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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간 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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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슬리 보홀 Apr 04. 2016

<월간 보홀> 창간호

 #EAT, DIVE, SUNSET, REPEAT

#EAT, DIVE, SUNSET, REPEAT


  2012년 2월 세계를 여행한다며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와 유럽을 지나 아프리카로 갈 때 즈음 계획과 다르게 호주로 이동해 오랫동안 머물게 됐다. 호주 멜버른에서 반년 동안 여행과 생활에 경계에서 일을 하며 경비를 마련해 호주와 뉴질랜드를 둘러보고 다음 여행을 준비했다. 계획한 경로는 호주에서 싱가포르 - 필리핀 - 태국을 경유해 이집트로 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남미를 지나 북미까지. 내 세계일주 계획을 다시 이어가기 위한 시작이었다.


필리핀 보홀의 알로나 비치. 보홀에서 처음으로 일했던 다이브 센터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그 후 2013년 5월 처음 필리핀 보홀에 도착했다. 필리핀 세부에서 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보홀은 사실, 필리핀에 오기 전까지 알지 못 했던 곳이다. 필리핀 세부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들린 곳이었지만 바닷속으로 자주 들어갈수록 바다에 대한 욕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스킨스쿠버 오픈워터,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레스큐, 다이브마스터 과정에 대한 욕심과 더불어 프리다이빙의 대한 관심까지. 그러다 세부 다이브 센터에서 만난 친구(보라)가 보홀에 프리다이빙 강사가 있으니 프리다이빙도 배우고 발리카삭 섬으로 펀 다이빙을 가자는 제안에 처음으로 물길 여행을 위한 보홀 땅을 밟게 됐다.


보홀에서 만난 물길여행자 보라와 래리 그리고 (사진 찍는) 나.


  보홀에서의 첫날, 설렌 마음으로 프리다이빙 레벨 1 교육을 받기 위해 다이브 센터로 갔을 때가 아직도 또렷하다. 여기서 프리다이빙 강사인 김동하 강사님과 나와 함께 교육을 받게 된 친구인 래리를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프리다이빙을 매개로 물길 여행길에 만나게 된 나와 보라, 래리는 동갑내기에 모두 장기 여행자였다. 보라는 이집트에서 다이빙을 시작해 필리핀 세부에서 다이브 마스터 과정을 마친 후 태국에서 강사 과정을 준비할 예정이었고 래리는 호주에서 다이빙을 시작해 필리핀 보홀에서 다이브 마스터 과정을 워킹 스튜던트로 형식으로 마무리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이제 다시 여행을 시작하다 물길로 빠져들고 있었고 모두 여행과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같아 쉽게 가까워졌다. 프리다이빙 교육이 끝나고는 함께 스쿠버 펀 다이빙을 가고 매일 술을 마시며 해변에 누워 시간 가는지 모르고 놀았다. 


래리와 래리의 돼지. 돼지는 이날 래리의 송별회로 마지막 산책이 됐다.

 그러다 래리가 일하는 다이브 센터에서 자기 다음으로 일 할 워킹 스튜던트를 구한다고 했다. 래리는 한국에 들렀다가 스킨스쿠버 강사과정을 준비할 거라며 나에게 그 자리를 제안했다. 워킹 스튜던트는 다이브 센터에서 교육비 없이 다이브마스터 과정까지 교육을 받고 최소 6개월 간 다이브마스터로 강사를 보조해 일하는 형식이다. 게다가 숙식을 제공하고 소정의 급여도 있었기에 나 같은 여행자는 절대 손해 보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 건 바로, 바다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보홀 나팔링 비치. 팡라오 섬의 북쪽으로 해안 절벽으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나에게 바다는 시간을 내서 먼 거리를 와야지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도 바다에서 오랜 시간 하릴없이 머물기에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반년간 다이빙을 하며 매일 바다를 보며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로의 내 여행 계획을 미룰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내 평생 언제 바다에서 살아 볼까'라는 생각으로 덜컥 승낙해 버렸다.


세계적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한 보홀 발리카삭 섬의 산호와 해양 생물들.
보홀 발리카삭 섬의 잭피시 떼와 함께 유영하는 스쿠버 다이버.


  2013년 6월부터 필리핀 보홀, 알로나 비치에 있는 다이브 센터에서 워킹 스튜던트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불과 한 달 전에 구입한 태국행 항공권은 버리고 여행 계획도 딱 반년간 미룰 생각이었다. 물론 바다에 산다는 건 생각만큼 멋진 일이었다. 바다에 살며 매일 아침 붉어지는 바다를 보고 그 위에서 지는 해를 봤다. 아침 일찍 발리카삭 섬으로 가는 길에 먹이 사냥을 나온 돌고래들과 놀고는 스쿠버다이빙으로 섬 구석구석을 훑었다. 물속에서 내 숨소리를 들으며 바다거북이와 잭피시 떼를 만나고 다양한 해양 생물들을 알았다. 그리고 해변에 살며 매일 바람과 바다, 해와 달, 별과 구름을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파도를 보고 매일 다른 달의 의해 물 때가 달라지는 시간을 알며 별을 보고 별자리를 그릴 수 있었다. 늘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사소한 자연의 움직임이었지만 보홀에서는 달랐다. 매일 바다와 함께하는 삶이자 삶이 바다였다. 


보홀 다나오 비치의 노을. 알로나 비치보다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보홀 다나오 비치의 노을. 같은 바다지만 매일 다른 빛으로 물든다.


 보홀에서 반년간 다이브마스터 과정이 끝나고 태국에서 스쿠버 강사과정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처음 보홀에서 함께한 보라와 래리는 벌써 태국 푸켓에서 스쿠버 강사가 되어있었고 모두 다시 바다에서 만나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홀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김동하 강사님에게 프리다이빙 레벨 2&3 교육을 받자 스쿠버와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스쿠버다이빙이 바닷속에서 내 숨을 듣고 볼 수 있다면 프리다이빙은 내 안에서 숨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깊게 들어갈수록 내 몸을 온전히 알아갔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떤 고민도 없을 만큼 프리다이빙과 가까워지자 김동하 강사님은 오히려 내게 프리다이빙 강사과정과 일자리를 제안했다. 프리다이브 팡라오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할 강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반년 전 보홀에 머무느냐 여행을 떠나느냐에 대한 선택을 하고는 다시 보홀에 더 머물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보홀 바다의 빛과 결은 단 한번도 같은 적이 없다.
집 주변의 로컬 숍. 매주 일요일 아침에 바로잡은 돼지고기를 살 수 있어 자주 찾는 곳이다.


 물론 보홀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으로 가깝게 느껴보는 자연과 바다, 그로 인해 맺어진 인연을 쉽게 떠나지 못 했다. 그동안 짧게 여행하며 만난 인연들과 다르게 보홀의 현지인들은 나를 친구이자 동료로 생각해줬다. 그만큼 바다에 오래 머물렀기에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같은 바다라도 이번엔 프리다이빙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보홀의 유명 리조트인 '보홀 비치 클럽(B.B.C)'. 바다에 살아도 다른 바다를 놀러 가는 다이버들.
아프리카 여행 중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건너편은 다른 국가인 잠비아다.


 떠나기 위한 이유보다 머물기 위한 이유를 찾고 있던 나는 결국, 보홀을 떠나지 못 했다. 2014년 1월에 모든 과정을 마치고 프리다이빙 강사로 활동하며 바다가 맺어준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했다. 그러다 처음 바다를 만나고 1년 6개월 만에야 태국을 거쳐 이집트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보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보홀 돌조 비치에서 프리다이빙 후 돌아오는 다이버들
2014년 처음으로 프리다이브 팡라오에서 주최한 프리다이빙 대회. 사진은 Martin Zapanta.


 지금 보홀에 있게 된 사연처럼 그동안 여행을 하며 늘 우연에 기대고 인연을 아꼈다. 세계여행을 가기 위한 목적도 나에 대해서 더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다 가슴이 뛰는 일을 만나길 원했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행운을 얻었다. 바다에 있는 순간만큼은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고 그랬기에 아직도 보홀을 떠나지 못한다. 보홀에서 프리다이빙 강사로 활동하며 우연에 기대고 새로운 인연과 함께 하는 물길 여행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물론 이제는 매일 바다와 함께 하는 삶이자 삶이 여행이지만.


보홀 다나오 비치가 놀이터인 현지 아이.


 그러다 지금까지 써 왔던 여행기와는 다르게 보홀에서 여행하며 만나고,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매일 먹고 다이빙하고 노을을 보는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바다의 결과 노을의 빛은 같았던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속에서 내 생각과 감정들도 바다와 노을처럼 한결같지 않기에 지금도 나와 보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런 보홀에서 여행과 생활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 붙인 이름 <월간 보홀>. 누구보다 내 게으름을 알기에 스스로 마감을 정하고 매월을 정리하기 위한 이름이지만 이런 여행길을 기록하고 싶었고 이제는 당신과 나누고 싶다.  

  2016년 3월을 시작으로 매월 초에 올릴 예정이다. 함께 보고, 듣고 생각하는 내 글을 통해 당신이 바다를 생각하고 보홀을 찾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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