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위 쓰지 않아도 좋지만

그래도 계속 쓰는 용기

by 몽돌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유튜버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유명 유튜버가 방송 하나 올리면 조회수가 몇십만 뷰인데 연수입이 얼마다, 라는 말이 성실한 월급쟁이들의 마음에 파란을 일으켰다. 점심 메뉴인 순두부찌개 앞에서 사람들은 ‘넘사벽’ 유튜버들의 세계를 부러워하고 매일 상사에게 봉사하며 정액제 월급을 받는 처지를 한탄했다.


- 모 팀의 누구는 브이로그 한대. 벌써 협찬도 들어오고 수익이 제법 난다더라. 인사팀 허락도 받았대.

- 아, 나도 회사 그만두고 유튜브나 해야 하나.


나는 같이 맞장구치며 웃었지만 맘 속에 약간 불편한 감정이 일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사무실로 올라오며 생각해보니 내가 그 자리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그 돈, 엄청 자기 노출하면서 버는 거예요.

정말로 자기를 팔아가면서 버는 거예요.




사람들은 창작이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큰 공수 들이지 않고 고상하게, 그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했을 뿐인데 돈과 인기가 뚝딱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쉽게 만들어지는 창작물이 있을까?


구독자가 몇십 명도 안 되는 '노잼' 브이로그라도, 유튜버는 그 몇 분짜리 영상을 직접 기획하고 편집하느라 허리가 휜다. 서점가에 놓인 에세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요즘은 몇 줄 안 적힌 힐링 에세이로 돈 번다고 쉽게 말하지만 막상 작가와 편집자는 진부한 책을 내지 않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고민한다.


기획과 제작에 노력이 들어가는 것 외에도 모든 창작은 어느 정도 자기 노출을 감수해야 한다. 창작물을 공유하는 순간 대중 앞에 벌거벗은 기분으로 서게 된다. 유튜버는 자기 얼굴과 목소리를 공개하고 작가는 오래전 상처와 실패담까지 갈아 넣어 에세이 한 편, 소설 한 편을 쓴다. 모든 창작에는 엄청난 공수와 큰 용기가 들어간다.


그날 빨간 순두부찌개 앞에서 내가 하려다 못했던 말은 결국 이거였던 것 같다. 사무실에서 임원이 던지는 서류를 피해 가면서 버는 돈도 힘들게 버는 돈이지만, 만인 앞에서 자기의 일상을 보여주며 버는 돈도 무겁고 무서운 돈이라고.






브레네 브라운은 넷플릭스 다큐 <나를 바꾸는 용기>에서 취약함(Vulnerability)을 이렇게 정의했다.


Vulnerability's not about winning. It's not about losing. It's having the courage to show up when you can't control the outcome.


'취약함은 결과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드러내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나는 그걸 보고 외쳤다. 아니 이거, 딱 글쓰기잖아?


첫 문단을 쓸 때 마지막 문단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다. 계속 질문을 던지는데도 답은 보이지 않고, 쓰면 쓸수록 이상하게 길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글을 다 쓰고 났을 때 어떤 결론이 있을지, 이 글을 쓴 후의 내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내 글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내 통제 밖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매번 취약해진다. 벌거벗은 기분이 된다.


그런데도 매번 벌거벗으려 하다니.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된다.


회사를 다니며 글을 쓰는 건 직장인의 고질병인 거북목과 굽은 어깨를 악화시키는 일이다. 돈은 안 나오면서 시간만 무지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글 쓸 시간에 이력서를 고쳤더라면… 차라리 다른 부업을 했더라면… 아니 영어공부를... 하고 실리를 따지게 되면 끝이 없다. 글만 안 쓰면 매일 버스 갈아타며 다니다 갑자기 택시 타게 된 사람처럼 시간이 많아지고 몸이 편해지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대체 왜 쓰려고 하는 걸까? 퇴근 후 스타벅스에 들어가 비싸기만 한 말라비틀어진 샌드위치를 사서 블루투스 키보드 앞에 앉으면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날은 퇴근길 버스 안에서 한 줄을 썼다.

'퇴근길 살랑살랑 여름 바람이 불었다.'


다시 떠올려 보니 여름 바람은 살랑살랑 불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열기 가운데, 코를 박고 킁킁거려야

맡을 수 있는 오래전에 뿌린 향수 냄새처럼 아주 민감해야 느낄 수 있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날 오랜 시간을 끌던 보고 하나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후련한 마음으로 퇴근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힘차게 퇴근 버스를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 바람은 내가 만든 바람이었다. 이제 집에 가서 뭐하고 놀지, 하는 기대감이 섞여 있는 여름밤의 바람이었다.


그 문장을 다시 다듬으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감각으로 섬세하게 세상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뜻이구나. 남들의 문장을 복제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내 문장을 발견하고 싶다는 것이구나.


글쓰기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상황이 시키는 대로 마냥 닯아가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에 가까웠다. 야근을 하고 돌아와서도 꼭 스트레칭을 한다거나, 욕을 먹는 순간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달래는 일, 불편한 자리에서 술을 잔뜩 먹고 들어온 다음날 신선한 야채를 챙겨 먹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은 사실 잘 살고 싶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끙끙거리면서도 계속 글을 올리고 피드백을 갈구하는 것 또한 진짜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누구의 딸, 무슨 학교 출신, 어느 팀 누구 대리, 라는 역할과 명함에 가려진 내가 아니라 진짜 나를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못 이기고 오늘도 나는 내 글을 내 손이 닿지 않는 공간으로 흘려보낸다. 마치 유리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로 던지는 사람처럼, 반대편 해변의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매일 잘 살진 못해도 매일 뭔가를 쓴다. 매번 벌거벗은 기분이 들지만 눈을 질끈 감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 순간, 나는 가장 취약한 사람이자 가장 용기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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