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좋은 사람

by 밍기

안녕하세요. 저는 92년생이고요, 남자입니다. 키는 174cm이고 몸무게는 74킬로, 얼굴은 보시는 것처럼 생겼습니다. 잠시 휴직 중인 직장인이고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기독교인이기도 합니다. 돈은 먹고 살만큼 벌고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을 두고 재테크를 하고 있습니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뒤 현재 스페인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중입니다. 따라서 외국어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할 수 있으며 둘 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는 합니다. 악기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데 기타와 바이올린도 조금은 다룰 수 있고,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며 요즘 취미로 곡을 쓰고 있습니다. 운동은 헬스를 꾸준히 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은 여유가 있어 다양한 격투기를 짧게 돌아가며 배우고 있습니다. 이색적인 경험이라면 세계의 40개가 넘는 국가를 다니며 세계여행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누군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시키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이렇게나 많다. 그리고 이 자기소개만 보면 나는 사회적 규범에서 크게 엇나가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꽤 바른 삶을 사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감히 생각해 보건대 나는 내 나이에 갖춰야 할 것들을 크게 빠지는 것 없이 갖춘 사람이며, 내 개인적으로는 고점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지금까지 이뤄 놓은 것들을 잃지 않게 유지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을 정도로. 하지만 위에서 나열한 것들 중 나의 본질, 즉 내 알맹이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물론 사회에서 요구하는 빡빡한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열심히 살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룬 것들을 바탕으로 나의 성실함이란 알맹이를 유추할 순 있지만, 나는 알지 않는가 내 성실함이 사실은 강박이라는 것을. 그나마 세계여행을 다녔다는 부분에서 도전적임, 용감함 같은 요소는 찾아볼 수 있으려나.


내 외적인 것들을 벗겨내고 난 뒤 내 본질은 무엇일까 고민해 봤다. 막상 떠오르는 게 별로 없었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들 중 부정적인 것들은 열등감, 자기 연민, 강박 등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들도 이제는 많이 희석되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들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것들을 생각하면 부드러움, 연민, 동정, 지지 등이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가치들도 나에게 피해와 책임이 오지 않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것들이라 항상성이 부족했다. 깊이 고민해도 나는 도대체 어떤 알맹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자기소개를 술술 할 수 있지만 정작 내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니까. 나는 무슨 가치관을 지녔으며, 무슨 목표를 바라보며, 어떤 세상을 꿈꾸며, 어떤 이상을 그리며 어떤 삶을 살았는가.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나는 사회적 규범을 마치 내 가치관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여기에 강박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지금의 나를 이뤘지만, 언제까지나 사회적인 기준이 내 가치관이 될 순 없다. 사회가 변하면 사회적 기준도 변하게 될 터인데 그때마다 내가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겉이 그럴싸해도 알맹이가 없는 인생은 남이 보든 내가 보든 전혀 멋있지 않다.


물론 내 가치관이 사회적 규범을 크게 벗어나거나 내 주관이 너무 강해져 중용을 잃는다면 아집이 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걱정조차도 내가 나를 정의할 수 있을 때 고민할 문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회적 규범은 내가 될 순 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워버려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 때문에 끊임없이 명성, 평판, 성과, 돈, 직업, 외모 등을 쫓아왔지만 내가 잡았던 것들은 나를 정의할 수 없는 껍데기일 뿐이었다.


뭐, 결국 나를 정의하는 것은 나를 지은 신이겠지만, 나는 내 알맹이를 찾고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이 길 위에서 나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빠가 꼭 보고 싶다던 철의 십자가. 나는 내 증명사진을 하나 들고 가 내려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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