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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슬리 보홀 Sep 19. 2016

<월간 보홀> 9월호

#어른을 찾아서

#어른을 찾아서


 어른이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다면, 바로 어른을 만나는 일이다. 나도 이미 성인이 되어 생물학적 어른이 되었지만 그동안 다른 의미의 어른을 만나지 못 했다. 사실 지금도 어른을 찾지만 이제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기도 했다. 나에게 어른이란 자신의 말과 행동의 비롯된 신념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지금까지 만난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그런 어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지금은 없는 위인이거나 종교인, 정치인, 예술가, 탐험가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평범한 사람일 때도 있다. 구전 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해 들은 그들의 이야기는 모든 어른들을 참회하게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역시 좋은 어른들은 있구나. 그런데 왜 내 주변에는 없는 거지? 



 그동안 나에게도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이 어른인지 몰라 여기저기에 묻고 다양한 답을 들었다. 그리고 지켜봤다. 그들이 말하는 어른스러움은 사랑과 나눔, 희생, 정의, 실천, 관용 등 다양한 미사여구들로 꾸며졌지만 결국 행동은 달랐다. 물론 좋은 어른이겠다 싶은 이들도 만났었다. 업무적으로 만나 값진 조언을 얻기도 하고 여행길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내 고민을 쉽게 풀어주기도 했다. 순간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자 의외로 사소한 말과 행동들로 그런 마음은 금세 시들었다. 



 스물한 살, 한 언론사의 인턴기자로 일할 때다. 그 분야에서 꽤 이름이 높던 선배 기자가 내 사수였다. 첫 만남부터 나에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가는 취재마다 나를 꼭 데리고 다닐 정도였다. 그리고 항상 마감이 끝나면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술자리는 자신의 학생 운동 경험과 언론 개혁, 정치에 대해 말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밖에 소외받는 이들을 얘기했다. 정말 뜨거웠다. 그의 신념은 정말 글과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닮고 싶었다. 나중에 이런 기자가 되고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감 후 술을 마시며 또 한번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 냈다. 적당히 취기가 돌자 함께 집으로 향했다. 같은 방향이라 지하철을 타고 1호선 어느 역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 기다렸다. 선배는 야외인 승차장 구석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흩어지자 멀리서 나이가 지긋한 승차장 경비원이 뛰어왔다.

“아저씨! 여기 금연인 거 몰라? 당장 불 꺼요!”

“아 네. 꺼요. 꺼.”

“아니 알만한 사람이 뭐 하는 거요? 뭘 배웠어?”

“뭐라고? XXX아. 네가 뭔데?”

 뜨거웠던 선배의 행동과 말은 이렇게 한 번에 식어버렸다. 흥분한 경비원과 술에 취한 선배를 힘겹게 말리고는 지하철을 태워 보냈다. 그 후로 선배의 뜨거웠던 말들은 줄었다.



 나는 단지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었던 것뿐인데. 평생의 스승을 만난 것 마냥 들뜬 마음은 쉽게 상처받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배웠다. 저런 말과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나이가 먹을수록 스스로 ‘어른이란?’ 답을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있었다. 물론 채워나갈수록 나조차 지키기 어려운 기준들뿐이었다. 

 어른이라는 건 철이 드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청춘처럼 삶의 한순간이지도 않으며 살아있는 동안 되어야 할 존재기도 하다. 말이 앞서고 관습을 따르는 권위적인 어른이 아닌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비치는 성품과 신념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될 수 있는 존재.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나는 하지 말아야 하는 말과 행동을 알게 됐다. 다시 어른의 나이가 겹겹이 쌓이면서.



 10대 때에는 20대의 모든 존재를 동경했다. 길고 지루했던 학업을 마치고 자신이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며 어른이 된 모습이 좋았다. 그러다 내가 20대가 됐지만 난 여전히 어렸고 모든 일이 서툴렀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보이는 30대의 모습은 달랐다. 여유가 있었고 모든 일에 담담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한 것처럼 무척 어른스러웠다.

 이제 서른하나, 30대의 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어리고 모든 일이 서툴다. 그리고 슬펐다. 결국 지금의 나는,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행동과 말을 하는 어른이 되지 않아야지 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뱉어진 말들은 지극히 어른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필리핀 보홀에서도 가끔씩 20대의 친구들을 만나면 조언을 넘어서 어른 행세를 하는 나를 발견한다. 세상에 대해 온갖 근사한 말들을 늘어놓고는 따듯한 어른의 표정으로 말한다.

“네가 생각한 A보다 B가 더 나을 거야. 차라리 C도 나쁘지 않지. 내가 보기엔 A는 아니야.”
 
 이처럼 해보지도 않은 일을 내 경험처럼 말하는 능력이 생기기도 했고 조금 더 편한 길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라고도 한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도 절대 저렇게 되진 않을 거야 했던 누군가의 모습으로 내가 되었다. 그리고 두렵다. 또 누군가에게 어설픈 어른 행세를 할까 봐.



 그동안 여행을 하며 마주한 삶의 풍경에서 나는 어른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사실 어른이 되기 위한 여행을 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많은 걸 보고 알며 경험했다고 한들 어디에도 내가 그토록 찾았던 어른은 없고 내가 그런 어른이 될 리도 없다. 나는 그저 그동안 보았던 ‘어른스러움’을 학습한 서른하나 일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어른이 됐나요?”, “좋은 어른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럼 좋은 어른은 뭐죠?” 나의 질문에서 좋은 어른을 만난 사람도 있었고 스스로 어른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어른은 늘 고민하고 걱정한다. 완벽하지 못하지만 어른스러움의 맞게 행동하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다. 누군가 나에게도 "당신은 지금 어른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요. 아직 어른이 되기는 한참 멀었습니다."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이미 어른 인양 살고 있다.



 어른을 찾는다는 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완벽해 보이는 어른의 모습만 단편적으로 편집해 모아봤자 몽상 속에 어른일 뿐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신념과 확신, 꿈을 다른 어른에게 바라면서 스스로 어른이 되기를 겁내며 숨기 위한 핑계일 수도 있다. 우린 늘 모든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답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늘 실수하고 후회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린 조금씩 어른스러워진다고 믿을 뿐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대학 입학과 함께 홀로 뉴욕 생활을 시작하는 '트레이시'와 30대의 화려한 뉴요커인 의붓 언니 '브룩'의 이야기다. 어른이 되기 위한 새내기 대학생과 30대의 커리어 우먼의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될 수밖에 없다. 트레이시가 보기에는 일과 사랑, 꿈을 이미 쟁취한 브룩이 동경의 대상이다. 그녀를 주제로 소설을 쓰게 되고 가깝게 지내며 알아갈수록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러다 브룩의 허세적인 삶과 현실이 드러나고 트레이시는 실망한다. 그 후 브룩이 트레이시에게 하는 말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아픈 거 같아. 내 병의 이름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마치 내가 가만히 앉아서 인터넷이든 티브이든 쳐다보면서 ‘저런 식으로는 살지 말아야지’ 해놓고 또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는 내가 해 온 것들에 대해 온갖 거짓말을 하지. 그러다가 나는 또 완전 어떤 거에 심취하게 돼서는 또 그 흥분이 나를 다 잠식해. 난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하는 거야. 그러다가 세상 전부랑 사랑에 빠지고. 나는 도대체 이 세상에 나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를 모르겠어.



 트레이시는 브룩 같은 어른을 만나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른이 된다. 브룩이 가진 삶의 고민을 공유하며. 학교나 직장 그리고 보홀에서 어른을 찾는다는 건 이런 어른들을 만나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 모두 좋은 어른을 꿈꾼다. 하지만 완벽한 어른은 없다고 위로하고 이해하며 성장하는 건 좋은 어른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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