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쓰지 않은 한 달

열심히 쓰지 않겠단 다짐

by 몽돌

이번 달은 한 달간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왜 안 썼지? 변명을 하자면 첫 주는 야근이 많았다. 매일 눈이 빠져라 모니터만 쳐다보다가 집에 오면 바로 씻고 잤다. 주말엔 주중에 못 잔 잠을 몰아서 잤다. 그렇게 한 주를 안 써 보니, 안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쉬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두 번째 주에는 그래도 뭐라도 써 보려고 했다. 회사를 그렇게 늦게 마쳤던 것도 아닌데, 집에 오면 글을 쓰기가 싫었다. 하루의 의지력을 회사에 다 쏟아서인지 집에 오면 글을 쓸 의지력까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퇴근 후 소파에 따개비처럼 붙어 야금야금 한 편, 두 편씩 보는 넷플릭스는 어쩜 그렇게 재미있던지. 그렇게 두 번째 주가 지나가고, 세 번째 주가 지나가고...


아무것도 안 쓴 날이 길어지자 안 쓰는 게 습관이 되었다.


고백하자면 그 시간들이 즐겁지 않았다. 마음속 한 구석에 방학 일기를 한 달째 미룬 아이처럼 갑갑함이 따라다녔다. 안 쓴 날들만큼 부담감의 눈 뭉치가 구르고 굴러 커져 거대한 빙산이 되었다. "가볍게 조금이라도 써 보면 어때?"라고 묻는 마음 속 사람에게 나는 볼맨 소리를 하는 아이가 되어 소리쳤다.

"아니, 나도 회사 다니느라 바쁘고 힘든데 어떻게 써?"

나는 마음의 눈 뭉치를 주워 던지며 씩씩거렸다.

"그리고 뭐, 꼭 써야 돼?"


사실 나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 쓴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없다는 건 변명이었을 뿐 사실은 내가 글쓰기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왜냐면 솔직히, 글쓰기는 매번 힘들기 때문이다... 첫 문장을 시작해서 마무리 문장까지 가는 것은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처럼 의지력이 필요하다. 잘 쓰려는 마음에 몸을 잔뜩 긴장한 채 질주하는 것은 힘들다. 마라톤은 옆에서 누가 같이 뛰기라도 하지, 이건 혼자서 고독하게 뛰는 길이다. 누가 박수쳐 주지도 않는다. 내가 마무리짓지 못했다는 것은 나만 안다.





완주할 체력이 딸리는 마라토너는 돈을 써 보기로 한다. 다시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결제했다. 첫 시간에 나는 한 달만에 글 한 편을 써서 제출했다. 주말의 폭식을 참회하는 월요일 다이어터의 심정이었다. 오랜만에 쓴 글은 어색했다. 첫 문단, 두 번째 문단, 마지막 문단이 모두 다른 박자로 춤을 추는 아이돌 연습생 그룹 같았다.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엄격한 심사위원 같은 표정을 지어보다가, 마감 직전에 그냥 냈다. 일단 털고 앞으로 나가는 게 중요했다.


일주일 뒤 출근길 지하철에서 첨삭 메일을 열었다.


충분하고 성실한 과제입니다.

꾸준히 이렇게 하면 크게 성장할 거예요.

빨리 더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이 글쓰기를 중단하게 만드는 것을 자주 봐요.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꺾어지는 건데요 느슨하고 규칙적으로 쓰는 게 중요해요.

천천히, 꾸준히 나아갑시다.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꺾어진다는 말에 시선이 머물렀다. 어린 시절 미술학원에 다닐 때 선생님이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수채화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어떻게 칠할지 고민하며 붓을 종이에 대질 못하는 나에게, 뒤에 선 미술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고~ 니는 너무 잘 그리려고 해서 문제다. 잘 그리려고 하면 그림 못 그린다. 그냥 망쳐도 되니까 그냥 확 그리삐야 된다."


그냥 확 그리삐야 된다, 라는 말에 나는 붓을 종이에 대고 채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그림을 잘 그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초등학생이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뭐 그렇게 중요했을까. 나는 그날 출근길 첨삭지의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흰 캔버스에 내가 원하는 색을 칠한 붓을 갖다 대어 아무렇게나 휙, 휙, 그림을 그리는 상상을 했다. 못해도 된다. 망쳐도 된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오히려 자주 안 하게 된다. 갑자기 외국인을 만났을 때,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조잘조잘 말을 하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은 맞는 어휘를 생각하느라 입을 다문다. 잘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은 하지 않지만) 생각한다. '다음엔 더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열심히 하지 않는 내가 보기 싫어 점점 더 안 하게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에서 멀어져 간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스타그램에 가끔 그림을 그려 올리는 친구가 있다. 오래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만으로는 돈이 벌리지 않아서 회사를 다니는 친구다. 그녀는 가끔, 그녀의 말로는 '땡길 때' 그림을 그려 올린다. 바쁘면 몇 달씩 쉬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올린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그렇게 몇 년간 띄엄띄엄 올린 반려묘, 친구의 아기, 식물 그림이 가득하다. 요즘 글쓰기가 어렵다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하기 싫을 때는 안 해도 된다. 그러다 보면 또 하고 싶은 날이 온다."


그 말을 나 자신에게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꼭 열심히 안 해도 되고,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고. 꼭 잘 할 필요도 없고 느슨하게 계속하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나를 격려해 주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마라톤 완주하듯이 괴롭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동네 산책하듯이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틈틈이, 사부작 사부작,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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