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은 봄에서 가을까지가 성수기다. 같은 말로 한겨울인 지금은 비성수기란 얘기다. 어제도 종일 걸으면서 길 위에서 순례자들은 거의 보지 못했고 문을 연 숙소나 식당보다 문을 닫은 가게가 더 많았다. 우중충한 하늘과 수시로 내리는 부슬비, 삐질거리는 비지땀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 회색하늘과 검은 구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역시 이런 풍경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것이다.
2011년 4월 30일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로 입대했을 때 나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인관계능력이 바닥이었던 20대 초반의 나는 누구든 일정거리 이상으로 다가오는 걸 받아들이질 못했는데, 하루 종일 같은 내무반에 12명이 붙어있어야 하는 군대는 내게 최악의 장소였다. 심지어 병무청의 실수로 3일이나 늦게 입대를 한 덕분에 이미 친해진 무리에 끼는 것도 힘들었다. 시작부터 3일 치 뒤처지며 시작하는 나는 그 무리들 중에서 또 열등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의 PTSD가 생생하게 반복되는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PTSD 뿐이랴. 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던 21살의 내 몸뚱이는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훈련에 만신창이가 됐고, 군대 특유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정신도 반쯤 나갔었다. 누군들 군대가 편할 수 있겠느냐마는 나에게 군대는 보통 사람에게 보다 더욱 치명적인 곳이었다.
그렇게 고된 훈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처음으로 행군을 했던 날이다. 논산의 논밭 위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생전 처음 사용해 보는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종일 터덜터덜 걸었다. 다리와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팠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30km를 걸은 뒤 부대로 복귀할 때의 순간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비에 젖은 흙냄새와 비지땀을 흘리며 걷는 나, 엉망인 나를 스치는 봄바람. 고개를 들었을 때 차례로 붉고 낡은 건물, 무성한 나무가 빽빽한 산, 비를 머금어 진한 구름과 그 위로 살짝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때 다짐했었다. 나를 강제하는 이곳을 나가면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겠다고. 내 오감이 기억하는 오늘의 풍경만큼 멋진 것들을 내 몸에 새기겠다고.
지금 돌아봐도 아무런 맥락 없는 이 소원이 이후 나를 멕시코와 중남미로, 스페인과 유럽으로 이끌었고 이제는 세상의 온갖 멋진 것들을 원 없이 봤다고 자부한다. 정말로 이제 더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한 줌의 아쉬움조차 없다. 물론 한국에 가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돌아다닐 예정이고 가능하다면 죽기 전 세상의 모든 대륙은 가보고 싶지만, 10년 넘게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자유로움에 대한 소원은 이제 충분히 이뤘다.
그래서 문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원이 없다.
도대체 나는 앞으로 무엇을 쫓아야 할까. 멋진 나? 열등감에서 비롯된 강박으로 정말 열심히 살아왔으니 나는 이미 내 나름의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잘나고 싶다는 목표는 큰 의미가 없다. 세계여행? 이미 충분히 다녀서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을 것 같다. 그럼 이제 나는 뭘 좋아하며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은 다른 많은 질문들과 결을 같이 한다.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는가, 내 적성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등. 아마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중 많은 순례자들도 이런 고민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선 자신의 본질을 관통하는 고민은 늘 지녀야 하니까. 물론 복잡한 질문이고 정해지지 않은 대답이다.
당연히 나도 나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겠다는 건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다. 이미 정해진 직업도 가졌는데 이보다 더 가슴을 뛰게 하는 적성을 찾겠다고 난리 칠 생각도 없다. 사회 일반인이 가진 기호를 굳이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건 멍청한 짓이다. 역시나 쉽지 않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금까지 ‘멋진 나’ 혹은 ‘세계여행’과 같이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쫓을 수 있었던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긴 인생길을 걸으며 순수하게 미쳐서 내 모든 에너지를 부을 수 있는 걸 가져봤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가.
앞으로도 '나는 무엇에 매진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은 항상 지니고 살겠지만 여러 모로 결핍이 해결된 나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 이상 예전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