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냈다, 회사엔 말하지 않았다

이중생활의 시작

by 몽돌

책을 냈다. 독립출판물로 한 권, 그리고 그 책을 다시 다듬어 정식 출판한 책 한 권.

회사 팀 사람들은 모른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모른다.





#1.

처음 독립출판물을 내기 전, 그러니까 아직 원고도 다 완성하지 못했을 시점에, 문득 회사의 겸업금지 규정이 생각났다. 책 한 권 냈다가 겸업금지 위반으로 회사를 짤리면 어떡하나, 인쇄비도 내야 하는데, 하는 소심한 마음으로 회사 인사팀에 문의했다.


“휴직할 때 쓰신 글을 출판하신다고요?”

“네. 백 부, 이백 부 정도, 소규모로 독립출판하려고 합니다. 규정에 위반이 될까요?”

“그럼 근무 중에 작업을 하신 것도 아닐 거고,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판매 수익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업무 외에 얻은 수익은 가급적 기부를 권해드리고 있습니다.”

“아 넵… (아마 수익이 안 날 것 같은데, 라는 말을 삼키고) 수익이 나면 기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에세이라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저희가 집필 내용에 회사 기밀이 포함되진 않았는지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네? 전부요? 그럼 내용을 어떻게 전달드리면 될까요?”


당시만 해도 회사를 다니며 유튜브를 하는 등 겸업의 사례가 많지 않았고, 에세이 독립출판은 선례가 없는 일이었다. 담당자는 사려깊게 고민 후 아무래도 저작권도 있고 하니, 워드 파일보다는 인쇄본 하드카피를 한 부 주시면 내용을 확인해 보겠노라 했다. 나는 부랴부랴 완성되지도 않은 원고를 충무로 인쇄소에 가서 한 부 뽑았다. 급조한 제목 <회사를 일 년간 쉴 거야>가 붙은 두툼한 인쇄본을 담당자에게 전달하며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일기장을 회사에 제출하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약 이주 후, 담당자는 아무 문제없다는 내부 검토 결과를 전하며 하드카피를 돌려주었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찰나, 담당자는 또다시 사려깊게 덧붙였다.

“글을 참 재밌게 잘 쓰시더라고요. 잘 읽었습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나는 인쇄본을 받고 말 그대로 도망치듯이 자리를 떴다.


일단 내가 아는 한, 그가 회사 내 나의 유일한 독자다.





#2.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을 하고 난 뒤에도, 나는 책을 냈다는 걸 같이 일하는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심 걱정했다. 책이 너무 잘 팔려서 모두가 내 책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 막 신문기사에 나오고 이러면 어떡하지? 아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괜한 걱정과 기대로 들뜨지 않았을 텐데.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이를 닦는 중이었다. 여자화장실 칸은 반 이상 차 있었다. 유일하게 출간 소식을 알고 있는 동기가 부지런히 칫솔질을 하다 물로 입을 헹구고는 큰 소리로 해맑게 물었다.

"요즘 어때? 책은 잘 팔려?"

양칫물을 다 뱉어내지도 못한 채 나는 바로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쉿, 신호를 보냈다. 동기가 깜짝 놀라며 아 맞다, 미안, 이라고 했지만 나는 계속 화장실 칸에 들어간 사람 수를 살피게 되었다.





#3

회사에 알리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고 싶어서다. 생계형 직장인인 나와 글을 쓰는 나. 전자는 어쩔 수 없이 퍼블릭한 공간에 속해 있지만, 후자는 가능한 한 자유로운 공간에 두고 싶다. 후자가 전자에게 발각되는 것은 오랜시간 정성들여 가꾼 화단이 옆집 셰퍼드에게 짓밟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 글감은 대부분 회사를 다니는 삶에서 나온다. 그 글을 회사 사람이 알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검열하며 글을 쓰게 될 것 같아 두렵다. 사실 사람들은 남이 무얼 하든 크게 관심이 없단 걸 안다. 그럼에도 괜히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더하는 가벼운 말들에 눌려 위축되는 것이 싫다. 내가 피하고 싶은 건 이를테면 이런 말들이다.


"00팀 000이 이번에 책 냈대ㅋㅋㅋ 어 제목이 그렇다더라 ㅎㅎ 그래 요새 이상하게 퇴근을 빨리 하더라구. 나도 걔처럼 빨리 퇴근하면 책 한 권 썼지~"

"여어 김 부장~ 자기네 팀에 작가님 있다며? 아 책 한 권 냈으면 작가님이지~ 아니 자기는 팀원이 책 낼 때까지 몰랐던 거야 그럼?"

"그럼 이번 워드 보고서는 작가님이 한번 작성 부탁해! 언어의 마술사, 응? 잘할 수 있지?”





#4.

그래서 출간 계약을 하러 가는 날, 반차 사유를 묻는 부장님께 이렇게 얼버무렸다.

"제가 오늘… 중요한 계약을 하러 가야 해서요!"

"오늘 부동산 계약해? 전세?"

"넵… 제가 직접 가야 한대요!"


책 출간 후 소모임에서 연사로 발표를 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회사에 '옷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한 나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오늘 어디 피티하러 가? 딴 데 면접 보러 가는 거 아니야?"

"아, 오늘 외부 모임에서 발표할 게 있어서요! ...스터디 같은 거요!"

"아 그래, 퇴근 후에도 참 열심히 사네."

"아 넵... 열심히 살아야죠!(책 팔려면...)"





#5

출판사에서만 ‘작가님’으로 불릴 뿐, 회사에서의 글쓰기는 여전히, 항상, 매일 어렵다. 제목만 겨우 써 놓은 백지의 판매전략 보고서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는다.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만 쓴 채 ‘임시 보관함’에 숨어버린 메일을 다시 소환하며 한숨을 쉰다. 몇 분째 아무것도 쓰지 못할 때는 아무도 모르는 내 책의 존재를 부적처럼 꺼내 보곤 한다. 그래, 책 한 권도 써 봤는데 이게 뭐라고.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이걸 쓰고 집에 갈 수 있다!


"그러니까 현재 팬데믹 상황에서 매출이 땡땡 프로 감소했는데, 4분기에는 시장 상황이 땡땡 프로 괜찮아진다 가정했을 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만든 나의 보고서와 메일이 한 번에 ‘독자'(상사)들의 마음에 드는 경우는 드물다. 회사는 함께 일하는 곳이므로, 여러 '독자'(님)의 피드백과 수정을 거쳐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독자’(님)에게 잘 읽히는 보고서를 쓰는 것, 그가 납득할 만한 ‘스토리’를 만드는 것, 보고서의 한정된 칸 내에서 일당백을 할 수 있는 신묘한 ‘워딩’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두괄식 보고’와 ‘회사어’를 쓸 때마다 외국어를 발음하는 사람처럼 긴장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에세이를 쓰는 것과 회사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책을 냈다고, 지금도 계속 글을 쓴다고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건 이 회사를 떠나는 그 날까지 비밀로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그때까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외줄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매일 호흡을 가다듬는다. 바로 서기 위해 배에 힘이 딱 들어가는 이 기분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