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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Feb 06. 2022

#8.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

퇴고 과정 배우기



  세상에 이 사람보다 더 내게 중요한 사람은 없다. 바로 그 사람 지난여름 시골길을 운전하다 다시 떠올렸다. 열사병에 유념하라는 재난문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긴 모자 눌러쓰고, 한낮이라는 시간을 잊은 듯 묵묵히 밭을 일구시는 한 할머니를 보았다. 이 시간에 들일을 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가을배추 밭일지, 무 밭일지 모르지만 호미 하나로 평평하게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계셨다.  그렇게 스쳐가는 그 한결같은 모습에서 그분 생각이 났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내겐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무더위에 조금 쉬시면 좋으련만 하는 마음이 컸다. 자식들이 아무리 전화해서 만류해도 들로 나가 땀을 흘리시겠지. 어느 논에서 밭에서 땀 흘리며 계시겠지. 이제 자식농사는 그럭저럭 맞혔고, 그래도 계속할 수 있는 게 고추, 참깨, 들깨, 배추, 무 등을 가꾸는 거라고.  

  누가 뭐라 해도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 마음과 몸이 편한 분들이다. 지금 70대 초반이지만 은퇴란 없다. 맨날 허리 아프다, 손가락 관절염으로 마디가 굵어진다는 군소리를 놓지 않으면서도, 읍내 병원을 수시로 다니시면서도 밭과 논으로 다니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신다. 주말 가끔 가보면 잔디로 덮인 마당 대신 제철 채소들이 자라는 텃밭이 점점 늘어난다.      

  ‘신을 아이들 곁에 일일이 둘 수 없어 대신 그분을 보낸다’라는 말이 있다. 우린 그분들의 희생을 미화하면서 당연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우린 그런 억척을 먹고 자란 세대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몸은 돌보지 않고 일하셨던 분들. 아버지는 자식 대학 공부를 시키겠노라며 밤낮없이 무쇠같이 일하셨고, 어머니는 모진 시집살이에도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어렸을 때, 남들은 공부와 숙제한다면 열외라는 게 있었다. 나 역시 가끔은 열외 되었지만 농번기철 집안 농사일을 함께 거들게 했다. 더 나아가 큰댁일, 동네 어르신들 작은 농사일까지 돕게 했다. 지금이야 모든 게 농기계로 쉽게 하지만, 그때는 모내기할 때는 온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품앗이로 서로 도와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셨다. 농사일이란 게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라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해낼 수 있다고.        

   “농촌 아이들은 오기가 아닌 사기로 살아간다”는 말을 학창 시절 들은 적이 있다. 이제야 그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무한 경쟁시대를 살기에 오기를 배우기보다 더불어 사는 자연의 생기와 사기를 배우는 곳이 농촌이다. 오만함의 딱딱한 콘크리트보다 물러서고 감쌀 수 있는 아량이 있는 푹신푹신한 흙을 밟고 자라면서 그 흙의 포근함을 배웠다. 또 당장은 허세 가득 말만 잘하는 이들이 이기는 세상처럼 보이지만 멀리 보면 묵묵히 행동으로 실천하는 게 중요함을 알려준 그분. 함께한 밭과 논에서 몸으로 삶의 이치를 알려준 배움터 같은 분.         

  땀 흘리고 정직하게 일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지금, 작은 일에도 묵묵히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알려준 분. 내게 이런 소중한 것들을 삶을 통해 가르쳐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2021.10.3.)

* 김탁환 작가님의 퇴고 내용 바탕으로 수정                


#3.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퇴고 2)


  세상에 이 사람보다 더 내게 중요한 사람은 없다. 바로 그 사람 지난여름 시골길을 운전하다 다시 떠올렸다. 열사병에 유념하라는 재난문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긴 모자 눌러쓰고, 한낮이라는 시간을 잊은 듯 묵묵히 밭을 일구시는 한 할머니를 보았다. 이 시간에 들일을 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가을배추 밭일지, 무 밭일지 모르지만 호미 하나로 평평하게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계셨다.  그렇게 스쳐가는 그 한결같은 모습에서 그분 생각이 났다.      

 여름휴가 기간 주말 고향 시골집에서 한가히 보내고 집을 나서려는데. 바람이 일어난다고, 이제 저녁 먹고 쉴 시간인 노을 지는 초저녁 무렵에 어머니는 깨를 털러 동네 고샅으로 나가셨다. 선풍기 바람도 아끼려고 저녁에 부는 그 작은 바람에 깨 껍질을 날리려 키를 들고 깻단 말리고 쌓아 놓은 장소로 가셨다. 노을은 붉게 노랗게 지고 바람길을 어떻게 찾으셨는지 바람을 등지고 키질을 연신하셨다. 작은 그 바람에도 깨 껍질은 날아가고 알맹이인 작은 깨만 덥석에 쌓여만 갔다. 키처럼 등 굽으신 어머니는 키를 들고 작은 바람에 따라 천천히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흔들고 계셨다. 자식들 고소한 참기름 좀 더 먹이겠다고. 그때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노을과 어울리는 어머니 옆모습의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만 찍어 간직하고 있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내겐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무더위에 조금 쉬시면 좋으련만 하는 마음이 컸다. 자식들이 아무리 전화해서 만류해도 들로 나가 땀을 흘리시겠지. 어느 논에서 밭에서 땀 흘리며 계시겠지. 이제 자식농사는 그럭저럭 맞혔고, 그래도 계속할 수 있는 게 고추, 참깨, 들깨, 배추, 무 등을 가꾸는 거라고.  

  누가 뭐라 해도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 마음과 몸이 편한 분들이다. 지금 70대 초반이지만 은퇴란 없다. 맨날 허리 아프다, 손가락 관절염으로 마디가 굵어진다는 군소리를 놓지 않으면서도, 읍내 병원을 수시로 다니시면서도 밭과 논으로 다니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신다. 주말 가끔 가보면 잔디로 덮인 마당 대신 제철 채소들이 자라는 텃밭이 점점 늘어난다.      

  ‘신을 아이들 곁에 일일이 둘 수 없어 대신 그분을 보낸다’라는 말이 있다. 우린 그분들의 희생을 미화하면서 당연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우린 그런 억척을 먹고 자란 세대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몸은 돌보지 않고 일하셨던 분들. 아버지는 자식 대학 공부를 시키겠노라며 밤낮없이 무쇠같이 일하셨고, 어머니는 모진 시집살이에도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어렸을 때, 남들은 공부와 숙제한다면 열외라는 게 있었다. 나 역시 가끔은 열외 되었지만 농번기철 집안 농사일을 함께 거들게 했다. 더 나아가 큰댁일, 동네 어르신들 작은 농사일까지 돕게 했다. 지금이야 모든 게 농기계로 쉽게 하지만, 그때는 모내기할 때는 온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품앗이로 서로 도와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셨다. 농사일이란 게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라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해낼 수 있다고.        

   “농촌 아이들은 오기가 아닌 사기로 살아간다”는 말을 학창 시절 들은 적이 있다. 이제야 그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무한 경쟁시대를 살기에 오기를 배우기보다 더불어 사는 자연의 생기와 사기를 배우는 곳이 농촌이다. 오만함의 딱딱한 콘크리트보다 물러서고 감쌀 수 있는 아량이 있는 푹신푹신한 흙을 밟고 자라면서 그 흙의 포근함을 배웠다. 또 당장은 허세 가득 말만 잘하는 이들이 이기는 세상처럼 보이지만 멀리 보면 묵묵히 행동으로 실천하는 게 중요함을 알려준 그분. 함께한 밭과 논에서 몸으로 삶의 이치를 알려준 배움터 같은 분.         

  땀 흘리고 정직하게 일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지금, 작은 일에도 묵묵히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알려준 분. 내게 이런 소중한 것들을 삶을 통해 가르쳐주신 분. 오늘도 선풍기 대신 바람길 찾아 그곳에서 깨를 털고 계시려나. 국산 참기름 한 방울 허투루 먹지 말자. 그 한 방울에 선풍기 미풍보다 더 작은 바람과 초저녁 노을과 키질이 함께 했음을.

 (2021.10.4.)

* 나만의 풍경 추가하여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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