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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Sep 30. 2024

여전히 책을 읽으려는 그대에게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독서의 방법과 쓸모, 박순영, 미래문화사

'세상을 읽는 디딤돌' 독서모임  두 번째 책이다.  독서모임을 좀 더 체계적으로 알고 시작하는 취지에서 한 회원이 권한 책이다. 개론서(어떤 학문 따위의 내용을 간략하게 추려 서술한 책) 느낌이 강해 처음에는 읽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니 지루해서 책장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의지의 한국인이라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끝까지 책장을 마쳤다. 책 서론에서 이야기했듯 책 천 권, 만 권 읽기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걸 다시 한번 더 알게 된 책이다. 양이 아니라 질이다. 하지만 양이 넘쳐야 질도 채워진다는 걸 알기에 양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단 저자가 이야기하듯 깊이 읽기는 필요하다. 최소 삼독을 해야 한다는 말. 이 독후감 또는 서평을 쓴다면 최소 세 번을 읽고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 발행 텀이 길어졌다. 이 글도 세 번읽은 것은 아니기에 깊이 차이를 미리 염두에 둔다. 그래도 책을 읽고 쓴다는데 의의를 둔다.


  저자는 독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독서'를 하느냐 즉 어떻게 독서를 하느냐를 중하게 여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이야기한다. 또 책을 읽기가 무조건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라는 필요성과 배경보다는 '어떻게'라는 방법적인 측면과 쓸모를 강조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부수는 강력한 펀치 한 방을 만들기 위해, 지금 독서의 부뚜막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p.9)


혼자 읽기가 아닌 여럿이 함께하는 독서모임이 필요한 이유를 작가는 가소성과 유연성으로 비유해서 설명한다. 자신만의 상식과 가치관, 범위의 틀에 갇혀 책을 읽은다면 성장이 없을 것이다. 이를 자극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다 보면 다양한 자극의 의미를 받아들이거나 재구성해 볼 수 있고, 부조리한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간접 경험을 통해 유연한 태도와 상상력을 향상하는 데는 독서만 한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창의력은 바로바로 보여주는 '보는' 영상보다는 텍스트 문자를 읽으면 자신의 경험과 배경지식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 더욱 창의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나에 최근 아니 여전한 관심사 서평 쓰기에 대한 부분도 있기에 관심을 갖고 읽었다. 독서모임 후기를 나누는 방법 중 하나인 서평 쓰는 방법을 안내하는 글이 있었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 중에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들이 많아 거기에 책에 대한 포스팅을 하거나 리뷰 형식의 글을 많이 기록한다. 자신만 보는 일기장과 달리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예상하는 타인 지향의 공간이니 글이 좀 더 정성이 들어간다. 자신의 서평 또는 독후감을 읽는 이들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서평은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 있다. 책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작가의 핵심 주장과 근거 즉 주제를 파악하려고 한다. 책의 장단점도 말하고 작가에게 논리적인 모순의 호기심이 든다면 그걸 지적해 주기도 한다. 그러니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읽어야 서평을 쓸 수 있다는 말이 맞다. 하지만 어떻게 두 번을 읽지. 시도해 봐야겠다. 이독, 삼독.


서평은 한 책에 대한 되돌아보기이지만 어쩌면 새로운 창작이다. 단 책 내용과 작가의 의도에 기대어 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소의 비빌언덕처럼. 완전한 새로운 창작은 아니다. 어릴 적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간단한 줄거리와 책 뒷부분에 나오는 다른 작가의 후기를 그대로 따라 썼던 기억이 난다. 나만의 언어로 정리, 표현하지 않고. 작가가 말하는 서평 쓰는 방법은 첫 번째 '책의 정체성 확인하기'이다.   어느 진영인지를 아는 단계라고 할까. 인간관에서 한 인간을 그의 '뇌'로 보는 유물론적 과학주의와 인간 개인을 단순히 '뇌'로 환원할 수 없다는 정신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이처럼 진보냐 보수냐,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등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정체성을 알기 전에 문학의 경우 작품이 속한 문예사조나 작가의 신념 등을 미리 알아두면 파악이 쉽다고 한다. 두 번째는 정합성이다. 개연성이라고도 한다. 그럴듯한 지 여부다. 논리적인 허점이나 너무 과정 되고 지나치게 허구적인 요소가 많은가를 판단해야 한다. 셋째는 비교다. 진영을 파악하고 정합성을 확인했다면 다른 진영이나 반박할 내용을 찾아보는 확정의 단계가 필요하다. 자신의 경험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책에서 알게 된 요소나 다른 독자들의 생각도 필요할 수 있다. 여기에서 독서모임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서평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평가를 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줄거리와 해석 중심의 서평 예시를 들어본다. 셰익스피어의 '가려진 이야기들 <템페스트>'이다.

"1.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만년기인 1611년에 지은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 작품을 끝으로 그는 더는 집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템페스트는 '4대 비극'만큼 유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줄거리가 독특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여러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작품이고 무려 서울대 100대 권장도서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이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작품 안에 많은 상징이 적절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해석의 재미가 있다.

 제목은 '템테스트' 혹은 '폭풍우'라고 번역되어 있다. 문학동네와 문예출판사는 '템페스트'로 창비는 '폭풍우'로 출간되었다. 1차 문헌의 제목이 이렇게 두 종류로 쓰여서 2차 문헌(작품을 재해석한 글)에서도 작자에 따라 '템페스트' 혹은 '폭풍우'로 혼용되어 쓰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2. 줄거리는 단순하다. 밀라노의 대공 푸로스퍼로는 정사는 뒤로 한 채 마술 연구에만 몰두한다. 그의 동생 안토니오는 나폴리의 왕 알론조의 힘을 빌려 반란에 성공하고 푸로스퍼로와 딸 미랜더를 배에 태워 축출한다. 푸로스퍼로는 알론조의 신하 곤잘로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어느 무인도에 도착한다. 그 무인도는 사악한 마녀 시코락스가 살았던 곳으로, 시코락스는 괴물 캘리벤을 낳았고, 에어리얼이라는 정령을 소나무 속에 가둬 노예로 부렸다. 시코락스는 이미 죽은 뒤였고, 푸로스퍼로는 에어리얼을 구하고, 에어리얼은 푸로스퍼로를 주인으로 섬긴다. 캘리밴 역시 푸로스퍼로의 하인이 된다. 12년이 흐른 뒤 푸로스퍼로의 마법으로 알론조 왕과 안토니오는 폭풍우를 만나 섬에 좌초된다. 푸로스퍼로는 복수 대신 그들과 화해하고 마술을 모두 버린 채 제자리로 돌아온다.

3. 템페스트에 관한 기존의 해석은 '화해'에 방점을 두었다. 당시 문학의 보편적인 해피엔딩 장치인 '결혼'가지 등장하고 죽는 사람 하나 없이 용서받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베토벤은 템페스트를 읽고 '피아노 소타나 17번'을 작곡하였다. 연주곡은 연주시간이 7분 30초 전후이며 전반적으로 빠르면서도 어둡고 여름밤 장마처럼 눅눅하다. 베토벤이 청각을 거의 상실했을 즈음이라니 그럴 듯도 하다. 그런데 왜 베토벤은 그 절망적인 순간에 템베스트를 읽고 이곡을 지었을까. 그 역시 템페스트를 분노 뒤 화해와 용서로 해석한 듯하다.

<중략>

7.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어떤 생각으로 템페스트를 지었을까 당시 그는 만년이었고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었다. 어쩌면 푸로스퍼로에 자기의 모습을 일부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푸로스퍼로 가 모든 마법을 버린 것과 동시에 집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려놓음'의 심적 상태라면 '화해'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 작품을 집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다시 말해 현대의 해석보다는 기존의 해석이 더 셰익스피어의 집필 목적에 가깝다는 것이다.

 단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과연 실존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실제 인물이고 그의 연대기가 사실이라면, 사후에 받을 엄청난 호평은 전혀 모르고 죽은 작가 만년의 작품에는 화해와 해탈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실존인물이 아니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필명이었다면? 혹은 어는 창작 집단이었다면? 아마도 정치적인 메시지에 조금 더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적인 해석, 즉 켈리밴을 저렇게 악독하게 그려야 제국주의의 명분이 생기고, 그를 강간범으로 만들고 푸로스퍼로를 성인으로 만들어야 영국의 침탈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에 템페스트를 지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8. 템페스트는 빙산처럼 눈에 보이는 부분, 작품의 길이보다 해수면 아랫부분, 숨은 이야기가 훨씬 긴 작품이다. 템페스트는 작품 자체의 의미보다 해석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가수는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부를 때의 감정에 따라 노래가 늘 달라야 한다는 어는 심사평처럼 템페스트 역시 읽을 때마다,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 서평을 읽고 해석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라는 인물도 다시 보게 되었다. 진영의 문제로 제국주의 옹호냐 원주민에 대한 존경이야의 차이로 책의 평가가 달라지는 상황이다.


책을 읽고 월1회 모이는 날 카페에서 회원들과 나눈 이야기는 책을 싫어하는 이들을 어떻게 책을 읽도록 설득할 것인가 아닌 그 강요가 정당한가? 다른나라에서는 아직 시도하지 않은 디지털교과서 활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학생들은 일부 교과서를 기성세대와 달리 물성이 있는 종이교과서가 아니다. 이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영상이미지에 익숙한 신세대에게 종이교과서를 강요하는 건 기성세대들의 일방적인 주장일까. 아니면 생태적으로 나무를 살리는 디지털교과서가 긍정적이지 않을까. 아니 전력을 준비해야 하는 게 더 비생태적인 건 아닐까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독서모임에서 해서는 안 될 두 가지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단정적 표현과 의도추정, 확대해석, 축소 해석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 표현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최대한 정합적으로 해석해 주고, 정합적이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군요, 또는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라는 말보다 그전에 그의 발언에 새로운 해석이 있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솝우화의 바람과 해> 이야기에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한 방법이 바람으로 벗기는 게 꼭 잘못된 방법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람이 약했거나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바람과 해 둘 다 성공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영상미디어가 넘치지는 좀 더 쉽고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인 미디어인 이 시대 책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온화와 유연성, 그리고 창의성을 위한 최고의 공부법이 독서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단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을 좋은 책들을 골라 읽어야 할 것이며 양보다는 질로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자신만의 생각으로 아집이 생기는 걸 방어하는 최선은 여럿이 함께 읽는 독서모임이 필요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려는 이 시대 독자들은 읽어봐야 할 책이다. 다양한 독서모임 방법과 독서 모임 운영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 독서훈련법은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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