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프리랜서] 박지민 아나운서 인터뷰
해고의 위기에서 기회를 찾다
박지민 아나운서 인터뷰
“아아(마이크 테스트),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감미롭게~ 더빙으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귀에 착 붙는 중저음 톤. 듣는 이의 마음마저 평온하게 만드는 나직나직한 목소리.
그런데 그 더빙 내용이 글쎄, 전부 다 ‘드립’.
‘병맛 더빙’이 다 하는 신개념 브이로그, MBC 박지민 아나운서의 ‘지만이TV’ 이야기다. 차별화된 콘텐츠로 구독자수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는 그녀를 만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의 일상 이야기와 계약직 아나운서로서의 고충을 함께 들어봤다.
검색창에 ‘박지민 아나운서’를 검색하니
팟캐스트 1위 ‘매불쇼’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영상이 뜨더라.
매불쇼는 어떤 인연으로 출연하게 됐었나?
동기들과 함께 MBC에 대해 해고 소송을 내고 언론에 처음 알려줬을 때, ‘매불쇼’에서 “이 이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며 섭외가 왔다. 당시 일정이 되는 사람을 추려서 출연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무거운 시사 이유에 대해 너무 가볍고 재밌게 다루는 분위기라 당황스러웠다. 우리에게는 인생이 걸린 진지한 이슈인데, 예능식으로 진행되니까 적응이 안됐다.
그런데 내 성격이 원래 이런 예능 쪽과 잘 맞는다. 나름대로 즐겁게 방송에 임했고, 당시 매불쇼에서 이런 내 모습을 좋게 봐주시면서 이후 주기적으로 매불쇼로부터 출연 섭외가 왔다. 해고당한 뒤 어느 방송에서도 나를 불러주지 않아서 자존감이 많이 낮았을 때였는데, 매불쇼가 뒤에서 나를 많이 위로해주고 챙겨줬다. 방송에는 매일 구박받는 것처럼 나왔지만.(웃음)
매불쇼에 출연하면서 팟캐스트의 영향력에 대해 실감하기도 했다. 지금도 연합뉴스와 MBC보다 매불쇼에서 박지민 아나운서를 알게 됐다는 시청자분들이 훨씬 많다. 예전에는 방송국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존재였다면, 팟캐스트에 출연하게 되면서 다양한 미디어의 힘을 느꼈다.
매불쇼 ‘지상파 아나운서, 바람 피다 생방 중 걸린 사연’이 조회수 70만에 다다랐다.
자극적인 소재가 부담되지는 않았나?
매불쇼 출연 초반에는 ‘여자 아나운서에 심지어 회사와 소송 중인데 이런 제목이 괜찮겠냐’는 우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대중이 여자 아나운서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는 ‘단정하고 바른 품행’이지 않나.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아나운서가 좀 더 인간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때문에 자극적인 제목이나 소재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언론에 우리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길에서 전단지도 뿌려봤지만, 우리가 워낙 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매불쇼는 사람들이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라도 궁금해서 방송을 듣는다. 방송을 클릭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꼈다.
방송 초반에는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방송이 끝나는 시점에는 ‘되려 내 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었다. 실제로 ‘얘 되게 재밌고 솔직하네’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그로성 제목’이 그렇듯 막상 영상 내용은 제목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웃음)
현재 브이로그 ‘지만이TV’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개인 채널을 오픈하게 됐나?
처음에 회사를 나왔을 때 스트레스도 많고 불면증도 심하게 와서 머리를 식히려고 혼자 유럽으로 떠났었다. SNS에 여행 사진을 올리니 대중들이 그러더라. “언론에서는 그렇게 괴롭다고 얘기하더니 박지민 살만한가 보네?”
내가 행복하면 사람들이 욕을 하니까, 이후로 나는 항상 불행하고 우울해야 된다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동기들과도 우리는 SNS에 행복해 보이는 사진 올리면 안된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정말 집에만 박혀서 아무도 안 만나는 매몰된 일상을 살았다. 내 스스로를 불행이라는 굴레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그러다 정말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내가 귀가 얇아서 세뇌가 잘 되는 타입이다.(웃음)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스스로 자꾸 주문을 걸면서, 그때 유튜브도 오픈했다. 유튜브에는 즐거운 모습, 보람으로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만 올린다. 이런 것에 대해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아직도 존재하지만, 내 스스로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유튜브를 부모님과 멀리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신다. 내가 해고됐을 때 다들 걱정을 많이 하셨다. 예전에는 딸과 손녀의 근황을 TV로 확인하셨지만, 이제는 못 보시지 않나. 그런데 이제는 유튜브 영상 속에서 내가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신다. 예전의 나라면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튜브를 시작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가족들과 스스로의 행복한 삶이 더 중요하다. 결국 이것이 유튜브를 열게 된 계기고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지만이 TV' 보러 가기! ]
처음에는 스스로 촬영하고 편집까지 해야 되는
일련의 과정이 익숙치 않았을 것 같은데.
사실은 MBC 입사할 때부터 기획, 촬영, 편집까지 스스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작가나 기자가 써주는 대본을 읽기만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수동적으로 느껴졌었고, 이제 아나운서도 주체적인 존재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룰 줄 아는 컴퓨터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니, 직장인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 일정 금액을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더라. 국비를 지원 받아 학원을 다니면서 프리미어 프로, 애프터 이펙트, 포토샵 등을 배웠다. 오히려 그때는 바로 기술을 활용할 기회가 없다가, 회사로부터 해고당하고 유튜브를 열면서 결과적으로 노력이 빛을 보게 됐다.
혼자 촬영까지 하다 보니 미처 카메라에 담지 못해 아쉬운 에피소드도 생긴다. 얼마 전 운전 중에, 도로에서 누가 내 차를 빤히 쳐다보는 거다. 내 차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해서 창문을 여니, 그분이 “이 차를 중고로 사셨냐”며 “내가 예전에 이 차 주인이었다”하더라. 너무 신기했고 재밌었는데, 카메라에 담지 못해 아쉬웠다. 나도 유튜버 다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웃었다.(웃음)
브이로그는 지금까지 본인이 해왔던 뉴스 보도와는 성격이 많이 다를 텐데,
브이로그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뉴스는 시청자와 실시간 소통이 불가능하고 보여지는 이미지가 한정적이다. 그런데 처음 매불쇼에 출연했을 때, 실시간 댓글이 막 달리니까 너무 신기한 거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웃기네” 같은 반응을 보면서 이렇게 시청자와 친구가 되면, 내가 나중에 뉴스를 할 때도 어려운 뉴스마저 친근감 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통을 통해 시청자와 하나로 묶이는 느낌이 브이로그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 대해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스스로를 여실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 같다. 예전에는 ‘여기는 살려 주셨으면 좋겠는데’ 했던 부분이, 막상 방송 보면 편집돼 있어 아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브이로그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매력에 대한 PR이 돼서 좋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영상이 궁금하다.
예전에는 현장음과 자막으로 꾸민 영상을 올렸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브이로그와 별 다른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더라.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더빙 브이로그’다. 예전부터 라디오를 진행해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아나운서로서의 장점을 잘 녹일 방법을 고안하다 떠오른 방법이다.
지난 10월에 ‘더빙이 다 하는 신개념 브이로그’를 처음 업로드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댓글이 100개 가까이 달렸는데, ‘저 집중력 없어서 유튜브 영상 다 스킵하면서 보는데 이건 너무 웃겨서 통으로 다 봤다’는 댓글 등 신선하고 재밌다는 내용이 많았다.
아나운서의 바른 목소리 톤으로 내용은 일부러 ‘병맛 드립’을 연출하려 했던 것이 즉효였던 것 같다. 구독자분들께서 영상과 음성의 부조화 속 개그 코드를 잘 포착해 주셔서, 요즘도 더빙 브이로그를 계속 올리고 있다.
본인이 주로 시청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벤치마킹하는 채널이 있다면?
보통 내 일상 브이로그를 올리기 때문에 주로 다른 사람의 브이로그를 많이 볼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오히려 일부러 안 본다. 뭔가 고정관념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그 틀을 답습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최근 심리 쪽에 관심이 생겨서 사람의 마음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유튜브나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하 세바시)’ 영상을 주로 본다. 세바시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셀럽이나 연사들이 나와서 하는 15분짜리 강연이다. 세바시에 워낙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좋은 인사이트와 영감을 많이 얻는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브이로그 주제가 있는가?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마음이 힘든 상황을 몇 차례 겪다 보니까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 새롭게 도전하게 된 분야가 ‘아로마 테라피 지도사 자격증’이다. 원래 한양대 상담심리학과 대학원을 가고 싶었는데 이쪽 학부 전공이 아니다 보니 기초 지식이 전무했다. 기초 과정을 찾던 와중에 지도사 자격증 과정을 알게 되어 수업을 듣게 됐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다양한 아로마 오일의 각종 효능에 대해 배우고 직접 발향과 블렌딩을 해보니 너무 재밌는 거다. 불면증에 좋다는 오일을 직접 만들어서 들고 다니며 이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요즘 매주 아로마 테라피 수업을 듣고 있고, 이제 곧 자격증 시험도 본다. 내년 하반기에는 심리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전문성을 더 키워볼 요량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브이로그도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채널로 발전시키고 싶다. 실질적인 고민 상담을 위해서는 ‘라이브’를 해야 되는데, 요즘에는 회사 이슈가 있어서 선뜻 라이브를 켤 수 없다. 회사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나 혼자만의 입장을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고민을 상담해줄 정도로 심리에 대해 배운 것도 없어서, 역량을 좀 더 쌓은 뒤에 심리를 주제로 한 영상을 찍어보고 싶다. 내 채널에서 힐링을 얻어가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프리랜서나 계약직으로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관행 때문에
다수의 아나운서들이 N잡러로 일한다. 주변의 사례가 궁금하다.
주변의 사례라면, ‘이보다 더한 N잡러는 없다’는 케이스가 있다.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빅뱅 백댄서로 춤에 일가견을 보이더니, 지역방송 아나운서가 되더라. 나중에는 성우까지 됐고, 요가와 스피치 강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이 언니는 방송과 녹음 사이에 시간이 뜨면, 그 자투리 시간에 요가나 스피치 강의를 한다. 그 모습을 보며 ‘하루를 이렇게까지 알차게 쓸 수 있구나’를 배웠다.
물론 이렇게 본인이 원해서 N잡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프리랜서 아나운서 본업만으로는 생활이 안되니까 필연적으로 N잡러가 되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모 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때 첫 월급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사실 아나운서는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되는 직업인데, 프리랜서라는 위치 때문에 보도에 대해 굉장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임하게 된다. 회사가 내일이라도 당장 나를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가 팩트만을 전달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회사도 그에 맞는 지위나 권리를 보장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프리랜서코리아 같은 플랫폼의 출연이 N잡러 생활을 꾸려 나가야 되는 아나운서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길 기대하는 바다. N잡러로서의 삶을 피할 수 없기에, 프리랜서코리아에서 본인의 재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아직 회사와의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출퇴근은 하고 있지만, 아직 회사와 관련된 일 자체는 없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출근 후의 시간이 무료하게만 느껴졌는데, 이 시간을 기회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유기견 봉사도 다니고, 나를 위한 시간에 최대한 많이 투자하고 있다.
사실 최근에 놀라고 있는 것이, 우리가 회사와의 소송을 이어가는 동안 프리랜서나 계약직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사측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지역 아나운서분께서 목소리를 내셨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 조성됐으면 좋겠다. 우리가 찾아야만 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위해서 그렇다.
본인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이 사회를 밝게 만드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거창한 다짐은 못하겠다. 계속해서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게나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때 함께 연대해줄 수 있는 사람은 꼭 되자고 다짐했다.
이 부분은 꼭 인터뷰에 실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만약이라도 내가 정신이 헤이해졌을 때, 이 인터뷰를 보고 정신을 차릴 수 있게. 요즘 계속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을 잊지 않기 위해 타투를 해야 되나- 고민까지 할 정도로…(웃음)
그리고 브이로그를 통해 계속해서 소소한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내 방송을 보고 ‘아 힐링을 얻었다’ 느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목표가 작아졌다 할 수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게 정말 소중한 것이라 느낀다.
박지민 아나운서의 애장품 공개!
-셀카봉 : 유튜브를 하면서 각종 셀카봉을 구입했었음. 사진 속 셀카봉은 조명까지 나와서 꽤 유용하게 사용 중.
-카메라 : 마찬가지로 유튜브를 위해 구입. 카메라를 거의 10년만에 다시 샀는데, 요즘 카메라는 미러리스도 되고 새로운 기능이 많아서 놀랐음.
-아로마오일: 매주 화요일마다 아로마 테라피 지도사 2급을 따기 위해 자격증반을 다니고 있음. 비염과 불면증에 좋은 오일을 직접 제조해서 들고 다니며 수시로 애용함.
-컬러링북: 스트레스와 잡생각이 심해질 때 하는 취미활동. 스케치만 되어있는 그림에 컬러를 입히는 작업인데 집중도 잘되고, 하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지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