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눈이 내린다.
부엌에는 아이를 위해 인덕션 위에 올려둔 미역국이 바글바글 끓고 있고, 오븐에는 고등어가 기름에 구워진다. 아빠와 쇼핑몰에 놀러 간 아이가 몇 분쯤 뒤에 도착할까? 적어도 20분 안엔 올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서둘러 그 안에 글을 마쳐야 한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나는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추위에 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겨울의 무한한 밤도, 무섭지 않게 지켜줄 누군가가 그들 곁에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하루하루 국을 끓이고, 고기를 구워 가족들을 먹이고, 집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정돈하는, 그리고 뭐라도 써보기 위해 분투하는, 그런 별 일 아닌 행위들로 일상이 가득 채워진다. 그 모든 걸 끝낸 녹초가 된 나에겐 고작 20~30분 남짓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할머니가 선물해 준 꼬질한 동전지갑을 더듬듯 이곳을 찾는다. 그렇고 그런, 어디에 그럴듯하게 내놓을 수 없는 허름한 일상들과 생각들을 기록하기 위해. 매일 늙고 있는 나를 증명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를 기억하기 위해.
밖에는 눈이 내리고 그래서 모든 소리가 눈 속에 파묻히듯 조용하다. 세탁기는 돌아가고, 고등어 굽는 비린내가 공기 중을 떠돈다. 오늘은 눈이 왔다 언젠간 사라지고 마는 겨울처럼, 하루하루 우리 곁에 머물며 쌓여가는 것들에 대하여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언젠간 무쇠 같은 벽 앞에 부딪혀 좌절했던 20대의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쓰는 글일 것이다. 혹은 오늘 길을 걷다가 그런 표정을 지은 고등학생을 본 것도 같아서 마음을 먹은 까닭일 수도 있다. 대학 입시 결과가 어느 정도 발표됐다고 하던데, 그래서 추운 길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데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걸어가고 있었나. 하는 제멋대로의 생각에 그 학생의 표정이 마음속에서 낚싯바늘처럼 걸리고 말았다.
나는 약 10여 년 전(부디 정확하게 따지지는 말아 주세요)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가끔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지조차 까먹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대학 졸업장이란 건 인생을 살아가며 별로 쓸 일이 없을 때가 많았다는 뜻이다.
반면에 유용할 때도 종종 있긴 했다. 결혼할 때였다. 나의 대학 간판과 전공은 상대방 부모와 형제 및 친척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소개하기 꽤나 간편했다. 그리고 회사에 이력서를 냈을 때, 면접을 봤을 때 뭐 부끄럽지는 않았다는 정도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대학시절 나의 업적이 있다면 같은 과에서 절친한 동기 친구와 고등학교 동창 중 재수해서 나와 같은 학교 다른 과에 다니고 있는 친구를 소개해준 일이다. 두 사람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고, 작년에 아들을 낳았다. 캠퍼스 내에서 사랑의 오작교가 되어준 것에 대해서, 그리고 한 아이의 탄생을 어찌어찌 주관했다는 점에서 나는 나름의 자긍심을 느낀다.
그밖에는 정말 없었다.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엄마의 출신 대학을 물어본다면 또 하나 유용했던 순간이 추가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대를 나오지 않아서 그런가. 대학 간판이라는 게 어디에 쓸만하다는 게 살아보니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살다 보면 어떤 간판이라던지, 타이틀이라던지, 출신이라던지
뭐 그런 것들이 이곳저곳 군살처럼 붙게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믿음직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나에게 더 힘을 준다.
매일 뛰고, 근력운동을 하고, 좋은 글귀를 읽고, 글을 써내려 머리를 짜내는 그런 매일의 행위들이 이젠 더 중요해졌다. 평가나 결과는 부착적이라는 말이다.
몰입하고 집중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평가에 좌절할 시간도, 기뻐 날뛸 시간도 아까워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 주어진 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나만 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무엇을 쌓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되도록이면 타인을 위한 행위라면,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면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대학생활 때 소개팅을 이어줘 한 커플과, 그로 인한 한쌍의 부부와, 아이를 태어나게 한 공 같은 것 말이다.
받아주는 대학이 없어 울고 있던 학생에게, 주머니에서 놀던 핫팩 하나 건네주고 싶었다. 여태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것이라는 응원의 말과 함께. 부디 남들이 SNS 이곳저곳에 올리는 대학 합격 인증글을 보면서 뜬눈으로 밤새지 말길, 아침밥 잘 먹고 앞으로 찬란한 스무살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계획을 세워본다면 어떨까. 잊지 말자. 스무살은 세계 최고 부자가 전재산을 주고도 못사는 시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_HlPboLRL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