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우주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

영화 그래비티를 통해 바라보는 인간 존재.

by 진리의 테이블
xZfeIaw0nl7-zc6Bn-aGN-YS1bhzwo5-IOk998QkZ9Yu3jyTPsP8Dw9PsqsaD1YsM7lU2PPK8ztbYPYnmD0Tib4A0280u15EH6VUzvisWQ7xBVDKNrbociLlioDpdbZA6tvyKU_n 출저: 네이버 영화

우주 공간 위에 서 있는 경이로운 인간

인류에게 하늘은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하늘은 무한, 영원, 미지 등 신적인 요소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했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거칠고 메마른 달 표면 중계될 때상상 속에 존재하던 신비한 하늘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달에 착륙하고, 위성을 쏘아 올리는 인간은 위대함 그 자체입니다.

영화 그래비티는 황홀한 우주공간에 우뚝 서 있는 경이로운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지구를 발 아래 두고,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위성을 수리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iJ8KggSsH2jS0cv8CNqyoX5XsAfvJfGXVoC_Ue9EX_oQV6uL1OaCucaxJTURn4UPyuQIiW2GRm9Supm0ACMOASWeSBAgps3bJBSSn4eggxSbFkKo1LRsKaNNZT2HUmjmlwLAqBEW 출처: 네이버 영화

고요함

맷 코왈스키가 묻습니다.

“우주에 오니 가장 좋은 게 뭐야?”

“고요함이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왜 스톤 박사는 고요함이 가장 좋았을까요?

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우주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요함’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고요함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캐나다 북쪽 살몬암이라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요.

호수에 배를 띄우고 낚시를 드리웠습니다.

고요한 호수 위에서 침묵속에 머물렀던 순간!

너무나도 깊은 평안을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자극 속에서 안식처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영상과 소리와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길을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작 나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이리 저리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스톤 박사는 고요한 우주 속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자신과 마주대했는지도 모릅니다. 스톤박사는 딸을 잃었습니다. 어떤 슬픔도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했겠지만, 그 짐은 결국 혼자 지어야만 하는 슬픔입니다. 때로는 위로조차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스톤박사는 고요한 우주공간에서 그렇게 홀로 남겨짐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두려움

S8oKyMAp-aY-TNo8UBi4L52TowUBc4mpq9H1hHNJsW9mJSLZo-y5Fy1zqtScw0cBf1u8iRp6AO1T8PBao4Urpv5hdmbG96gY6ycWOdRHlHI_j_jFv6sANgYjS_ttUlbGA9kEdKV5 출처: 네이버 영화

위성 잔해 사고가 일어납니다. 작업중이던 스톤박사는 원심력에 의해서 우주공간 멀리 던져집니다. 성경에 무저갱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무저갱은 예수께서 마지막 심판 때에 불의한 자들을 가두는 장 소로 묘사됩니다. 무저갱이라는 말의 뜻은 바닥이 없는 검은 공간을 의미하는데요. 이 공간이 인간에게 가장 극심한 공포를 던져주는 듯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한한 공간 속에 끝도 없이 떨어지는 경험을 상상해보십시오.

스톤 박사에게 가장 좋았던 침묵의 공간이 공포의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우주공간 가운데서 바둥댑니다. 뭐라도 잡고 싶은 처절한 절규입니다.

죽음의 공간으로 밀려나가는 자기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을 ‘불안’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이데거는 불안이야말로 죽음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본래적인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잘 살다가 어느 순간 심각한 불안을 경험합니다. 망하면 어쩌나, 잘 안되면 어쩌나하고 말입니 다.

이러한 불안감정들은 사회속에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하는 것과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불안감정이 근본적으로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도 결국 나의 의식이 종결되고, 그 존재감이 상실되는 것의 다른 이름입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단절

영화 그래비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두려움은 단절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스톤 박사는 딸을 잃은 슬픔, 이혼 등의 상처로 스스로 단절을 하면 살았습니다.

aVbUqjuy3cHV5T4OztbteMzvu6zH3E5KPtOqpXobGsKvL1B6V_D2ceK_ebMJf-OIaNh2Bv7aSH-JVCHkSs2u1mVzQfqp8ljRzn_oZG3rw9xU5zHN4Mr0EWxtDvYTdX9h-Z813EE7 출처: 네이버 영화

코왈스키가

“저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서 당신을 생각할 사람이 있어?” 라는 질문을 합니다. 딸이 있었지만, 죽었다고 말하죠. 그리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 밑에서 나를 생각해줄 사람은 말이죠. 저 아래 지구는 내가 사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곳이 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일컬어 ‘고향상실’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화려한 기술 문명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허무해진다고 말이죠. 사람들은 단절되고 있습니다.

하이퍼 연결사회라고 하지만, 마음과 마음은 점점 더 연결점을 잃고 있습니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것 처럼. 우리의 고향을 잃어 버린 것 처럼.

oIUbTyINDrXrcRjONdhXjupWJ8ZUR83Z3NeehXOmUE1zMUnnXzbFKCWZsso6zkkQFrqhDbU1W-gYMfI4ktZc4ky357XRhJCsY-pCEfmPPr3wq4SWeWamz4JDfNb3TWMY4YaOGldx 출처: 네이버 영화

스톤박사는 결국 코와스키와 단절됩니다. 그를 먼 우주로 보내버리죠.

지구에서 상처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단절되었던 그녀는 우주 속에서 또 한번의 단절을 경험합니다. 그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그를 찾지 못합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

스톤박사는 살아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우주선에 연료가 없습니다.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 순간 지구의 어딘가와 ‘연결’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중국인의 목소리, 강아지 소리, 아이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난 오늘 죽을거에요”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습니다.

“근데 난 아직도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슬퍼해 줄 사람도 없고, 기도해 줄 사람도 없죠. 날 위해 슬퍼 해줄래요? 기도도 해주고?”

스톤박사는 죽음의 순간 타인과의 작은 연결이 너무나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일상 속에 평범하게 누렸던 작은 것들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 단절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후회합니다.

코왈스키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름다운 태양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죽음에 집착하지 않고, 남아 있는 아름다움에 주목했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여기 우리는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 떠나고 싶고, 단절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상처에만 주목한다면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더 많은 기회와 사랑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슬프다면 시선을 돌려 봅시다. 그리고 더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봅시다. 상처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코왈스키는 말합니다.

“불도 다 끄고 눈도 감으면 세상 모두가 잊혀지겠지. 여기선 상처 줄 사람도 없고. 안전하지. 계속 살아 서 뭐할 거야? 자식을 잃는 것보다 힘든 게 어딨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의 선택이야. 게속 가 기로 했으며 그 결심을 따라야지 편하게 앉아서 드라이브 즐겨.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 야.”


인류는 위대하지만, 인간은 초라하다

찬란한 과학발전을 이루어 낸 인류이지만, 한 인간은 상처 때문에 무너져 내립니다. 단절되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기술이 이루어 낸 풍요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더 깊은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필요를 넘어서는 내적인 갈망을 살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야 하고, 서로를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