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일상에서 새로움을 꺼내는 보물창고다.
음식은 도시 안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요소다. 음식을 통해 사람 간의 공통점을 찾고, 취향을 알게 된다. 음식을 먹다 보면 그릇, 책, 가구, 인테리어, 조명, 음악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간 공통점을 찾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분주한 도시에서 이 모든 걸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연코 음식만큼 좋은 게 없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재료에 대해서 논하게 된다.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할지 이야기하는 건 당연하다. 수비드는 어떤 면에서 좋은지, 디저트를 왜 체계적인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지 말이다. 각자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들의 요리 경험으로 넘어간다. 그러다 보면 음식을 어떻게 플레이팅 할지, 어떤 음악이나 음료 및 술이 어울릴지 의견을 주고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요리는 배우는 건 교양을 배우는 일이다. 생산적이면서도 동시에 우아하다. 칼로 재료를 썰면서 느끼는 희열, 요리가 익는 과정을 보는 일. 스테이크를 시어링 할 때 나오는 "쫘왁"소리, 바삭바삭하게 만든 스테이크를 레스팅 하면서 기다리는 눈빛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하고 차분하다.닭 백숙을 만들면서 생긴 육수를 식혀서 기름을 걸러내 맑은 육수를 만든다.팬을 달구고 올리브오일을 뿌리고 저민 마늘을 넣고 마늘 오일을 만든다.
향긋한 마늘향이 주방을 가득 채운다.
눈끝에서 절로 나오는 미소.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조합을 생각했을까? 멋진 사람들이다. 면을 삶고 미리 만들어 놓은 닭육수를 조금 부어 파스타를 만든다.다양한 초콜릿 산지를 구글 맵으로 찾아보면서 그곳의 기후를 생각해보는 일도 일상에서 신선한 자극이다. 요리 속 우아함은 꾸미지 않은 담백함 그 자체다. 동시에 요리가 가진 우아함은 실존적이다. 재료를 손질하고 적절하게 조리하면 충분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고든 램지의 랍스터와 연어손질을 보자. 그 얼마나 거칠면서도 우아한가?
이러한 요리의 속성은 도시 안에서 퍽퍽하게 치이는 사람들에게 힘과 에너지를 준다. 금요일 밤이나 주말이 되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우리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언젠가 가게에서 친한 지인들과 음식을 해먹은 적이 있다. 나는 닭가슴살을 수비드 했고 당근 퓌레 곁들었다. 사실 당근 퓌레는 잼 대용으로도 좋다.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써도 되는데 조만간 당근을 사서 만들어봐야겠다. 지인 중 한 명은 소고기 등심을 샀다. 나는 고기를 꺼내고 물었다. 3명이 모였는데 요리는 항상 내 몫이다.
"넌 어떻게 구울까?""전 그냥 레어 혹은 블루 레어에 가까우면 됩니다." "저는 미디엄 정도면 좋아요"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소금, 후추에 올스파이스를 더했다. 평소에 접하지 못한 '올스파이스'라는 향신료를 본 두 지인은 매우 흥분했다. 향신료 하나만으로 그날 먹은 등심은 새로웠다. 특히 두 지인은 당근 퓌레에 매우 놀라는 기색이었다. "당근이 이렇게 달아? 당근이 이러면 난 매일 먹을 수 있겠어", "당근과 닭가슴살이라.. 이거 정말 새롭습니다." 당근 퓌레? 당근을 물과 버터 소금을 넣은 후에 당근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인 후 블렌더로 곱게 갈면 정말 달콤하다. 소금은 설탕 단맛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해서 단맛이 더욱 도드라진다. 여기에 상큼함을 넣고 싶다면 레몬즙을 아주 조금 넣으면 된다. 나는 초콜릿을 만들 때 반드시 소금 혹은 레몬즙을 넣는다. 단맛을 배가시키고 새콤함을 주기 위함이다.(나는 레몬즙을 평소에도 그냥 마실만 틈 레몬을 좋아하는 레몬 성애자다.)
다른 경우도 있다. 케일은 양배추과에 들어간다. 케일이 양배추과라고 하면 적지 않은 이들이 놀란다. 케일이 뻣뻣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케일로 샐러드를 만들 때 아주 얅게 져민다. 여기에 소금과 레몬즙을 살짝 뿌리자.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혹은 그라나 파다노)와 견과류, 건포도(혹은 건 크랜베리)를 넣는 것만으로 맛있는 샐러드가 된다. 난 케일을 항상 이렇게 먹는다. 어 또 뭐가 있을까? 아! 나는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 때 리코타 치즈가 있으면 리코타 치즈를 꼭 넣어준다. 적절하게 느끼한 맛이 토마토 파스타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물론 리코타 치즈는 직접 만든 걸로).
언젠가 도쿄 미드타운 히비야 근처를 지나가던 중 사람들이 엄청 줄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난 그곳에서 음식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찾기 위한 수많은 이들을 보았다. 야쿠모사료에서 기억나는 건 순무즈케모노와 단팥 오하기다. 순무 즈케모노의 아삭함과 향긋함. 약과와 팥소를 섞은 묘한 오하기는 뭔가 푸근하면서도 그리운 맛이었다. 몇 주 전에 먹은 갓김치 끝 맛에서는 와사비에서 매운맛이 느껴졌다. 평소에 갓김치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맛이었다. 갓김치에서 와사비 맛이 난다니? 참으로 흥미로웠다.
마침 집에 살치살이 있어서 스테이크와 결들어먹어보았다. 알싸한 와사비 매운맛에 고춧가루. 여기에 고기의 감칠맛과 젓갈은 그야말로 새로움이었다.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갓김치와 스네이크를 어떻게 플레이팅을 할지 고민했다. 동그란 그릇. 네모난 그릇 등등. 새로움은 거대한 무언가에 있지 않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예전의 무엇인가에서 묶어내고 엮는 일. 이게 새로움이다. 이런 면에서 음식은 사소함에서 새로움을 끌어낸다. 음식이 모든 라이프스타일과 연결할 수 있는 이유도 이 같은 속성 때문이다. 음식에 느낀 새로움을 다른 분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살치살과 갓김치에서 본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면 회화가 되고, 이를 셔츠에 비비면 옷을 만드는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6년간 리코타 치즈를 만들면서 단 한 번도 리코타 맛이 같았던 기억이 없다. 언제나 맛은 미묘하게 달랐다. 그 미묘함을 파악하는 일은 항상 언제나 새로웠다. 매일매일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면 요리를 권한다. 그렇다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지금 당장 수비드 머신과 진공 패킹을 사라는 말도 아니다.
마트에서 나오는 볶음밥에 새우를 더해보거나 계란을 더 해보거나 마늘 기름을 넣어 보는 일 만으로도 풍성한 새로움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새로움은 멀리 있지 않다. 언제나 당신이 깨워주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오늘 마신 맥주 거품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모든 식재료는 맛이 같아보이지만 사실 아주 미세하게 다르다.그 미세함을 잡아낼수록 즐거움은 커진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내일은 어떤 요리를 해볼까?'. 오랜만에 당근 퓌레를 만들어서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고구마와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