보였다(Bodkin et al., 2019).
성범죄자에 대한 메타분석에서는 성범죄자 집단이 비성범죄자 집단보다 어린 시절 성학대를 경험했을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된다(Jespersen et al., 2009; Ogloff et al., 2012).
왜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날까? 아동기는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고, 조절하며, 표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그런데 그 시기를 부모의 학대와 방임으로 놓치고 만다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극단적으로 치달아 결국 중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환경에선 감정을 읽고, 이해하고, 언어화하고, 해소하는 능력은 거의 발달하지 못한다.
아동기 학대 방임 환경에서는 감정을 안전하게 말하고 표현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 결과, 감정 인식 및 언어화 능력이 형성되지 못한다. 감정 언어화 능력이 부족하면, 감정을 마음속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배출하는 경향(acting out)이 강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알렉시타이미아(alexithymia)라는 감정표현불능증.
알렉시타이미아와 공격성의 연구 결과가 있다.
감정을 언어화할 수 없는 사람들은, 분노, 공포, 불안과 같은 감정이 행동으로 바로 전환된다.
즉, 말할 수 없으면, 몸으로 나온다.
알렉시타이미아 수준이 높을수록 폭력성, 충동성, 반사회적 행동 점수가 유의미하게 높다.
특히 남성 집단에서 상관이 더 강하다. 이는 범죄학에서 'acting out(행동화)'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말로 하지 못하는 것을 행동으로 폭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감정을 읽어내지 못하는 감정문맹은,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알렉시타이미아로 이어지고,
이는 설명 없이 곧바로 행동하는 행동화(acting out)로 표출된다.
그래서 우리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감정을 언어화하고, 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충실히 해나가야 한다. 매일, 일상에서, 착실하게. 어릴 때 이런 감정을 배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길.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하루에 하나씩 해치워 나가면 된다.
나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심리학자는 아니다.
다만, 여러 가지 경험에 따라 다음의 규칙을 따르곤 한다.
1. 매일 아침이나, 자기 전 자신의 감정을 파노라마처럼 짚어 보는 작업을 해나가기.
2. 나의 감정이 떠올랐을 때, 황급히 치워버리거나 미뤄두지 않기. 직면하고, 인정하기.
3. 감정을 직시하면서 상황에 적절한 표현방법 떠올리기.
4. 부정적인 감정이 극단적으로 치밀 때면,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손을 씻거나 거울을 보면서 환기시키기.
5. 나의 감정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기 전에 틀렸다, 안된다 판단하지 않기.
우린 생각보다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해 낼 줄만 안다면 말이다.
날마다 책상을 정리하고, 집안의 먼지를 쓸듯이, 우리의 감정도 정리와 환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무엇이 존재하는지 인식부터 해야 한다. 컴컴한 마음속에 불을 밝히자.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다가가 읽어내자. 이 노력을 멈추지 않고 정진하다 보면 매일 더 많은 기회들이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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