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혼숙려캠프는 가라. 해병대 캠프가 온다.

그러니까 물류센터는 나만의 작은 해병대 캠프

by 프니

사는 동안 내게 해병대캠프 체험을 제안한 사람은 단 두 명, 본의 아니게 그들은 나의 가족들이다.


어린 시절, 스쳐 지나가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좌절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가족들 사이에서 멘털이 약하다는 평을 자주 들었던 나에게 해병대캠프에 한 번 다녀와보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물었던, 성인이 된 후에 침대에 누워만 있던 나를 보며 "해병대 캠프에 보낼걸.. 보낼걸.."이라는 말을 읊조리던 나의 아버지가 그 첫 번째 주인공이고, 두 번째는 그런 나와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남편이다.


"해병대 캠프에 가보는 건 어때?

새벽 1시 43분. 그의 입에서 해병대캠프 단어가 나왔을 당시의 시각이다. 시간이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게 핸드폰 시간을 확인한 것이었다.


때는 약 한 달 전이었다. 열심히 이것저것 해보는데도 프리랜서로서 고정 수익을 마련하지 못하는 내가 미련하다는 생각에 쉽게 잠이 들지 못하던 새벽.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 어떡하지.라는 말을 읊조리고 있는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보고 거실로 나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왜 왜. 뭐가 문제야.

- 돈을 못 벌잖아!

벌면 되지.

- 근데 못 벌잖아.

아니야 마음이 지금 약해져서 그래.

- 나는 약하잖아!

왜 약해. 지금 잠시 마음이 약해진 거지. 그럼, 진지하게 해병대 캠프 다녀와보는 거 어때?

- 헉.


늘 따스운 용기와 위로와 응원을 듬뿍 주었던 그가 이제는 해병대를 제안하다니. 이제 그도 지친 걸까? 나 이혼숙려캠프 나가는 거야?라고 혼자 오바쌈바를 떨고 있을 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새로운 환경을 좋아하잖아!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어."

자극추구형 인간인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그가 내린 새로운 처방이었다. 맞아. 맞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고 혼자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고갈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솔직히 그의 입에서 그 단어를 듣자마자는 바늘로 발가락이 순서대로 콕콕콕 찌르는 느낌이 남과 동시에 나를 보며 해병대캠프 염불을 외우셨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양한 감정과 감각이 순식간에 온몸을 뒤덮었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몇 년이 흘렀는데도 제자리를 맴도는 모습을 들켜 버린 수치심일까, 충분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었던 아쉬움일까, 어쩌면 진짜 아픔일까.



2025년 하반기의 나는 영상편집으로 자리를 매김 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더랬다. 실제로 연초에 크몽으로 만난 클라이언트는 내가 무척 맘에 든다며 고정 편집자로 위촉시켜 주더니, 단가도 올려주기 시작했다. 2024년도에 울며 겨자 먹기로 3만 원 받고 외주를 하던 나에게 영상 한편으로 30만 원을 주는 그는 마치 신처럼 느껴졌다.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이 사람을 잘 잡으면 돈을 많이 벌겠다 싶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고정알바(물류센터) 수익보다 더 높은 영상수익을 실현하게 되었다. 잠잘 시간이 부족해도 행복했다. 하지만, 몸은 이 상황을 반대했다.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물류센터 알바를 하던 어느 날, 순간 어지러움을 느끼고 만 것. 아, 이건 진짜 그만둬야겠구나. 내 몸은 하나지. 둘이 아니야.


"매니저님, 저 다음 주까지만 출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쿨한 안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설레기 시작했다. 80만 원의 고정 알바 수익이 사라진다 해도 걱정 없는 환경을 세팅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정말 재밌게도 알바를 그만두자마자 나의 영원할 것 같던 클라이언트는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더 이상 영상을 줄 것이 없느냐고 말을 걸어볼까도 했지만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몰래 그의 유튜브 채널을 훔쳐보다 그를 잊었다.(프리랜서로서 참으로 안 좋은 리액션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다시 크몽 상세페이지를 다시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영업하며 돈을 벌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 나도 했다. 근데 그 시절엔 안 했다. 지금도 사실 열심히 하면 벌 수 있는 구조는 있다. 그런데 안 하고 있다. 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이런 나를 오래 지켜본 가까운 사람들은 참으로 답답하겠다 싶지만, 지금은 마음을 먼저 단단히 해두어야 할 타이밍이 아닐까?라고 나를 챙겨본다.


영원한 클라이언트는 없다. 그리고 영원한 잔고부족도 없다.

오랜 시간 프리랜서 활동을 하며 깨달은 것은 영원한 클라이언트도 없고, 영원한 잔고부족도 없다는 것. 그런데 그건 내가 하기에 따라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 당연한 논리를 자주 잊고 좌절에 빠질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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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캠프 입소 2차 제안을 받은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말끔해졌다. 잠들기 전, 콘텐츠를 위해 해병대캠프에 한번 다녀와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각성된 모습으로 맹훈련을 받는 해병대 캠프 후기 이미지를 보자마자 뒤로 가기를 눌렀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환경을 생각하니 도파민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 날, 곧바로 물류센터 알바에 지원했다. 돈도 벌고 새로운 환경도 체험할 수 있는 물류센터는 이제 단순히 알바를 하러 가는 곳이 아닌, 나의 정신 수양을 다듬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그러니까 이곳은 나만의 작은 해병대 캠프. 그곳에서의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저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저는 일단 해병대 캠프에 다녀오겠습니다. 충! 성!



*나만의 해병대 캠프 수칙

- 고정적인 공간이 아닌 다양한 환경(물류센터)을 경험해 볼 것

- 새로운 환경에서의 나를 관찰할 것

- 환경을 탓하지 말고 최선을 다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