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 12시 06분. 도어록 누르는 소리에 잠을 깬다.
나는 아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옆에선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다. 잠들기 직전까지 들여다보던 핸드폰. 남편과의 마지막 카톡이다. ‘회식 길어질 듯. 먼저 자.’ 시간은 9시 12분이었다.
남편이 들어온다. 티셔츠에 술냄새가 짙게 묻어 있다. 발끝까지 조심하느라 어깨가 굳어 있다. 아이 방을 한번 슥 보고는 화장실로 직행한다. 나는 잠든 척 등을 돌린다.
씻는 소리가 멈춘다. 영양제 까먹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린다. 아무리 늦어도, 술에 취해도 영양제는 꼭 챙겨먹는 사람. 이내 자신의 침대로 와 베개에 머리를 묻는다. 우리 셋은 한 집에 누웠는데, 세 구간으로 갈라져 있는 기분이 든다.
요즘 그는 주 2회 이상 회식이다. 미팅이 늘었고, 만나는 사람이 늘었고, 마시는 술이 늘었다. 일이 잘되고 있다는 뜻이다. 본인이 지금이 “전성기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부정할 수는 없다. 확실히 그 어느때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다.
그런데 나는, 그가 늦게 들어오는 날마다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린다.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 묻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9시쯤이 되면 거실의 공기가 묽어진다. 아이는 동화책 끝에 “엄마, 아빠 언제 와?”라는 질문을 빼놓지 않는다. 나는 그저 토닥이며 답한다.
“아빠 일하고 있어.”
11시가 넘어가면 거실에 뭔가 차오른다. 차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막연한 불안. 이름이 없는 감정. 7년을 같이 산 사람의 늦은 밤 앞에서, 내가 작아진다.
2. 음소거된 평일, 뒤치다꺼리뿐인 주말
남편의 일이 늘어난 것에 대해 나는 불만이 없다.
미혼 시절을 떠올려 본다. 만약 누가 나에게 ‘일찍 들어오지만 경제적 상승이 없는 남편 vs 매일 야근하지만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남편’ 중 하나를 고르라 했다면, 당연히 후자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둘째까지 둔 우리 가족의 미래에는 그 ‘성장’이 필요하다. 머리로 안다. 진심으로도 안다.
그런데 머리로 아는 것과, 텅 빈 식탁 앞에 혼자 앉아 식어버린 국을 반찬용기에 옮겨 담는 마음은 다른 종류의 일이다.
평일 저녁의 풍경은 이렇다. 6시에 시터 선생님이 퇴근하시면, 6시 30분쯤 밥을 먹이고, 7시30분에 씻기고, 8시쯤 동화책 두 권을 읽다 절반쯤 내가 먼저 잠든다. 그러다 아이 침대에서 기어나오는 것이 11시 무렵이다. 핸드폰을 켜면 연락은 없다. 다만 공유하는 캘린더에 누구를 어디서 만난다는 스케줄표가 저장돼 있을 뿐.
주말은 또 다른 종류의 침묵이다. 토요일 오전엔 아이의 축구 수업, 오후엔 아이와 놀러 가거나 부부상담, 주중에 밀린 빨래·청소·장보기가 기다리고 있다. 일요일에는 마찬가지로 아이와 놀러 가기. 친정 부모님과의 식사, 그리고 내일 출근할 준비들. 사이사이 아이는 “엄마 같이 놀자”를 100번쯤 외친다. 물론 그 100번을 다 받아주지 못한다. 죄책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 와중에 부부 대화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없다’.
화요일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목요일 회식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나는 모른다. 그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번 주에 마감한 원고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아이가 유치원에서 누구에게 토라졌는지 그는 모른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산다. 그런데 서로의 한 주를 모른다. 어떤 감정이 스쳤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언젠가 나는 이 상태를 “음소거 부부”라고 부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작년 3월쯤. 한 차례 큰 부부싸움 끝에 글에 적었다. 그땐 그 단어가 한 시기의 묘사일 줄 알았다. 그게 만성 질환의 이름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머리론 알고 있다. 머리론. 이 시기를 통과한 부부들이 “그땐 다 그런 거다”라고 말해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땐 다 그런 거다”라는 말이 위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그 말은 “지금의 너의 외로움은 너만 느끼는 게 아니다”라는 뜻이지, “너의 외로움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듣는 귀로는 그렇다.
3. 막연한 불안에 이름을 붙인 사람
‘그가 늦게 들어오는 날, 왜 불안한가’에 대해 처음으로 답을 준 사람은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 수 존슨(Sue Johnson)이다.
수 존슨은 정서중심부부치료(Emotionally Focused Therapy, EFT)의 창시자다. 그의 대표작 《Hold Me Tight》(2008, 한국어판 《그를 만나면 당신을 알게 된다》)은 부부치료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실용서 중 하나다. 책에서 그는 부부의 갈등 대부분이 사실은 “애착의 신호”라고 말한다. 어른의 사랑도 결국 어린 시절의 애착 시스템을 그대로 쓴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세 글자다.
'A.R.E.'
- A: Accessible (다가갈 수 있는가)
- R: Responsive (반응해 주는가)
- E: Engaged (마음을 쓰고 있는가)
수 존슨은 부부가 갈등할 때 표면의 주제(설거지, 회식, 시댁, 돈)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진짜 질문은 늘 셋 중 하나다. “너 거기 있어?” “나에게 반응해 줄 거야?” “나에게 마음을 쓰고 있어?”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책을 무릎 위에 엎어 두었다.
11시 47분의 거실에서 차오르던 그것. 의심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러면 무엇인지 답하지 못했던 그 감정. 그것의 이름은 “너 거기 있어?” 였다. 어른의 외로움 한가운데에는, 어린 시절의 “엄마 어디 가?”가 그대로 살아 있다.
수 존슨은 책에서 이렇게 쓴다.
“우리는 파트너가 멀어졌다고 느낄 때, 표면적으로는 화를 내거나 비난한다. 그러나 그 모든 갈등의 본질은 ‘제발 나에게 돌아와 줘’라는 외침이다.” *(Hold Me Tight, 2008, p. 31)*
내가 카톡으로 남편에게 “언제 와?”를 묻지 않은 이유는 답을 알기 때문이었다. 모르겠다, 또는 늦을 듯, 둘 중 하나. 그래서 안 물었다. 그런데 안 묻는 그 자리에 막연한 불안이 자라고 있었다. 묻지 못한 “너 거기 있어?”가 거실에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날 밤, 나는 한 가지를 시도했다. 9시 30분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제 와?”
남편의 답: ‘곧 가’
나는 이 한 줄에 더 외로워졌다. 실험 1일차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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