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글쓰기/안건모/보리
대학 1학년 시절인 1996년 실향민의 아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 '라구요'로 가수생활을 시작한 강산에에 흠뻑 스며들었다. 음색이 강사내(원래 본명)라는 이름처럼 남자답고 굵었다. 그래서 여운이 오래간 노래. 다음에 윤도현 목소리와 비슷해 누가 원조인지를 찾게 된 가수다. 1993년 데뷔 후 3년 뒤 '삐딱하게'라는 노래에 흠뻑 빠졌던 대학 1년. CD도 아닌 카세트테이프로 열심히 들었던 음악이다. 당시 90년대 사랑노래가 대세를 이뤘을 때 '할아버지와 수박' 같은 일상소재와 '태극기' 같은 세상살이와 정치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나와 신기했다. 그전에는 건전가요 한 곡씩은 꼭 담겨있던 시절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너무 착하게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이렇게 건전함과 정도만을 고집했던 가요계에 삐딱하고 반항하는 강산에가 등장했다면 글쓰기계에도 지식인과 학자들의 전유물인 글쓰기에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만 하는 게 아닌 글로 표현하는 '삐딱한 글쓰기' 책이 등장했다. 역시 이 배후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계셨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분이다.
작가 안건모는 이십 년 동안 시내버스 운전사였다. 그래서 글 쓰는 운전사로 유명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했고, 집 짓는 건설 현장에서도 일했다. 가구 배달차, 소독차, 자가용도 몰았다. 버스 운전을 처음 할 때는 열심히 일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으로 바보처럼 일만 했다. 책을 보면서 사회구조가 삐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평불만이 많은 운전사로 변했다. 부자들, 권력 있는 자들만 글을 써서 이 세상이 오른쪽으로 삐딱해진 것을 깨닫고 삐딱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라는 글을 써서 전태일 문학상 생활글 부분에서 우수상을 탔고 <한겨레신문>, 월간 <작은 책>에 글을 연재했다.
지금은 버스 운전을 그만두고 <작은 책>을 만들고 있다. <작은 책>을 그만두면 마지막으로 영업용 택시를 해 보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착한 아내와 자기만큼 잘생긴 아들과 티격태격하면서 살고 있다. 틈틈이 산에 오르고 축구도 하고 기타도 튕기면서 열심히 글을 쓴다.
"글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쓴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 책이다. 그리고 다시금 나 역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용기를 준 책이다. 그래서 이렇게 컴퓨터로 바로 옮겨본다. 내 생각과 기분을. 나중에 쓴다고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바로 쓴다. 나중은 영원히 나중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제목을 왜 삐딱한 글쓰기로 했을까? 삶을 가꾸는 글쓰기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아닌 자본주의와 권력지향에 반하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한 책이다. 책상머리에 있는 이들만이 아닌 진짜 몸으로 일하는 이들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한 책이다. 지금껏 만나온 글쓰기 책 중 가장 진정성 있는 글이다. 글을 왜 써야 하는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글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을 쉬운 우미말로 쉽게 친절하게 알려준다. 마지막 마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책을 내야 한다고 마무리하며 생활글 책을 소개한다. 더 나아가 작가가 20년 동안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 전태일 문학상을 받을 글, 여기저기 써서 모아 온 글을 모아 쓴 책.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는 책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도 읽게 만든다. 책 곳곳에 자신의 자랑을 밉지 않게 많이 해 두었다. 글쓰기로 자존감이 채워지지 않았을까. 작가가 무슨 일을 하든 글을 쓴다는 말처럼. 글쓰기를 주저하고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을 쓰도록 만드는 이 책을 권한다. 책상머리에 앉아 모호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내 삶이 없이 책 속 글만 따라 쓰고 흉내 냈던 답답했던 글쓰기 흐름에 한줄기 빛을 내려줬다. 따라 쓰지 말고 네가 몸으로 행한 삶과 거기서 느낀 네 생각을 쓰라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글도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방 안에 앉아 밤낮 글만 쓰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이 무엇을 얘기하고 무엇을 보여주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온갖 글이 온갖 인쇄물에 실려 나와 엄청난 글 공해를 일으키고 있다. 정작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할 사람들은 일만 하다 보니 쓸 틈도 없고, 또 스스로 무식하다는 열등감에 빠져 글을 못 쓴다. 이래서 사회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134쪽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이오덕 선생님 쓰신 내용 중 일부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글쓴이가 진솔하게 풀어놓은 삶이야기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래 나도 써봐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독서가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가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고 홍세화 선생님은 말했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그 뒤에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 그러니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나중은 영원히 나중으로 끝날 것이므로라고 추천서에 홍세화선생님 강조한다. 왜 책 제목을 삐딱한 글쓰기라고 했을까? 원래 지구는 삐딱하다. 자전축이 이십삼 점 오도로 기울어져있다. 그러니 삐따기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 세상에 보이는 대로 아니 보이는 대로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삐딱하게 다시 생각해 보는 힘을 기르는 게 글쓰기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이를 바로 잡으려면 삶은 없이 머릿속에서만 맴돌기만 하고 온갖 공해를 일으키는 글과 말이 줄어들고, 삐딱한 세상을 끌어당겨 균형을 맞추는 힘인 몸으로 쓴 진정성 있는 글이 늘어나야 한다. 작가 말처럼 개나 소나라고 하면 무리겠지만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처럼 들녘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농부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방학기간이나 방과후 곳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나 청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라야 좋은 세상이다. 더 나아가 암기와 문제풀이를 벗어나 틀에 갖힌 논술이 아닌 글쓰기로 아이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을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