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겠다고 손들고 싶은 날

터널을 지나는 마음

by 몽돌

집 근처에 작은 터널이 있다. 중간에 차가 지나는 도로가 있고 가장자리에 좁은 보도가 있는 터널이다. 출근할 때면 그 터널을 7시 40분쯤 혼자 지나게 되는데, 늘 그 시간에 내 반대편 보도에서 걸어오는 할머니 한 분을 마주친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분홍색 조끼를 입은 할머니다. 그분을 어떻게 아냐면 그분이 항상 터널 초입에 들어올 때쯤 두 손을 어깨 부근까지 들고 "주여-----"를 외치기 때문이다.


주여------

주으여----------

주여----------------


할머니는 꼭 세 번 주여를 외치는데 그 세 번엔 나름의 리듬이 있다. 두 번째 주여는 첫 번째보다 더 곡진하고 꾹꾹 누른 감정이 담겨 있다. 세 번째 주여는 한번 감정을 쏟은 탓인지 좀 더 둥글고 온건하다. 할머니의 마지막 주여- 가 터널을 따라 크고 넓게 퍼지는 것을 뒤로하고 나는 지하철을 향해 걷는다.


이번 주 출근길엔 평소보다 십 분 정도 늦게 집을 나섰다. 다행히 할머니도 좀 늦게 나오셨는지 터널에서 주여 할머니를 마주칠 수 있었다. 나는 내심 기대했다. 아 주여 할머니다, 또 주여- 하시려나? 그런데 평소와 달리 7시 50분의 터널에는 두세 명의 출근길 직장인이 더 있었다. 할머니는 터널 초입에서 사람 수를 헤아리며 조금 망설이는 듯 싶더니, 그날은 주여-를 하지 않고 그냥 걸어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건너편 보도에서 속으로 외쳤다. 할머니, 왜 오늘은 주여 안 해요! 왜 이 사람들 눈치 보시는 거예요? 지금 이 사람들 다 속으로 얼마나 주여--- 하고 싶은 사람들인 줄 알아요? 다 할머니한테 공감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하셔도 되는데!!


끝내 주여-를 외치지 않고 표표히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터널을 통과해 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날은 내가 주여---를 외치고 싶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신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고 싶은 날이 있다. 이제 제 앞가림하는 어른이라고 내심 자랑스러워하며 살다가도, 어떤 날은 길 가다 엎어져 우는 애처럼 엉엉 울고 싶어진다. 나에겐 이번 주가 그랬다. 울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멀쩡한 얼굴을 한 채 집과 회사를 오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눗셈을 못해서 불려 간 적이 있다. 덧셈과 뺄셈, 곱셈까지는 어렵지 않게 했는데, 나눗셈은 정말 전과 다른 세계 같았다. 나눈… 다고? 나는 도무지 그 ‘나눈다’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가 가지 않은 채 수업을 따라가다 보니 뒷 단원부터는 아예 문제를 풀지 못했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귀하의 자녀가 나눗셈을 못 한다고 쪽지를 보냈다. 엄마는 그 쪽지를 보고 기가 찼다고 한다. 왜냐하면 엄마가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남의 애들 가르친다고 자기 애는 나눗셈도 못하는 걸 방치하고 있었구나. 엄마는 비장하게 교과서와 문제집을 세팅해 두고 나를 불렀다. 내가 기본적인 문제도 못 풀자 엄마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진짜 모르겠어요. 나는 나눗셈 못하겠어요.

엄마 그냥 나를 포기하세요. 나는 못하겠어요.




열 살의 나는 나눗셈 앞에서 엉엉 울었지만 이제 나는 나눗셈쯤은 아무렇지 않게 풀어내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인생은 이제 나눗셈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를 낸다. 3학년 과제 정도는 이제 할만하다 싶으면 4학년 과제가 나오고 또 적응될만 하면 5학년 과제가 온다. 고민 1은 고민 2가 되고, 고통 1은 고통 2로 진화할 뿐 결코 사라지진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 과정을 받아들이는 게 어른일 텐데, 가끔 어른 노릇할 힘이 딸리는 날이 있다. 몇 개 안 되는 공이지만 열심히 저글링을 하면서 버티는데 가끔은 그 공이 쇠로 만든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이걸 다 놓치지 않고 버티는 게 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묘기 같다.


그럴 땐 나눗셈 못하겠다고 엄마 앞에서 울던 열 살의 나 같은 심정이 된다. 엉엉 울면서 못하겠다고 손들고 싶다. 어른스럽게 꼭 잡고 있던 패들을 다 까서 보여주면서 사실은 이게 다 뭔지 잘 모르겠다고, 다 내려놓고 싶다고 고백하고 싶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은 그래서는 안되므로 울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말짱한 척 살아갈 뿐이다.


나보다 더 많은 공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을 곁눈질해 본다. 세상 강해 보이는 저들도 사실은 이런 마음을 안고 버티는 걸까? 워킹맘, 워킹대디. 팀장들. 임원들.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들, 잘 나가는 사업가들. 저 사람들도 '저 진짜 못하겠어요' 하고 손들고 싶은 날이 있을까?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그날 엄마가 나에게 어떻게 나눗셈을 가르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고작 나눗셈 앞에서 나를 포기하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열 살 딸내미 앞에서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상상해 본다.


못하겠다고 엉엉 우는 아이 같은 내 마음, 엎어진 게 창피하다며 주저앉은 내 마음 앞에서 나는 그날의 엄마 마음이 되어 나에게 말을 건다.


괜찮아,

지금은 어렵고 막막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별 거 아닐 거야.

지금은 힘들어도 곧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거야.

내년 이맘때가 되면 왜 지금 그렇게 힘들었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을 거야.


차근차근 해 나가면 할 수 있어.

너는 잘할 거야.

잘 해낼 수 있어.


정 못 견디겠는 날엔, 터널로 가서 누구 이름이라도 목놓아 부르면 되는 거야.





다음번에 주여 할머니를 터널에서 만난다면, 그녀가 터널에 사람이 얼마나 있든 상관없이 주여---를 크게 외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속에 든 말을 삼키며 괜찮은 척하는 누구보다, 목놓아 누군가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 주여---를 외치는 할머니를 보면 나도 속에 든 말을 그게 얼마나 크게 울리든 꺼내놓아 보고 싶어진다.


그러니 막막한 터널을 지날 때는 속마음을 소리내어 말하자. 자기검열 없이 소리높여 도움을 구하자. 그러다보면 또 언제 힘들었나 싶게 한 고비를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눗셈에 울었던 열 살의 기억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추억하듯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스로를 귀하게 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