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 마음

우리가 영혼과 시간을 분리할 수 있다면

by 몽돌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에는 냉동 수면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 안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의 배경은 인류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도 거주하는 시대다.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도착하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탑승객을 냉동 수면 상태에서 재우는 기술이 필요하다.

안나의 가족들은 다른 행성인 슬렌포니아에 산다. 안나는 언젠가 이 긴 연구를 마무리짓고 슬렌포니아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안나가 연구에 몰두하는 사이, 슬렌포니아 행성은 더 이상 사람을 보낼 필요가 없는 ‘먼 우주’ 행성으로 분류되어 교통편이 하나 둘 끊기게 된다.

안나가 10년에 걸친 냉동 수면 기술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날, 비서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온다. 슬렌포니아행 우주선은 내일이 마지막 출항이라고. 안나는 자신을 기다리는 수천명의 청중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예정대로 학회 발표에 참석하기로 한다. 최대한 빨리 발표를 마무리하고 우주 정거장으로 가기로.


발표 당일, 그녀는 계획한 대로 발표를 빨리 마쳤다. 하지만 많은 취재진들이 그녀를 붙잡는 바람에 그녀는 슬렌포니아행 마지막 우주선에 결국 탑승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된 안나는 그날을 계속해서 회고한다.





이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안나가 우주 정거장이 아니라 발표 장소로 향하는 부분이었다. 취재진의 질문을 외면할 수 없어 시간이 계속 지체되는 장면도 마음에 남았다. 왜 그랬을까?어쩌면 가족을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는데도 맡은 발표를 마무리하기로 한 것은, 어떻게든 시간 내에 맞춰볼 수 있을 거라는 낙관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연구에 대한 애정 내지 책임감이 가장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안나의 연구처럼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이나 직장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순순히 네, 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때론 그런 순간이 있다.

저녁 약속이 있어 얼른 퇴근을 해야 하는데도 괜히 메일의 한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는 순간. 회사에서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오후의 보고를 준비하는 순간. 어제 못 마친 일이 마음에 걸려서 괜히 회사에 조금 일찍 오게 되는 순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 순간들에 대해 말하는 걸 좀 창피해하는 편이다. 아니 이 무슨 부질없는 노력이야. 내가 무슨 임원도 아니고, 팀장도 아닌데. 내가 이러는 걸 내 상사가 알아주지도 않을 텐데. 내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딱 돈 받은 만큼만 일하고 그 이상의 마음은 조금도 쓰지 않는 쿨한 노동자가 되고 싶다.

그렇지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일이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남기고 가는 자국이 있다. 이건 내 일이 아니고 회사 일이라고 딱 잘라내 버리기가 어려운 자국이다. 계속 그 자국에 마음을 주게 된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내심 반가웠다.

친구는 말했다.

“요새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는데, 그것 때문에 새벽에 깨서 잠을 잘 못 자. 다시 자려고 하다가도 아, 출근해서 이거 좀 더 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 눈이 반짝 떠진다?

아 진짜 미치겠어! 아니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내가 뭐 임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런다고 팀장이 내가 밤에 잠 못자는 거 알고 고과를 더 챙겨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말했다.
“되게 잘하고 싶나보네."

그녀가 다크서클이 내려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하고 싶나 봐.”

자신의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진저리를 치는 친구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소설 속의 안나를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그 잘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잘 못해도 돼, 가 아니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욕 먹어도 괜찮아, 가 아니라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에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 가능하면 훌륭하게 해 내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그래봤자 회사 일일 뿐이야, 가 아니라
어쨌거나 주 40시간 이상 부비고 앉아있는 이 곳에 대해
마냥 초연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해서 말이다.



한참 회사 일로 괴로워할 때가 있었다.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이 ‘내 일’이지만 사실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선배가 이렇게 조언했다.


"회사에는 시간을 파는 거지 영혼을 파는 게 아니래.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 거야."


그 말이 백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묻고 싶었다.


그치만 그게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되나요?

시간을 쏟는데 어떻게 영혼이 안 들어갈 수 있죠?


<베니스의 상인>에서 판사로 분장한 포샤는 계약에 따라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요구하는 샤일록에게 판결을 내린다. 안토니오의 살은 가져가도 좋지만, 살을 베어낼 때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피 없는 살이 어디 있을까.

살은 원래 피를 포함하는 것이다.

하루 최소 8시간, 주 최소 40시간의 시간을 들이는 곳에, 어떻게 영혼이 1 그램도 들어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 돈 받는 만큼만 일하자고 주문을 외워도 어쩔 수 없이 몇 그램의 영혼은 들어가 버리고 만다.

몸이 머무는 곳에 마음도 기웃거린다. 우리의 영혼은 주말뿐 아니라 주중에도 행복하고 온전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돈만 받으면 될 직장에서 온갖 희로애락까지 같이 얻어 온다.





일이란 건 뭘까?

일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노동은 어느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는 게 맞을까?


여전히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그날 나는 친구의 피곤한 얼굴을 보면서, 그녀가 밤에 잠을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애씀이 어떤 식으로든 – 보람이든, 평가든, 돈이든 -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머리는 일은 일일 뿐이라고 한다. 마음은 촌스럽게도 일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그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까지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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