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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슬리 보홀 Apr 12. 2016

<월간 보홀> 4월호

#오늘은 바다가 장판이겠지

#오늘은 바다가 장판이겠지


 오늘도 바다로 출근해 다이빙을 한다. 요즘 바다는 꽤 잔잔해졌지만 가끔씩 바람에 휩쓸려 거대한 파도를 만들 때도 있는 그런 날이다. 수온은 조금 올라 27도에 시야는 여전히 10m 내외다. 바람은 북쪽에서 불어와 내가 다이빙하는 다나오 비치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가끔씩 북에서 서쪽이나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너울이 거칠기 일쑤다.


뱃머리에 앉아 바다를 건너는 출퇴근 길은 늘 설렌다. 오전과 오후에도 달라지는 바다의 결과 색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날씨를 확인한다. 창가에 비치는 햇볕을 보고는 구름이 얼마나 있는지,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에 따라 내가 가야 할 바다를 대충 떠올릴 수 있다. 당연히 거친 바다보다 잔잔한 바다에서 다이빙하기 좋아 바다가 좋은 날은 나도 좋은 날이다. 다이버들은 바다에 너울이 없이 잔잔할 때 흔히 '바다가 장판이다.'라는 표현을 쓴다. 장판일 때면 방바닥 마냥 바다에 아무런 미동도 없어 수면이 거울처럼 비치는 상태다. 바람이 없으면 너울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보홀에서는 4월부터 6월까지 그런 날이 많다. 그럴 때면 늘 바다가 ‘장판’이고 시야도 최대 30m까지 나온다. 내가 출근하는 바다가 곧 그렇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설렌다. 아마 특별히 추웠던 겨울날, 봄을 그리는 그런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출근과 동시에 마주하는 보홀 다나오 비치. 수면이 거울처럼 비칠 때면 빨리 바다에 잠기고 싶다.
보홀 다나오 비치는 관광지인 알로나 비치와 다르게 현지인들의 낚싯배들이 정박돼 있어 더욱 정겹다.


 매일 아침 8시. 출근과 동시에 다이브 센터에서 아침을 먹는다. 바로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앉아 다이버들과 “오늘 파도가 높아서 힘들겠어요.”, “아침부터 구름이 많아서 춥겠네요.” 혹은 “오늘 바다가 장판이네요!” 같은 말을 하며 곧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얘기한다. 바다에 나가기 전부터 바다의 결과 색을 보며 햇볕과 기온, 바람의 방향을 느낀다. 그렇게 나의 사무실은 매일 기온과 수온, 바람과 파도, 조류와 시야 등에 따라 환경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곳이다.


바다가 장판인 날의 다나오 비치. 하늘과 바다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렇게 매일 바다가 주는 아름다움은 무진하다.
바다가 잔잔할 때에 노을은 어느 날보다 특별하다. 바람이 없으니 구름도 쉽게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후 다이빙 슈트를 입고 배에 올라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수심이 나오는 곳까지 나간다. 육지를 떠나 바다로 나가며 수심이 얕은 곳의 색과 깊은 곳의 색을 보면 금방 그날의 시야를 가늠할 수 있다. 수면에서부터 시야가 좋은 날은 모두 표정이 밝다. 그리고 장비를 챙겨 망망대해에 처음으로 몸이 잠기면 빛이 푸른 바다를 비춘다. 이 순간이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작은 행복이다.


처음 바다에 잠기면 빛이 푸른 바다를 비춘다. 그리고 푸른빛의 바다에 더 깊이, 오래 머물기 위해 숨을 고를 때. 나는 다시, 나에게 잠긴다.


 그만큼 내 일을 시작할 때의 순간을 매일 기다리고 기억한다는 건 큰 행운이다. 그런 내 직업은 프리다이빙 강사로 매일 바다에서 일한다. 호흡 장비 없이 더 깊이, 오래 바다에 머물고 싶은 이들을 위한 동행이기에 함께 물속에 머물다 수면 위로 올라와 함께 호흡하는 일의 반복. 이곳에서 나의 노동은 그런 것이다. 나에게는 즐거운 밥벌이지만 함께 하는 이는 바다에 대한 모험과 도전, 재미 혹은 안정이 될 수 있는 그런 일.


수면에 떠 있는 프리다이빙용 부이. 망망대해에서 이 부이에 의지해 호흡을 고르고 참은 숨을 몰아쉰다. 바다가 사무실이라면 부이는 내 책상일 것이다.
하루를 마무리한 낚싯배와 그물. 그물의 상태에 따라 오늘 이 그물이 얼마나 많은 행복을 낚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한없이 넓은 바다에서 둥글고 노란 부이에 의지해 모두 호흡에 집중하고 있을 때 멀리 작은 배 한 척이 보인다. 어부의 낚싯배로 혼자 노를 저어 우리가 있는 곳까지 나온 거다. 육지에서부터 거리는 약 2km 떨어져 있어 모터가 있는 우리 배로도 20분은 족히 걸린 거리다. 그곳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그물을 넓게 펴고 물고기가 잡힐 때까지 기다린다. 보통 참치를 잡을 때 이렇게 멀리 나오지만 그건 모터가 있는 낚싯배들이나 하는 일이다. 어부 혼자서 나무로 만든 작은 배에 의지해 이곳까지 노를 저어 왔다는 사실만으로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물을 걷고 내리는 일을 반복하지만 잡히는 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무언가 잡힐 때까지 그물을 펴고 걷으며 반복하는 그의 노동은 이곳 바다에 나와 같은 한 부분이다.


어부와 나의 바다는 같다. 그들이 무엇을 낚던 내가 얼마나 깊이 잠수하던 바다는 우리에게 삶과 생활을 주었다.


 물론 어부는 이곳에 거의 평생을 나왔을 것이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날씨를 확인하고 가족들과 아침을 먹으며 얘기할 것이다. “오늘은 파도가 높아 멀리 나가기가 어렵겠어.”, “요즘은 참치가 잘 잡힐 때니 일찍 나갈게.” 혹은 “오늘은 바다가 장판이네!” 같은 말을 하고는 노를 저으며 바람의 방향을 따라 파도와 조류를 느끼며 나아갈 때 바다의 푸른색을 보며 그의 표정도 밝아지겠지. 그리고 적당한 위치에서 그물을 고르고 처음 바닷속으로 내릴 때 그 순간은 그에게도 매일 기다리는 순간이자 작은 행복으로 기억되는 일일 것이다. 비록 오늘 아무것도 잡지 못했어도 닷새 중 하루라도 크거나 많은 물고기를 잡았을 때 지금의 그의 노동이 보상됐기에 지금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은 이유다.


낚싯배와 노을. 바다가 장판인 날은 나도, 어부도 좋은 날을 보냈다. 그리고 바다는 어느 때보다 경이로운 노을을 선물한다.


 그런 그에게는 이곳까지 와서 수면에 부이만 잡고 엎드려 쉬다 물속으로 들어가 한참 뒤 빈손으로 나오는 우리가 어떻게 보였을까. 그래도 바다는 그에게 육지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과 생활을 주고 있었기에 매일 바다로 나왔다. 그런 바다에서 서로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같은 바다에 매일 나오는 나도 그와 다를 게 없다고. 그가 많은 물고기를 잡던 내가 더 깊이, 오래 잠수하던. 지금까지 바다는 내게 삶과 생활을 주고 있었다는걸. 결국 난 어부와 같았다. 바다에서 그의 값진 노동과 행복만큼 나의 노동과 행복은 상대적이다.


3년 전 처음 보홀을 찾았을 때에 바다. 멀리 보이는 발리카삭 섬에 처음 몸이 잠기자 난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한동안 행복을 좇으며 여기저기서 방황했다. 무엇이 행복인지 몰라, 어떤 일을 하던 늘 ‘지금 행복해?’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내일은 오늘보다, 앞으로의 나는 지금보다 즐겁길 바랐다. 즐거움을 위해 여러 산을 오르기도 하고 정처 없이 걸어보기도 했다. 그저 변하는 건 햇볕과 구름, 바람이었지만 내가 보는 풍경은 늘 달랐고 그때마다 내 마음도 춤을 췄다. 그러다 찾은 바다여서 그랬을까. 푸른 바다에 처음 잠겼을 때 나는 어린아이 마냥 좋아했다. 호기심이 가득했고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와 행복했다.


3월의 노을. 매월 달라지는 구름과 바람, 빛은 아직도 예측할 수 없다. 바다가 보여주는 만큼 찾아 볼 뿐이다.
바람이 멈추고 빛을 머금은 구름이 머물자 어느 때보다 잔잔한 바다는 하늘을 비춘다. 나는 이 순간에 바라보는 것 외에 더할 일이 없다.


 그런 바다가 내게 밥벌이가 되고 당연한 일상이 되자 다시 ‘지금 행복해?’ 라는 질문을 던지던 나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바다에서의 내 노동이 지겨웠을까. 무엇이 욕심인지는 알 턱이 없지만 그저 변한 건 햇볕과 구름, 바람과 파도, 춤추는 내 마음뿐이다. 비록 오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권태롭더라도 하루라도 잔잔하고 푸른 ‘장판’ 같은 바다에 잠겼을 때 나의 일상이 보상됐기에 지금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은 이유다. 어부의 바다처럼 내 바다도 늘 같았다.


자주 뱃머리에 앉아 장판 같은 바다에 발이 닿을 때마다 이곳에 머물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평생 바다를 떠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시 아침에 눈을 뜨고 창가에 비친 햇볕과 바람을 느끼며 바다를 생각했다. 그동안 바다에 바람이 불어 사나운 너울이 생기듯 내 마음도 바람에 출렁였겠지. 단지 바다는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바다로 출근해 다이빙을 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 마음과 바다가 평화롭길 바라며 곧 ‘장판’ 같은 바다에 잠길 거라고.




#김훈_라면을 끓이며



 최근 김훈의 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가 출간됐다. 기존에 절판됐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해>, <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의 글을 추리고 조금의 새 글을 묶어 나왔다. 재밌게도 요즘 쿡방이 대세인 만큼 김훈도 새 글 ‘라면을 끓이며’를 통해 자신의 특별한 라면 레시피를 소개한다. 700ml의 물과 스프 2/3, 대파와 계란을 넣고 끓인 라면이 맛있다며 예약판매 때는 자신이 즐겨먹는 라면과 양은 냄비를 사은품으로 책과 함께 주기도 했다. 물론 책의 내용은 출판사의 소개처럼 ‘산문의 정수’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이제는 절판된 책을 찾아 헤매지 않고 다시 그의 글을 모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의 새로운 글로는 ‘라면을 끓이며’, ‘바다’, ‘국경’, ‘남태평양’, ‘세월호’로 5편뿐이지만 다른 글들과 엮어 총 5부로 소제목 밥, 돈, 몸, 길, 글로 나눈다. 이중 2부 돈의 ‘세월호’는 중앙일보 2015년 새해 기고와 이투데이에 세월호 1주기 특별 기고를 옮긴 것이다. 아직 이 글을 보지 못했다면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 중앙일보, 2015년 새해 특별 기고 (2015.01.01)

+ 이투데이, 세월호 1년 특별 기고 (2015.04.16)


 이 글을 처음 읽은 지 한 해가 지났고 다시 세월호 참사의 2주기가 되는 4월이다. 2014년 4월 16일, 2년 전 나는 필리핀 세부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다. 동생의 결혼식으로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이날 뉴스에 진도 해안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했고 전원 구조됐다는 속보를 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침몰해 가는 세월호의 실시간 사진과 탑승자와 실종자의 수치만 변하고 있었다. 결국 한국에 도착해서야 탑승자 476명 중 172명만 구조됐다고 했을 때 나는 너무 기막히고 화가 나 어디서부터 슬퍼해야 할지 알지 못 했다.

 유민이의 젖은 6만원. 늘 세월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따라오는 먹먹함이다. 참사 8일 만에 유민이가 품고 나온 '젖은 6만원'에 얼마나 많은 꿈을 담고 있었을지 세어보지 못하지만 그 돈이 주는 의미를 충분히 안다. 만약 제주도에 잘 도착해 그 6만원이 쓰였다면 지금의 유민이는 아마 대학생이 되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아직도 난 젖은 6만원을 보내지 못한다.


슬픔과 분노를 품은 우리의 희망은 진실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는 힘이다.  <희망풍선>, 김예림


 물론 세월호가 침몰하고 난 후 그 슬픔과 분노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그해 한국에 도착해서 만나던 사람들마다 이야기하던 세월호는 이제 아무에게도 들을 수 없다. 다시 보홀로 돌아와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 규명은 잊히고 정치적으로 분열되다 결국 다른 관심과 의제로 묻혀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다시 너무 기막히고 화가 나 어디서부터 슬퍼해야 할지 알지 못 했다.

  2015년 새해에 김훈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책에서.


우리는 세월호를 도려내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 우리는 새로 생기는 위원회를 앞세워서, 세월호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위원회가 동어반복으로 사태를 설명하지 말고 그 배후의 일상화된 모든 악과 비리, 무능과 무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공생관계를 밝히는 거대한 사실적 벽화를 그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유민이의 젖은 6만원의 꿈에 보답해주기 바란다. 나는 사실 안에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사실의 힘에 의해 슬픔과 분노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동력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부끄럽게도 내가 세월호의 진실 규명을 위해 한 일은 없다. 단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침몰 이후에 마주한 우리 사회의 헐벗은 현실과 수준, 그 속에 작은 희망을 기억한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능과, 상부 보고와 의전, 기념 촬영 따위를 거들먹거리던 한심함, 그리고 희생자와 유족들을 조롱하고 지겹다고 큰소리치던 더러운 언설들. 그때 느꼈던 슬픔과 분노는 아직도 덜어내기 힘들지만 작은 희망에 기대 버틴다.

 세월호 참사의 2주기를 앞둔 지금, 밝혀진 진실은 ‘구할 수 있었다’ 뿐이다. 사고의 주체인 청진 해운과, 선원, 정부, 해경들만 제 역할을 했다면 분명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제 역할을 했는지 조차 2주기를 앞둔 지금까지 제대로 규명되고 고쳐지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에 나는, 이런 글 밖에 쓰지 못한다. 그리고 작은 희망에 기대 다시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되새기며 유민이의 젖은 6만원을 평생 보내지 않을 것이다.




#Cage The Elephant_Melophobia



 내가 가장 즐겁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음악을 듣는 행위다. 특히 보홀에서 바다가 보이는 해먹이나 썬 베드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햇볕과 바람, 기온 등을 느끼며 귀에 들려오는 멜로디와 가사를 듣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몽상하는 순간을 가장 아낀다. 그래서 내게 음악을 듣는다는 건 조각난 감정과 생각을 모아 보는 놀이 같은 일이다.

 나에게 무언가 보고, 듣고, 말하는 행위 중 가장 편한 건 듣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게 무엇을 만들고 표현하는 기교는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음악을 연주하거나 부른다는 건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늘 예술을 동경했으나 재능이 없어 보고 듣는 것만을 즐겨 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는 이들의 음악을 자주 찾아 듣게 된다. 어느 장르던 상관없이 스스로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되면 질릴 때까지 듣고서야 다시 다른 아티스트를 찾아가는 식이다. 평생을 이런 식으로 음악을 듣다 보니 깊이는 없지만 넓고 얕은 음악적 취향으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일이 보홀에서의 낙이다.


Cage The Elephant. 직역하면 코끼리를 가둬라. 보컬 Matthew Shultz(가운데)의 목소리와 연주는 어느 밴드보다 조화롭다.


 그래서 그동안 보홀에서 혼자 듣기 아까운 음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이번 4월호를 쓰면서도 몇 번이나 재생했던 곡들이기도 하다. 그중 이번 3월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은 Cage The Elephant의 세 번째 정규 앨범 <Melophobia>이다. 케이지 더 엘리펀트는 미국 켄터키 출신으로 미국에서도 그다지 대중적인 밴드는 아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인디 락으로 얼터너티브 락, 개러지 락, 사이키델리 락으로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네 번째 정규앨범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앨범은 2013년에 발표한 <Melophobia>이다. 이들의 다른 앨범과 달리 단 한 곡도 쉽게 넘길 곡이 없을 만큼 매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 특히 밴드의 보컬 Matthew Shultz의 개인적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쓴 가사가 돋보이고 곡의 연주도 훌륭하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는 'Cigarette Daydreams'과 'Telescope', 'Come A Little Closer', 'Take It or Leave It'을 꼽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앨범은 2015년 그래미 어워드 'Best Alternative Music Album'부분에 노미네이트 됐었다.


 먼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케이지 더 엘리펀트의 두 곡을 <월간 보홀> 4월호에서 소개한다. 함께 들으며 글을 다시 읽는다면, 아마도 보홀 바다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 Cage The Elephant - Cigarette Daydreams

+ Cage The Elephant - Tele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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