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이 떠오른 어느 직장인의 생각
나는 늘 퇴사를 꿈꿨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건 언제나 경제적인 제약이었다.
나가고 싶지만, 안정감 있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 문득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인물이 떠올랐다.
바로 재소자 '브룩스 헤이들런'이었다.
그는 종신형을 받고, 50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을 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어느 날 가석방 소식을 들은 늙은 재소자 브룩스는 기뻐하기보다 두려워했다.
감옥은 그에게 억압이면서 동시에 집이었다.
50년 동안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같은 사람들을 마주하며, 맡은 일을 해내는 일상은 그의 세계 전부였다.
그곳에서 그는 ‘도서관장 브룩스’라는 분명한 자리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철문 밖 세상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도시는 커졌고, 사람들은 빨라졌으며, 자동차와 신호등조차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사회에 나와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서 일을 하던 그는 깨달았다.
세상은 자신 없이도 너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결국, 그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했다.
오래 한 직장에서 일한 직장인에게도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수십 년간 회사라는 울타리 속에서 출근하고, 회의하고, 맡은 일을 해낸다.
때로는 답답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자리와 역할이 있다.
명함은 세상 속 존재를 확인해 주는 증표다.
브룩스가 감옥에서 살았든, 우리가 회사에서 살았든,
우리는 각자의 울타리에 길들여진다.
그리고 그 울타리 밖 세상은, 준비 없이 맞서기엔 너무 밝고 시끄럽다.
브룩스는 편지를 남기고 조용히 사라졌다.
우리는 여전히 묵묵히 출근한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언젠가 열릴 것이라는 불안감을 품은 채.
가끔 퇴직한 선배들이 찾아와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똑같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고, 오랜 경험이 시장에서는 그대로 쓰이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밀려오는 듯한 막막함과 두려움은, 브룩스가 철문 앞에서 느낀 감정과 다르지 않다.
브룩스와 나이 든 직장인의 공통점은 하나다.
너무 오랫동안 한 환경에 뿌리내리면, 그 환경이 사라질 때 자신도 함께 사라진다.
자유는 준비 없는 이에게 해방이 아니라 추방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