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면 외적으로 괜찮은 사람, 직업이 안정적인 사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그나마 이 정도 대답은 솔직한 사람들의 대답이다. 그나마 좀 있어 보이는 대답은 성격이 나와 잘 맞는 사람, 센스가 좋은 사람,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다. 좀 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면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사람 등이 있겠다.
물론 하나같이 정말로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같이 이기적인 대답이다. 앞서 나열한 사람들은 결국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나에게 득이 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형이니 나에게 득이 될 사람을 바라는 게 뭐가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결국 받기를 원할 뿐 내가 줄 생각은 단 하나도 없는 대답들이다.
반대로 이상형을 물어봤을 때 이런 대답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채워 줄 수 있는 게 있는 사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내가 없으면 잘 살 수 없을 것 같아 딱한 사람’. 물론 나도 똑같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 왔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을 찾아왔던 사람이니 다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반성한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생각을 해봤다. 나는 얼마나 타인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솔직히 내게도 너무 낯선 질문이었다.
우선 돈이 썩을 정도로 많아서 돈을 펑펑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돈은 최대한 쓰지 않으니, 물질을 쏟아붓지는 못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것도 줄 수 없다. 아빠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있는 힘껏 쏟아부어도 봤지만 결국 구멍 난 사람의 마음은 내 노력으로 채워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흉터가 있기 때문이다. 물질도 감정도 줄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성경 말씀에 의하면 내가 아무리 많이 가진다고 한들 꽉 움켜쥐고 베풀지 않는다면, 적게 가지더라도 기꺼이 손을 펴는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해치지 않는 선까지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물질적, 감정적, 시간적 헌신은 종종 나를 기쁘게 만들기도 하니까. F성향이 잔뜩 묻어난 감정적 지지와 공감,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의 선물, 내 일상을 무너트리지 않을 만큼의 시간 할애는 가능하다. 단지,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의 '부담스럽지 않은' 선을 넘어선 요구를 받을 때가 생기기 마련이니, 이 선을 얼마나 현명하게 조절할 수 있는지에 따라 관계의 형태도 달라질 것이다.
문득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껏 만났던 연인들은 어떤 이상형을 가지고 있었고 내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분명 그 사람들도 내게 기대한 게 있었을 것인데,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았으니 우리의 관계도 끝났던 것이다. 음, 사람에 따라 친구, 아버지, 하인처럼 내게 말했던 이상형은 천차만별이었으니 일반화를 시킬 순 없겠다. 어쩌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나를 만났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렇게 많은 변수 속에서 나는 사람들이 내게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 원하는 바를 말해 주길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줄 수 있는 걸 바란다면 내가 가진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갖추고 싶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걸 명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잔잔한 온기를 갖춘 모닥불 같은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편한 마음으로 자신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따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본질이 어떠함을 정확히 알아야 하므로 결국 돌고 돌아서 나는 어떤 알맹이를 가진 인간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아, 물론 이타적이고 나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서 자신의 것은 꼭 쥔 채로 나를 갈취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건 아니다. 나도 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내어준다면 당신 또한 당신을 나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 생각과는 모순되게 계산적인 사고방식 같지만, 경험상 나는 받기만 원하는 사람을 키울 능력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다.
언제나 중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도는 연관된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 이 균형을 유지해야 하니, 이런 문제는 나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겠다.
결국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소원에 대해서는 기도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