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한 번씩 받아봤을 거다. 취미가 뭐예요?
특기와 함께 실과 바늘처럼 따라붙는 질문인 취미는, 특기 못지않게 매번 답하기 어렵다. 딱히 이렇다 할 취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없다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게 취미이긴 한데, 대부분은 이러한 취미는 인정받는 분위기가 아니다. 게다가 이력서 같은 곳에 ‘제 취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라고 쓰면 서류에서 광탈이 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취미란, 무언가 실질적인 행동을 하고 그 행동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우리가 상대에게 취미에 관해 물었을 때 흔히 듣는 답변(등산이라던가 영화감상, 독서, 여행 등등)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기’도 건강한 취미라 자부할 수 있다. 생각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게 많다.
일단, 마음 편히 한 자세로 가만히 있을 수 있다. 앉아 있거나 누워있거나 편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는 거다. 일부러 안 움직이는 건 아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아서 한 자세로 유지한다. 덕분에 눈만 슬쩍 감고 있으면 누구나 속아 넘어가는‘자는 척’ 하기의 고수라 불릴만한 스킬을 갖고 있는데, 한 30년 전부터 나의 엄마는 매번 속았다.
멍 때리기도 레벨이 꽤 높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 때부터 했으니, 경력 4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다. 주위의 상황이 어수선하건 조용하건 상관없이 떠오르는 잡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의 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생각이란 덩어리가 중력이 없는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무게감이 없어진다. 물론 무아지경의 멍 때리기 속에 들어가면 턱 근육이 스리슬쩍 풀어져 입을 헤~ 벌려 모자라게 보일 때도 있지만, 뇌가 쉬는 중이니 모자라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시간을 오래 흘려보낼 수 있는 능력은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라는 자괴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도 발전 없이 잉여로운 하루를 보냈구나’라며 자책하는 게 아닌,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잉여로울 수 있었구나’라는 안도감이랄까. 이건 아마 전문 잉여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이러한 나의 취미는 결과적으로 몸과 마음을 쉬게 하여, 일상을 살아가게 할 힘이 되어준다. 문제는 하루 중 대부분을 취미생활로 채우고 있다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