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별 다름없는 퇴근길이었다. 퇴근버스 한 구석을 찾아 지친 몸을 앉히고침을 흘리면서 잤다. 마스크가 가려줘서 다행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방송을 듣고 잠이 덜 깬 상태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집에 와서야 깨달았다.
에어팟 프로를 잃어버렸다.
아마도 버스 좌석 사이에 흘린 모양이었다. 나는 간절히 시간을 되돌려 아까의 그 버스 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그 비싼 거를, 얼마 들어보지도 못하고...
에어팟 프로는 올해 큰 맘먹고 구매한 고가의 전자제품이었다. 누가 “세상에 나와 32만 원만 남겨진 기분”이라던 노이즈 캔슬링 기능에 눈이 멀어 질렀다. 이어폰에는 새벽 줄을 서가면서 구매한(현재는 품절인) 스타벅스-BTS 콜라보 MD, 보라색 테슬 키링까지 달려 있었다. 이어폰 케이스도 일부러 테슬 색에 맞춰서 샀다. 그러니 에어팟프로를 잃어버린 건 단순히 이어폰만 잃어버린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롱한 BTS 테슬 키링. 손바닥만한 크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버스에 두고 내렸다면 그걸 다시 찾을 가망은 없을 듯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휴대폰이나 지갑도 아니고, 누구라도 부담 없이(?) 주워서 쓸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부주의함을 탓하고 또 탓했다.
“이제 다시 못 찾겠지? 그걸 누가 돌려주겠어… 나 같아도 탐나지… 나 같아도 그냥 주워다 쓰지…"
다행히 다음날 우여곡절 끝에 버스 기사님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잃어버린 에어팟 프로님의 인상착의(?)를 설명하자 기사님이 하신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아, 그 보라색 술 달린 거?”
기사님은 청소를 하다가 발견했다며 물건을 보관 중이라고 하셨다.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휴대폰에 큰절 또 큰절을 했다. 부리나케 기사님이 물건을 맡겨둔 곳으로 달려갔다. 여름 햇살에 뜨근하게 달궈진 에어팟프로(and 키링)님과 다시 상봉하며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를 느꼈다.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에어팟 프로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어떻게 그 커다란 술이 달린 이어폰을 잃어버릴 수 있냐고 낄낄거리며 말했다.
“근데...사실 네 이어폰은 길에서 주워도 절대 그냥 쓸 수가 없게 생겼어ㅋㅋㅋ”
이어폰보다 더 큰 테슬 장식과 그 테슬에 깔맞춤한 케이스 덕분에, 누가 봐도 주인이 이 물건을 심상찮게 아낀다는 인상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주워다 쓰더라도 마음이 심히 불편할 것 같고 최악의 경우는 주인에게 보복(?)이라도 당할 것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친구는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여행 중에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는 몇 해전 차를 빌려 여행을 하던 중, 주차 과정에서 옆자리 차를 약간 긁게 되었다고 했다. 아주 작은 기스였기 때문에 친구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문제가 되면 보험처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연락처를 옆 차 유리창에 놓고 가려는 순간, 친구는 차 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차 안은 온갖 종류의 인형과 피규어들로 아기자기하게 채워져 있었다. 물건이 많으면 대개 정신사납기 마련인데, 차 내부는 일관된 세계관을 가진 것처럼 깔끔하고 질서가 있었다. 주인이 탔다 내린 자리도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보통 이러기 쉽지 않은데) 내부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고가의 차는 아니었지만 방금 세차를 한 것마냥 윤기가 반지르르하니 아주 잘 관리된 차였다.
친구는 차 내부를 본 뒤에 괜한 미안함과 불안감이 생겼다고 했다. 보통의 차였더라면 “에이 그냥 기스 조금 난 거, 보상하지 뭐.”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차 주인은 자기 차를 반려동물처럼 아끼는 것 같았고 차에 난 아주 작은 흠집도 자기 몸에 난 상처처럼 여길 것 같았다.
친구는 그날 제발 저린 도둑처럼 차 주인에게 장문의 문자로 연락처를 남겼다. 친구는 그날 ‘차량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남들이 자기 차를 우습게 여기지 않게 하려면 무조건 비싼 외제차를 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차를 잘 관리하고 꾸미는 것만으로도 남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끝낸 친구는 에어팟프로를 무사히 찾은 기념으로 저녁을 쏘라고 했다. 아직 살 만한 세상에 감사하면서, 나는 저항하지 않고 카드를 긁었다.
친구와 헤어져 집에 오는 길, 다시 만난 에어팟프로님을 귀에 꼽았다. 오랜만에 '세상에 나와 32만 원만 있는 기분'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남들이 뭔가를 함부로 여기지 못하게 하려면, 나부터 그걸 아주 소중히 대해야 하는구나.
내가 소중히 대하지 않는 것은 남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구나.
이건 백화점에서 얕보이지 않으려면 제일 비싼 옷을 입고 가야 한다던가, 도로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비싼 외제차를 사야 한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결의 말이었다.
그건 예전에 마크로비오틱 요리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들은 말과 비슷했다.
“혼자서 밥을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담아서 먹으세요. 자기가 자기를 귀하게 대접하지 않으면 남들도 자신을 귀하게 대접하지 않아요. 내가 나를 귀하게 대해야 남도 나를 귀하게 대합니다.”
더 이상 수업을 듣지 않는 지금도 그 말만은 머리에 남아서, 혼자서 대충 냄비채 밥을 말아먹으려다가도 다시 주섬주섬 국그릇, 밥그릇을 꺼내게 된다. 그렇게 구색을 갖춘 한 상을 차려 먹고 나면, 굽었던 척추가 펴진 것처럼 조금 더 당당해진 기분이 든다. 내가 나를 잘 대접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과 뿌듯함의 힘은 크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풍기는 기운이 있다. 사람들은 귀신같이 그 기운을 알아본다. 누울 자리 보고 뻗는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자기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쉽게 상처를 낸다. 그렇다면남에게 존중받기 위해 필요한 건 번듯한 지위나 능력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먼저 자기 자신을 아끼는 것, 그래서 스스로 귀해지는 것이다.
나는 그럼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남들도 그걸 알아챌 만큼 스스로를 잘 돌보고 가꾸며 살고 있는지돌아보게 된다. 이어폰을 끼고 외부의 소음과 차단된 속에서 내 마음에 떠오르는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인다.
이번 주는 혼자 먹을 때에도 국과 반찬을 제대로 갖춘 밥상을 차려먹어야지. 우울한 요일엔 가장 좋아하는 옷을 차려입고 출근할것이다. 눈치보지 않고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퇴근할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을 늘려나갈 것이다. 다시 찾은 보라색 테슬을 쓰다듬으며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