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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간 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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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슬리 보홀 Jun 15. 2016

<월간 보홀> 6월호

#반팔티, 반바지, 슬리퍼

#반팔티, 반바지, 슬리퍼


 여행을 다니기 전까지 나는 늘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이 사실도 여행하기 전까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신발과 옷들을 구매했다. 주기적으로. 꼭 유행을 따라가지 않아도 작년에 입었던 셔츠나 바지의 색과 무늬가 유독 촌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이유로 입을 수 있는 옷이 충분히 있어도 입지 않았다. 단지 색이나 무늬, 핏, 브랜드가 지금에 비해 촌스러워 보인다는 대중적 판단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 시선의 의한 필요와 소비는 일 년을 넘지 못 했다. 



 4년 전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 동안 나와 함께할 배낭의 짐을 꾸렸다. 사계절 모두 입을 수 있는 옷과 물건들을 챙기자 60리터 가방이 넘친다. 그렇게 하나씩 내 욕심에 비례하는 짐을 줄이기 위해 며칠을 배낭에 짐을 넣었다 빼며 어렵게 배낭을 채울 수 있었다. 채워진 옷은 긴 바지 3개와 반바지 1개, 긴팔 티셔츠 2개, 반팔 티셔츠 2개, 패딩 1개, 재킷 2개, 속옷 5개, 샌들과 운동화가 전부다. 겨울에 러시아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했기 때문에 동계용 옷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계획된 일정인 1년 6개월 동안 자주 입을 수밖에 없는 옷이기에 최대한 무난하고 편하며 쉽게 세탁하고 빨리 입을 수만 있으면 됐다. 첫 장기 여행 배낭을 싸며 일 년을 넘게 입을 옷을 고르려 하니 얼마나 많은 고민을 지났는지 모른다. 결국 등산 브랜드의 기능성 옷들만 남자, 어른들이 유럽에도 등산복을 입고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그렇게 세계 어디에 떨어져도 생활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이 내 배낭에 들었다. 무게만 15kg이지만 내 욕심과 필요의 무게다. 내가 꾸린 짐으로만 한 겨울의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과 아프리카, 호주, 아시아를 여행했다. 늘 잠자리는 달랐고 나라를 옮기면 쉽게 계절이 바뀌고 짓궂은 날씨와 일교차를 넘겼다. 그래도 내가 가진 60리터 배낭에서는 내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물건이 있었다. 오히려 챙겨 와도 한 번도 쓸 일이 없던 물건들도 상당했지만 내게 필요한 짐이 15kg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여행을 통해서 내 삶의 무게를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직업도 책임도 없이 여행하며 내 삶을 영위하는 데만 필요한 무게. 그러다 지금의 나는 필요한 것이 이것이 전부인데 왜 끊임없이 소비하는 삶을 살았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집에 남은 내 옷과 물건들을 생각하자 지금의 나에겐 다 불필요한 것들뿐이었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소비했는지도 모를 물건이었다. 단지 갖고 싶다는 이유로 나는 내 수입의 일정 부분을 물질적 소비를 위해 사용했지만 지금 나에게 남는 건 당시에 소유욕을 채웠다는 만족이 전부다.



 물론 그동안 여행하며 소비하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여행을 시작하자 한 달에 100~150만 원씩 내 통장 잔고는 꾸준히 줄고 있었다. 내 배낭 속 물건들은 늘 같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었다. 내 여행을 위한 여러 교통편과 숙박, 식사, 투어 비용 등으로. 여행을 위한 소비는 나에게 물질적으로 남는 게 전혀 없었지만 나는 경험을 살 수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사막에 머물며 새벽에 쏟아지는 별들을 봤고 스카이다이빙과 패러글러이딩으로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을 배워 바닷속 해양 생물과 원시적 자연을 만났다. 그렇게 그동안 간접적으로 체득했던 세계의 문화와 역사, 자연, 놀이를 직접 보고 경험하기 위해 지금까지 40개국을 들렸고 내가 가진 모든 돈을 소비했다. 



 3년 전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처음 필리핀 보홀을 찾았을 때도 같은 이유였다. 조금 더 자유롭게 바닷속에 머물고 싶었고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한 여행길이었다. 여기서 내 ‘필요’는 자유롭게 바닷속에 더 오래, 깊이 머물기 위함이었고 난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해 ‘소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바닷속에서 나를 만나는 ‘경험’ 뿐이다. 그 경험에 이끌려 계속 보홀에 머물고 있지만 나는 지금, 3년 전 내가 보홀 바다에서 가졌던 경험을 위해 소비하는 이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졌다. 그들은 내 경험을 배우기 위해 소비했고 또 다른 스스로의 경험을 얻었다. 


 필리핀 보홀에서 프리다이빙 강사로 일을 시작하며 나는 다시 필요와 소비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은 건기와 우기가 전부기 때문에 한국에 비해 다양한 옷과 신발이 필요하지 않았다. 늘 이곳 복장은 반팔티에 반바지, 슬리퍼가 전부다. 내가 무슨 티셔츠와 바지를 입는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깨끗하고 입기 좋으면 그만이다. 게다가 슬리퍼를 한번 구입하면 6개월을 신을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일 년에 슬리퍼 두 짝 이면 충분했다. 옷은 누군가 주고 간 옷이나 다이브 센터의 단체 티셔츠로 충분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나의 물질적 소비가 크게 줄어들자 고민은 현실이 됐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내가 입은 옷을 달라고 하는 현지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 필요 없는 옷을 나눴더니 그 옷을 너무나 아껴 입고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만 입을 만큼 그에게 가장 필요한 옷이 된 것이다. 그 이유를 보니 단지 깨끗한 옷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게 꼭 필요 없던 티셔츠 하나였지만 누군가에게 정말 큰 필요의 옷이 됐다는 사실에 나는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곳 현지인들과 함께하며 생활상을 가깝게 볼 수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소비와는 달랐다. 한국과 필리핀의 소득격차를 무시하고도 이들이 주 40시간 이상 일해도 가끔씩 옷 한 벌 제대로 구입하기 어려운 물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한 달 벌이는 옷보다는 식료품과 주거비, 병원비 쓰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몇 벌의 옷만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깔끔한 옷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내 집에 넘치는 옷들이 생각났다. 한국에 두고 온 내 필요 이상의 옷들이.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이런 옷을 모아보자 양이 상당했다. 우리 가족에게 더 이상 필요가 없던 옷은 이곳에서 새로운 필요를 얻었다. 버려지지 않고 다시 입을 수 있는 옷으로. 그런 옷들을 더 모으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청했고 전에 옷을 팔던 선배에게 꽤 많은 새 옷도 기부받을 수 있었다. 모두 보홀로 갖고 오자 약 200벌의 옷이 모였다. 그리고 다이빙센터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마을 사람들과 나눴다. 한동안 동네가 떠들썩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이들의 표정에서 나눔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알았다. 나눔에 대한 경험적 소비를 위해 과거의 물질적 소비가 쓰였다는 것을. 모든 필요는 상대적이다.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 해서 버려질 이유는 없다. 물론 내게 남는 것을 부족한 사람에게 나누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 생각했던 필요와 소비에 대한 고민은 현실이 됐고 나는 나눔이라는 경험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이 경험을 나누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한국에 있는 친구(보라)는 직접 옷을 모으고 보홀로 오는 이에게 전달해준다. 나와 이곳에 있는 친구(성수, 래리)는 옷을 받아 현지인들과 나누기만 하면 그만이다. 단지 우리의 역할은 한국에서 필요가 다한 옷을 보홀에서 필요로 하는 이에게 전달할 뿐이다. 결국 우리의 필요와 소비의 순환은 공생이 됐다.


 

 반팔티, 반바지, 슬리퍼. 보홀에서 입고 신기 위한 필요는 이것이 전부다. 이곳에 머무는 나와 현지인들도 같다. 물론 앞으로 보홀을 찾는 당신도. 그리고 우리의 옷장에는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유행이 지나고 조금 해져서 입지 못하는 옷들이 쌓였다. 아마도 처음 필요의 의미가 다한 옷일 것이다. 그런 옷을 모아 보홀로 갖고 온다면 우리는 그 옷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나눌 예정이다. 우리에게 넘치는 것을 덜어 부족한 곳에 옮기는 여행을 보홀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소비하는 삶은 누구나 같다. 그리고 당신의 물질적 소비에서 필요를 다한 옷이 필리핀 보홀에서 나눔의 경험으로 다시 소비되길 바란다. 

필리핀 보홀 다나오 마을에 나눌 옷을 기부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홀을 찾을 예정이라면 직접 저에게 전해 주실 수 있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택배로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옷을 받을 수 있는 주소와 연락처는 쪽지나 댓글을 통해 문의 부탁드립니다:-)




#5월의 여행_발리카삭 캠핑


 지난 호에서 3년 동안 보홀에 머물렀지만 보홀에 대해 잘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내가 살고 있는 팡라오 섬을 벗어나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팡라오 섬에서만 머물렀을 뿐 보홀 본 섬이나 파밀라칸, 까빌라오 섬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 했다. 그래서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한 곳씩 여행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5월에는 다이브 센터의 동료이자 친구인 성수와 함께 발리카삭 섬을 다녀왔다.



 발리카삭 섬은 알로나 비치에서 서남쪽으로 10km 떨어져 있어 현지 배(방카)로 30~40분 거리다. 보홀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알로나 비치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과 다이버가 찾는다. 섬을 주변으로 다양한 다이빙 포인트가 있고 산호와 해양 생물들이 잘 보존돼있어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으로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바다거북이와 잭피시 떼를 늘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발리카삭은 걸어서 한 바퀴를 돌아도 30분밖에 안 걸리는 작은 섬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빗물을 받아쓰고 식수와 식재료를 팡라오 섬에서 갖고 와 물가가 높은 편이다. 전기는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만 디젤 발전기로 자체 공급해 오래 머물기에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발리카삭 섬에 살고 있는 주민의 수는 약 400여 명으로 대부분 관광업과 어업에 종사한다. 섬의 숙소는 필리핀 관광청에서 운영하는 다이브 리조트뿐이라 우리는 캠핑으로 머물기로 했다.



 일 년 전부터 발리카삭 섬에서 캠핑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꽤 많은 캠핑 장비를 갖고 왔었다. 프리다이빙과 발리카삭 캠핑을 함께하는 투어를 만들어서 진행하면 어떨까 싶어 준비했지만 이제야 장비를 꺼내 보게 됐다. 이번 계획은 첫째 날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둘째 날 프리다이빙을 할 예정이라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 장비, 캠핑 용품 그리고 식재료와 마시고 씻을 수 있는 물도 따로 챙겨가야 했다. 그러자 벌써 두 명의 짐이 배에 한가득이다. 


 

 오랜만에 찾은 발리카삭 섬이기에 오전에는 스쿠버다이빙으로 바닷속을 다녔다. 물속에서 숨을 쉬는 행위 자체가 거의 일 년 만이라 잠시 어색하기도 했다. 매일 바다에 들어가지만 프리다이빙으로 바닷속에 머무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래도 여전히 발리카삭의 거북이와 잭피시를 만날 수 있었고 푸른 바닷속에서 무중력의 유영은 황홀했다.



 다이빙 후 섬에 내려 전에 알고 지내던 현지 식당에 자리를 부탁했다. 저녁을 사 먹는 조건으로 팡라오 섬이 마주 보이는 곳에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해변가에 텐트와 해먹을 설치하자 그동안의 어느 잠자리보다 보기 좋다. 일몰 전까지 해먹에 누워 음악을 듣고 졸기도 하며 오랜만에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햇볕과 바람, 파도 소리를 그대로 느끼자 그동안 바다에 살면서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내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기 전 섬의 반대편으로 일몰을 보기 위해 걸었다. 해는 세부 섬 방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도 바다에서 노는 아이들의 표정은 여전히 밝다. 동네의 놀이터처럼 매일 들어가는 바다겠지만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물과 전기가 충분치 않아도 이토록 멋진 노을과 바다를 가진 발리카삭의 아이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노을빛은 갈수록 색을 더한다. 처음으로 맞는 발리카삭의 노을이었다. 




 저녁은 캠핑 자리를 마련해준 현지 식당을 이용했다. 메뉴는 밥과 닭다리 한 조각과 생선 한 마리, 계란 프라이가 전부였지만 챙겨 온 라면을 끓여 함께 먹었다. 성수와 이런저런 얘길 하다 소화가 되자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바다로 나가자 달빛에 수면은 빛났고 작은 파도들이 밀려왔다. 모든 옷을 벗고 마스크만 쓴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 바닷속은 달빛이 닿아있었다. 팔을 저어 나아가자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바닷속 플랑크톤이 퍼지며 빛을 내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내 몸을 감싸며 반딧불처럼 초록색의 빛을 낸다. 우린 수면에서 서로에 위치를 알지 못해도 캄캄한 바닷속에서는 서로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의 경이로움도 잠시. 금세 온몸이 따갑다. 생각보다 많은 해파리 덕에 우린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해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가져온 민물로 가볍게 몸만 씻은 후 다시 해먹에 누웠다. 섬은 고요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는 달빛을 머금은 바다와, 구름에 가려 희미한 별들을 천천히 훑었다. 이대로면 됐다. 지금 내가 가진, 가져야 하는 무엇보다 가치 있는 순간이기에 이대로면 충분했다. 어떠한 생각과 고민도 이곳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기에도 벅찰 만큼 발리카삭의 밤은 찬란하다.




 성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일출 시간이란다. 눈을 비비고 텐트 밖을 보자 어둠이 걷히고 해가 오를 준비를 한다. 의자를 챙겨 일출이 가장 잘 보이는 해변가에 앉았다. 마주 보이던 팡라오 섬 위로 해가 떠오르고 발리카삭 섬을 비추기 시작했다. 여전히 고요한 바다 내음은 따듯했고 다시 내 몸에 닿은 햇볕의 기분이 좋았다. 해가 지고 뜨며 하루가 다시 시작됐지만 변한 건 없었다. 나는 아직 발리카삭에 있고 바다는 우리를 감싼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후 텐트를 정리했다. 오전에는 프리다이빙을 하고 점심 전에 떠날 생각이었다. 다이빙 슈트를 입고 섬을 가로질러 다른 다이빙 포인트로 갔다. 아침 일찍부터 많은 여행객이 발리카삭으로 모여들었다. 바다의 시야는 좋지 않았지만 어제의 스쿠버 다이빙과는 전혀 다른 물길이다.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은 잠수의 의미만 같은 뿐 물속에서 보이는 게 다르다. 호흡 장비에 의지하지 않고 내 능력과 한계만큼만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발리카삭의 수중 절벽을 따라 한참을 바닷속을 드나들고는 해변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곧 떠나야 하는 일정이 아쉽기도 했지만 바다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르게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았다. 주변의 배들도 황급히 여행객을 태워 팡라오 섬으로 향했다. 발리카삭의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섬은 고적했다. 우리도 배에 올랐다. 작은 방카는 높은 너울에 부딪혀가며 힘들게 나아갔다. 발리카삭 섬에서 멀어질수록 팡라오 섬이 가까워진다. 여행에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무겁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일상을 벗어나자 생각이 넘쳤다.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 바다를 떠나지 못할 이유를. 




#Edward Sharpe & The Magnetic Zeros


 

이번 호에서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인디 포크 밴드 Edward Sharpe & The Magnetic Zeros를 소개한다. 조금은 긴 밴드의 이름은 메인 보컬이자 리더인 Alex가 직접 쓴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한다. 밴드 Edward Sharpe & The Manetic Zeros는 2007년에 데뷔한 후 지금까지 4개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지만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편이다. 밴드의 정식 멤버 수는 무려 10명으로 메인 보컬인 Alex와 Jade를 중심으로 다양한 어쿠스틱 악기를 연주한다.(Jade는 2014년에 밴드를 떠났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은 스튜디오 앨범보다는 라이브 영상에서 더욱 돋보인다. 전반적인 밴드의 음악과 분위기는 1960-70년대의 히피를 떠올리게 한다. 밴드 활동도 보헤미안답게 이들이 직접 연주하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며 팬들을 만나는 식이다.


 

 이들의 첫 번째 앨범인 <Up From Below>는 2009년에 발표됐지만 최근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어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앨범이다. 특히 곡 'Home'은 빌보드 차트에도 랭킹 돼 한 번쯤은 들어 본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라이브 영상을 찾아 듣다 보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음악에 취해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감정과 생각들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은 'Home', 'Janglin', '40 Day Dream', 'Up From Below', 'Man on Fire', 'Life is Hard', 'No Love Like your' 등이다. 소개하는 곡 외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이들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시길. 영상 중 NPR Music Tiny Desk Concert와 Up From Below (live @ Parque Mexico, Mexico City)는 Edward Sharpe & The Magnetic Zeros의 음악을 제대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 Edward Sharpe & The Magnetic Zeros - Home


+ Edward Sharpe & The Magnetic Zeroes - NPR Music Tiny Desk Concert


+ Edward Sharpe & The Magnetic Zeros - Up From Below(live @ Parque Mexico, Mexico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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