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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슬리 보홀 Aug 16. 2016

<월간 보홀> 8월호

#놀이가 있는 삶

#놀이가 있는 삶


놀이
1.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또는 그런 활동.
2. 일정한 규칙 또는 방법에 따라 노는 일.
3.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모방’, ‘장난’, ‘흉내’의 뜻을 나타내는 말.


 우리는 언제나 놀이를 동경한다. 인간은 일과 공부, 쉼의 균형 속에서 행복을 느끼듯 쉼의 행위인 ‘놀이’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아끼는 일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만큼 지금 나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이 있을까. 그만큼 우리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일과 공부 이상으로 놀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학습해왔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취학 전에는 부모님과 형제들과 놀았다. 놀이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기에 맨손으로 흙을 파고 쌓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들을 관찰했다. 거기에 도구를 더하면 조금 더 흥미가 생겼고 제법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소하게 느껴지는 모든 존재가 이러한 과정을 지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아빠 행세를 하던 소꿉놀이는 시장놀이와 병원놀이로 발전했고 우린 모든 게 될 수 있었다. 그러다 나와 같은 또래들이 모인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며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법을 배웠다. 함께 공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중에 술래를 정해 잡히지 않게 숨거나 도망 다니기 바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놀이들을 체험해 봤지만 딱히 흥미가 가는 곳이 없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동네 오락실을 들락거렸고 문방구의 작은 물건들을 손대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부모님 속을 썩이기도 여러 번이다. 그때까지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로 치부됐고 모두 용서받을 수 있었다.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함께 어울려 노는 법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처음 PC방을 접했고 게임과 인터넷을 알았다. 그래서 늘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채팅을 하고는 각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게 전부였다. 그동안 동네를 쏘다니며 직접 뛰고 잡으며, 무언가 만들던 놀이는 이제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붙잡고 모니터 화면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너가 2시 방향으로 먼저 공격했어야지!”
“나 드디어 레벨이 올랐어!”

 같은 대화는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로 던질 뿐이었다. 내 옆에 있어도 말이 아닌 채팅창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매일 친구들과 한두 시간의 놀이를 위해서 처음으로 돈을 쓰기 시작했다. 점차 우리의 놀이는 노래방, 당구장, 볼링장 등으로 확장됐고 그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물론 학교에서도 어른들의 인솔 하에 함께 어울려 노는 방법들을 배웠다. 운동회, 체험 학습, 수련회, 수학여행 등으로 평소와는 다른 환경과 놀이지만 그런 즐거움도 어른들의 관리가 필요했다.

“지금 놀러 왔습니까?”
“앉아! 일어서! 어깨동무 실시!”

 새로운 놀이에 대한 들뜬 마음은 금세 흩어졌다. 청소년 수련관의 모인 우리는 심신 단련과 공동체 의식 함양이라는 이유로 얼굴도 모르던 교관에게 군대식 기합을 받았다. 주어진 놀이와 통제를 벗어났을 때 따르던 과도한 체벌과 기합들. 복종의 강요와 폭력이었지만 우리는 어른들이 정해 준 놀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녁에 촛불을 들고 둘러앉아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가르침까지. 차라리 어렸을 때처럼 흙을 파고 쌓으며 무언가 만들던 일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인솔 하에 산을 오르거나 계곡을 건너고 야영을 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놀이가 더 필요했지만 오히려 이런 체험들은 나이가 들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이후 대학에 입학해서는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진짜 어른들의 놀이를 배웠다. 바로 술이다. 게임을 하며 벌칙으로 마셨고 선배와 교수님이 권했기 때문에 마셨다. 수업 외에 모든 활동들은 늘 술이 시작이자 끝이었다. 물론 학과 MT를 가서도 선배들에게 군대식 기합을 받았고 다시 웃으며 술을 마셨다. 술을 잘 먹느냐에 따라 놀 줄 아는 대학생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때까지 나에게 학습된 놀이는 PC방과 노래방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을 사거나 여럿이 모여서 술을 마셔야 하는 물질과 감정의 소비적 놀이였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정말 잘 노는 법을 배웠을까? 물론 그 순간들이 즐겁지 않은 건 아니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하는 건 술 마시는 일뿐이다. 번화가에 그 많은 식당과 술집들이 성행하는 이유도 우리가 놀 수 있는 장소는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학 동아리 활동은 새로운 놀이를 알게 해줬다. 사진에 관심이 있어 시작했던 사진 동아리에서 처음 혼자 노는 법을 익혔다. 같은 장소에 가더라도 서로 사진 찍기 바빴고 같은 풍경을 바라봤지만 담은 사진은 달랐다. 사진에 대한 욕심이 생기자 좀 더 새로운 풍경과 삶의 모습을 담기 위해 혼자 이곳저곳을 다녔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과 목적이었다. 그리고 더 즐거웠다. 여럿 사람이 모여서 함께 즐겁게 노는 일은 아니었지만 사진은 나에게 단지 노는 일이었다. 그렇게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바로 ‘취미’다.



 취미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사진의 취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됐다. 사진을 찍기 위해 다니던 행위 자체가 사실은 여행이었다. 조금 더 특별한 풍경을 담기 위해서 산을 오르고 계곡을 건너 결국 바다에 다다랐다. 그렇게 자연 속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수록 원초적인 즐거움을 알았다. 어렸을 때 흙을 파고 쌓으며 무언가 만들고 모든 존재를 관찰하던 순간처럼. 결국 산을 오르고 바다를 찾으며 모든 삶을 관찰하는 여행은 우리에게 취미이자 놀이가 되었다. 우리가 지금 즐기는 취미는 본래 인간의 놀이다. 산과 바다를 찾고 캠핑을 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일, 음식과 제품을 직접 만드는 일,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일 모두 어렸을 때의 놀이와 다를 게 없다.




 물론 성인이 되어 찾은 스스로의 놀이는 자연과 다른 문화를 향한 여행이었지만 어릴 때와 다르지 않았다. 유행하는 옷과 값비싼 장난감같이 늘 남들보다 물질적 소비가 앞선 이들이 중심이었다. 각자의 감성과 합리적 소비로 포장됐지만 장소와 필요에 비해 넘쳤다. 주체적 놀이를 위한 행위는 시작일 뿐 보여주기 놀이가 더 어울리기도 했다. 단편적으로 남겨진 사진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그들의 삶으로 포스팅된다. 그리고 이미지화된 각자의 놀이는 하나의 해시태그에 모여 비슷한 모습들로 채워질 뿐이다.


 그동안 많은 취미들이 정말 나를 위한 놀이였을까. 이제는 유행을 떠나서 정해진 답을 따르지 않는 놀이를 찾을 수 없다. 여행을 떠날 때조차 어디를 가고, 무엇을 타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야 하는지까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는 지침서는 반복적으로 검색된다. 효율적 놀이를 위한 것인지 정답을 위한 놀이인지는 알기 어렵다. 우리들의 놀이에 대한 호기심은 그렇게 검색창에서 멈춘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정처 없이 쏘다니며 모든 존재를 관찰하던 모험심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내가 보홀에 머물 수 있었던 이유도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놀이'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홀을 찾은 이들에게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통해 바다에서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복장과 동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검색창에 '보홀 여행'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모든 이미지와 일정을 그대로 실천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보홀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은 '보홀에서 꼭 해봐야 할 체험'으로 정리돼 있고 이에 맞춘 3~4일 일정이 보홀의 전부였다. 몇 년째 같은 정보들은 그렇게 쌓여갔고 그들의 보홀 여행은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수없이 마주했다.



 우리가 그동안 학습한 놀이는 사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노는 법일 지도 모른다. 처음 청소년 수련관에서 주어진 놀이와 통제를 벗어났을 때 따르던 기합과 체벌 때문이거나 성인이 되어 강요된 술자리가 지금 우리의 놀이가 되었던 것처럼 정답이 있는 사회는 놀이와 여행의 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처럼 그동안 학습된 놀이는 탐험할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의 경험을 소비하며 체득한 경험을 다시 생산하는 반복의 놀이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도 체험하고 즐겨야 할 놀이들은 무진하다. 어렸을 때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놀이는 주변의 모든 존재를 사유할 수 있게 해줬다. 그때처럼 새로운 행위와 장소를 모험하며 학습된 놀이를 벗어났을 때 우린 진정으로 삶의 놀이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여럿이 모이지 않아도, 주체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가 있는 삶을 향해 탐험하는 것. 내가 보홀에서 그리고 당신이 지금, 더 잘 놀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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