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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 Apr 21. 2024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가능성: 소설 <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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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및 작품 소개     

  『자두』는 여성의 시선으로 가부장제와 돌봄노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더운 여름을 배경으로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맡게 된 ‘나’와 남편 세진, 섬망을 앓게 되는 시아버지 안병일, 그리고 여성 간병인 황영옥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자두를 매개로 펼쳐지는 병일의 일화와 가부장제,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나와 영옥 사이의 유대는 가족 내에서 타자화되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족 밖에서의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랑에 대한 믿음과 환상이 깨진 뒤에도 그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이 작품의 노력은 가족과 여성 존재에 대한 매너리즘의 극복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품 줄거리 요약     

  ‘나’는 남편 세진과 함께 담도암에 걸린 시아버지를 돌보게 된다. 시아버지의 건강이 점차 악화하면서 돌봄의 난도는 점차 높아지고, 결국 부부는 요양보호사 영옥을 고용한다. ‘나’는 젊고 사무적인 영옥의 태도를 낯설어하지만, 점차 영옥과 유대 관계를 맺는다. 한편 “로맨스 그레이의 현신”으로 불렸던 신사다웠던 시아버지는 섬망 증세가 심해지면서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어느 날 친척들이 다 모인 병원 휴게실에서 시아버지는 영옥에게 “도둑년”이라고 욕을 하며 머리채를 붙잡고, 이를 말린 ‘나’에게는 충격적인 언사를 내뱉는다. 하지만 세진은 되려 시아버지를 다그친 듯한 ‘나’의 행동을 불경스럽게 여기고, 세진과 그의 친척들은 ‘나’와 영옥을 휴게실에 두고 시아버지를 돌보러 떠난다. 휴게실에 남겨진 ‘나’는 영옥과 함께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태우며 말없이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게 된다. 이후 세진은 ‘나’와의 논의 없이 영옥을 해고하고 남성 요양 보호사를 새로 고용한다. 시아버지의 증세는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결국 몇 달 후 모종의 이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나’는 시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세진의 육촌 형을 만나게 된다. 그는 ‘나’에게 시아버지에 대한 헌신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며 시아버지의 죽음을 ‘나’의 탓으로 돌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진은 ‘나’의 처지를 외면하고 육촌 형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그에 동조한다. 세진에게 크게 실망한 ‘나’는 ‘나’의 처지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던 영옥을 뒤늦게 떠올리며 미안해한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뛰쳐나와 영옥을 찾아보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다. 이듬해 봄, ‘나’는 세진과 결별하고 북해도로 여행을 떠난다.  

      


작품 감상 및 비평     

  병일의 섬망은 영옥이 말한 “폭풍우”처럼 모든 관계를 파멸로 이끌었다. 휴게실에서의 사건 이후 영옥은 해고되었고, ‘나’와 세진은 이혼했다. 섬망은 병일이 그간 감춰온 위험한 속내를 표면화시켰다. 병일이 섬망 증세와 함께 내뱉은 말들, 그리고 그에 대한 세진의 편향적인 태도는 화자가 남편에게 진정한 가족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이처럼 『자두』는 가족 내에서 타자로서 존재하는 여성이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가족 밖에서 새로이 연대와 희망을 찾는 서사로 진행된다.      


▶  ‘딸 같은 며느리는 실존하지 않는다 - ‘나’와 시아버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병일은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봄꽃보다 반가운 사람”이 왔다며 ‘나’를 “며느리가 아니라 딸”로 대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병일은 ‘나’를 처음부터 철저히 며느리로 대해 왔다. 섬망 증세와 함께 소환된 ‘나’에 대한 첫 기억은 “시아버지가 될 사람에게 첫인사를 하러 오면서 겨우 수박 한 통을 들고 온 아이”였다. 그뿐만 아니라 병일은 ‘나’의 앞에서 꾸준히 손자 이야기를 하며 출산에 대한 압박을 전했고, 섬망 증세가 악화하면서 ‘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애 때문에 우리 집 귀한 손이 끊겼다”라는 표현과 함께 병일은 여성인 ‘나’를 집안의 대를 잇는 수단 정도로 바라보는 가부장적 태도를 가시화했다. 

  하지만 실제로 은아는 아들인 세진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열심히 시아버지를 보살폈다. 세진은 알지 못하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칭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었고, 실질적인 돌봄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은아와 병일은 세진을 매개로 존재하는 관계이다. 본질적으로 며느리인 은아와 시아버지인 병일은 ‘친부모’, ‘친자식’같은 관계가 될 수 없다. 혈연적, 정서적 결속이 없는 관계 속의 인물들이 서로를 타자화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때문에 은아는 병이 들어 아파하는 병일이 아닌 병일을 간호하느라 지친 세진을 걱정한다. 반대로 병일의 경우에는 결혼으로 자신의 아들을 빼앗아 간 은아를 경쟁자로 여긴다. 며느리가 아무리 딸처럼 정성스러운 행동을 보여도 시부모는 며느리를 꾸준히 경쟁자로서 경계하고, 며느리 역시 시부모를 남편을 걸쳐 존재하는 타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결국 ‘딸 같은 며느리’라는 개념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아내는 우리가 될 수 없다 - ‘나’와 세진의 관계를 중심으로     

  세진과 은아가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 또한 매우 다르다. 은아는 세진을 가족이자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세진은 은아를 동등한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진은 출산을 강요하는 병일의 태도를 방관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은아에게 그런 시아버지를 이해하라고 말한다. 특히 장례식장 사건은 이혼의 결정적 사유가 되었다. 세진의 육촌 형은 은아에게 병일을 모시고 살지 않은 것을 문제 삼으며, 병일이 죽은 이유를 ‘나’에게 떠넘긴다. 그러나 세진은 ‘나’를 감싸기는커녕 ‘나’를 대리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진에게 ‘우리’라는 개념은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존재한다. 세진은 병일을 돌보는 문제에 있어 돌봄 과정을 함께한 아내보다도 몇 번 만난 적 없는 육촌 형과 더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가부장적 가족 구조 속에서 남성은 아내인 여성을 부계가족에 편입된 존재로 여긴다. 근대화 이후 개인화 과정을 거친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여전히 집단주의에 순응하고 이를 통해 가부장적 가족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시아버지인 병일뿐만 아니라 남편인 세진 역시 ‘딸 같은 며느리’를 이상적인 아내상으로 설정해 ‘대리 효도’를 기대하고, 남성 중심의 가족 구조를 지키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딸 같은 며느리’라는 표현은 세진의 발화에서도 등장한다. 작품 후반부에 세진은 은아가 시아버지에게 ‘딸 같은 며느리’였기 때문에 병일이 남긴 유산의 절반을 보내겠다고 말한다. 이 유산은 은아의 행한 ‘대리 효도’에 대한 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 못지않게 병일을 적극적으로 보살핀 전처에게 일종의 훈장을 수여해주는 것이다. ‘딸 같은 며느리였기에 유산을 나누겠다’는 세진의 말은 ‘딸 같지 않은 며느리라면 유산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로 귀결된다. 시부모를 타자로 대우하고 살피지 않았다면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세진은 ‘나’를 함께 깊은 사랑했던 아내가 아닌 시아버지를 잘 보살핀 며느리로 인식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가족 밖 여성 간의 연대 - ‘나’와 영옥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량보충     

  놀랍게도 이러한 ‘나’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가족 구성원이 아닌 요양보호사 영옥이었다. 휴게실에서 서로를 구해준 영옥과 ‘나’는 옥상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말없이 유대감을 느낀다.  ‘나’와 영옥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돌봄의 의무를 배당받고, 돌봄 대상자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으로서의 피해를 눈으로 직접 목격하며 두 인물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나’와 영옥의 피해는 같은 선상에 두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두 인물은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다. ‘나’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큰 무리 없이 대학원을 마친 중산층 계급의 인물이지만 영옥은 어린 나이에 가난으로 어머니를 잃을 만큼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서 자라왔다. 『자두』의 아쉬운 지점이 바로 이러한 계층 간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영옥은 경제적으로도 취약할 뿐 아니라 이주민 여성으로서 이중적인 피해를 겪고 있다. 병일에게 꾸준히 “도둑년” 소리를 듣지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실질적으로 이를 제재하는 사람도 없다. 영옥과 화자의 관계 또한 대등하다고 볼 수 없다. ‘나’는 영옥의 고용자이기 때문에 영옥은 다른 환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이처럼 『자두』는 전형적인 엘리트 여성의 시점에서, 한국 사회의 중산층 여성이 겪는 피해를 조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함께 읽고 싶은 단락     

아이 이야기는 지치지도 않고 나왔습니다. 친척 누가, 혹은 이웃의 누가 손주를 봤다더라, 돌잔치를 한다더라. 출산율이 곤두박질친다더니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 끝없이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시아버지의 방식은 좀 치사한 데가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아기 이야기를 꺼내놓고 갑자기 제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어 버리거나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러면 저는 죄도 짓지 않았는데 용서를 받는 더러운 기분이 들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세진에게 이런 찝찝하고 억울한 기분을 털어놓았습니다. 처음 몇 번은 세진이 대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세진도 시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부모의 반응에 비하면 시아버지의 반응은 굉장히 너그러운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너도 결국 아이를 가져보려고 더 노력하지 않는 게 잘못이라는 말이지? 왜 이야기가 그리 튀어? 어른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럼 나는? 죄도 없이 맨날 용서받는 내 심정은 누가 이해해주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네 팔은 늘 아버님 쪽으로만 굽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너랑 아버지를 저울질하지 않아. 둘 다 내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왜 꼭 편을 갈라야 해? 너야말로 늘 편을 가르려고 들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어떻게 둘이 될 수 있니? 너는 언제나 뒤로 밀리는 내 마음을 절대로 이해 못해. 싸움은 계절성 기후처럼 반복되었습니다.     

  이 대목은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가족 구조를 보여준다. 아내인 ‘나’는 세진에게 꾸준히 ‘우리’로 인정받기를 갈구하지만, 남편인 세진은 여전히 유교적인 가족 구조 속에서 모든 관계를 해석한다. 남편에게 아내 은아는 절대 유일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우리’ 가족에 들어온 타자로 존재했다. 『자두』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상상과 가능성을 떠올려볼 수 있는 계기를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여성들이 겪는 서로 다른 피해를 뭉뚱그려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영옥과 같은 소외계층 여성이 겪는 이중적 피해가 충분히 다루지 못한 이 작품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지만, 가족제도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는 작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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