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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슬리 보홀 Jul 15. 2016

<월간 보홀> 7월호

#덜 벌고 더 잘 살기

#덜 벌고 더 잘 살기


 다시 여행기를 쓰고 싶었다. 아직까지 끝내지 못한 여행기는 4년 전 유럽에서 부터다. 그 이후로도 대충 30개국에 대한 여행기와 사진은 지금까지도 정리되지 못한 채 내 외장하드에 남아있다. 정리되지 못한 나의 여행은 그렇게 흘러갔고 잊혔다. 그래서 다시 지난 여행을 훑으며 그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사진 속의 순간들이 희미하게 떠올랐지만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옮기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저 지금 내 삶의 순간이 그동안에 여행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무엇이든 쓰고 싶었다. 여행의 과정은 희미했지만 내 속에서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모으고 싶었다. 지난 여행이 아닌 지금의 이야기로. 필리핀 보홀에서의 삶은 여행과 생활의 경계에 머물렀지만 난 아직도 무엇을 시작하기도, 끝내지도 못 했다.



 그럼 지금 필리핀 보홀에서의 삶은 여행일까 생활일까. 지금도 혼란스럽다. 주변에 내 직업이 프리다이빙 강사라고 말하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다. 그렇듯 여행 전에 꿈꾸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정처 없던 여행은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고 갑작스럽게 지금의 내가 됐다. 여행 중 바다가 좋아서 시작한 프리다이빙이 밥벌이가 되자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여행과 생활의 틈을 잇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도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물론 알고 있다. 답은 여행과 생활의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걸.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같다. 행복의 기준도 상대적이기에 무엇이 옳다고 확신할 수 없다. 잘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도 어려운 일이어서 기준을 평범하게, 남들 만큼만이라고 합리화하기 쉽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멘토들은 말한다. 가장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하라고. 그럼 행복하단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일과 쉼, 공부의 균형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일을 제외한 모든 행위들은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쉼과 공부를 위한 경제적 뒷받침을 내가 하고 싶고, 잘하는 일로는 버텨내기 어려운 현실은 벗어나기 힘들다.



 모든 청춘의 목적지가 대기업 입사와 공무원인 현실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변의 청춘들도 취업 못해 좌절하거나 취업해도 야근과 상사에게 치이는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우리에게 사치였을까. 나 역시도 한국에서 그 답을 찾지 못하고 보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민은 진행형이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하며 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벌이는 한정적이다.




 필리핀 보홀에서 나는 여행하듯 그때의 벌이에 맞게 생활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남을 물질적 소비는 줄었지만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일이 끝나면 이른 저녁을 직접 지어먹으며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냈다. 그리고 바다와 해, 노을, 달, 별, 바람같이 나를 감싸는 모든 것들의 존재를 관찰하고 사유했다. 모든 일상의 순간을 찍고 글로 기록하는 즐거움은 여행과 같았다. 그렇게 이곳에서 내 선택에 따라 덜 벌었지만 더 잘 살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이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 나에게 필리핀 보홀에서의 삶은 결국 ‘덜 벌고 더 잘 살기’에 대한 실험이다. 일과 쉼, 공부의 균형은 내 욕심과 비례한다. 더 벌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과 더 잘 살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몫은 어떤 가치도 매길 수 없다. 물론 보홀에서의 실험이 실패했을 때 계획은 더 벌기 위한 길뿐이다. 하지만 욕심을 덜어내는 만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조금씩 채울 수 있었다. 내 마음속 깊은 질문의 답을 찾는 시도만으로도 나는 나와 우리, 자연과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충분했다. 더 잘 살기 위한 조건은.



 이제는 덜 벌고 더 잘 살기의 실천은 언제, 어디에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보홀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에게 자주 듣는 답은 이렇다. 같은 마음이지만 같은 결론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이야기.


“저는 이곳에 사는 강사님이 부러워요. 제가 어렵게 시간 내서 와야 하는 곳이 일상이잖아요. 항상 바다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래도 나중에 돈을 좀 벌면 보홀이나 다른 나라의 해변에서 작은 카페를 하고 싶어요. 제가 열고 싶을 때 열고 제가 팔고 싶은 것만 내놓는 그런 카페요.”


나를 포함한 모든 여행자의 이상향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내가 답한다.


“그러면 좋죠. 지금 시작하는 건 어때요?”


“지금요? 에이. 아직 모아둔 돈도 없고. 차 할부금에 집 대출금까지 갚을게 많은걸요.”


“그럼 나중에 하고 싶어 하는 카페를 할 때 한국의 차와 집이 필요한가요?”


“음... 그럼요. 나중에 그걸 팔고 와야죠.”


“다시 팔기 위한 차와 집 때문에 지금은 안된다면, 나중에는 정말 팔 수 있어요?”


“네 당연하죠. 지금은 시작할 여유가 없어서 그래요.”


 대부분 이런 식의 대화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결론 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지만 상대방은 나중에 좀 더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한다. 그렇게 행복에 대한 같은 마음은 서로의 합리적 이유들로 흩어졌다. 끝내 누구도 옳다고 말할 수 없는 행복의 순서는 아직까지 정의되지 못한다.




 당연히 나도 필리핀 보홀에 그런 카페나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를 꿈꾼다. 여행을 통해 내가 가진 생각과 행복의 기준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곳. 휴식을 위해 찾은 이들과 만나며 일과 쉼, 공부를 할 수 있는 일상을 갖는다면 나의 실험은 충분히 성공적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필리핀 보홀을 찾았을 때 조금 더 나와 우리, 자연을 위한 생각들이 모이길 바란다. 우리의 행복이 실천될 수 있도록. 내일의 대한 걱정은 오늘의 행복을 놓치게 한다. 대신 조금 덜 벌고 부족하더라도 지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이것이 내가 필리핀 보홀에 머물 수 있는 이유다.  


 

누구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은 같다. 행복하게. 모든 물질적, 경험적 소비와 생산은 행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무엇이 우선일지도 여유의 기준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답을 찾기 위한 시도는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오늘 이 글을 통해 행복을 곱씹을 수 있다면 나와 당신은 이미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Seafret_Tell Me It's Real



 개인적으로 올해 상반기에 발매된 앨범 중 최고의 앨범을 뽑으라면 단연 Seafret의 <Tell Me It's Real>이다. 이들은 영국 오크셔에 작은 해안 도시인 Bridlington 출신의 어쿠스틱 밴드로 보컬 Jack Sedman과 기타 Harry Draper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고향인 Bridlington의 작은 공연장에서 처음 만나 2014년에 데뷔했지만 정식 앨범은 올해 발매했다.


 오랜 준비 끝에 발매한 만큼 앨범의 완성도는 데뷔 앨범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다. 특히 모든 곡의 가사를 Jack이 직접 쓰고 Harry가 연주하며 곡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감정과 상황을 바다와 바람, 들불 등으로 아름답게 은유한다. 영국 북부에 작은 해안 도시 출신이기에 곡을 만들 때 고향의 바다에 대한 그리움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대표 곡으로는 'Oceans', 'Wildfire', 'Atlantis'를 꼽지만 그 밖에도 좋은 곡들이 많아 반드시 앨범의 모든 곡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곡 'Wildfire'의 경우 뮤직비디오가 흥미로운데 과거의 사랑에 대한 심리 실험을 재창조했다. 실험은 1997년, 심리학자 Arthur Aaron이 낯선 사람끼리 금방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실험은 단순했다. 싱글인 각각의 지원자들로 짝을 이루어 서로 주어진 36가지 질문을 하는 것이다. 답변을 들은 후 서로 상대방의 눈을 4분간 응시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실험은 효과가 있었다. 6개월 후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 중 한 쌍이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2015년에 영국 런던에서 다시 진행했고 그 과정을 뮤직비디오에 담았다. 실제 지원자들의 첫 만남, 질문과 답변에 과정 그리고 서로의 눈을 응시할 때에 표정과 감정이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뮤직비디오에 나온 질문들 중 흥미로운 것은.(영상 순서 순)

5. 자기 스스로에게 노래를 한 적이 언제가 마지막인가요?

9.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15.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인가요?

31. 이미 상대방이 좋아진 점을 알려주세요.

 이러한 질문들이 오간 후 헤드폰을 쓰고 4분간 음악을 들으며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 실제로 꼭 사랑에 빠지지 않아도 낯선 사람과 위와 같은 질문을 주고받고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면 어떤 반응들이 있을지 궁금하다. 언젠가 보홀을 찾은 이들과 해보고 싶은 경험으로 이 질문을 한 후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싶다.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 Seafret - Wildfire


+ Seafret - Oceans


+ Seafret - Atla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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