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감의 바다로 출근
하지만 퇴근하면 한 줄도 못 쓰는 날들
법륜스님 즉문즉설 유튜브에서 동화작가가 꿈인데 생계를 위해 회사에 취직을 한 사람의 사연을 접하게 되었다. 질문자는 밥벌이를 위해 매일 기사, 논설문 위주의 글을 쓰다 보니 점점 예전처럼 동화를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말했다.
“하루 종일 딱딱한 글만 쓰다가 집에 오면 노트북을 켜는 것조차 힘이 들어요.”
법륜스님은 질문자를 엄히 꾸짖었다.
“글은 그렇게 억지로 쓰면 안 돼. 글은, 안 쓰면 못 배겨가지고 돈을 내고라도 쓰고 싶은 거야. 그리 억지로 쥐어짜서 글을 만들면 자기도 재미없는 글에 누가 감동하겠어요?"
나는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도, 그날은 괜히 반감이 들었다. 질문자의 상황과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회사 일에 시달리다 퇴근하면 다시 창작의 세계로 입수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 생활에 치중하다 보니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없게 된 자신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허한 일인지, 다시 백지 앞에 나를 앉히는 데에 얼마나 큰 의지력이 필요한지도 안다. 그렇게 매일의 예정된 실패를 겪으며 자신을 채근하다 보면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가 점점 나를 후려치는 채찍질로 변해 간다는 것도.
못 쓰면 갑갑해서 도저히 잠을 못 잘 것 같은 글을, 자연스럽게 우러나서 쓰면 좋지. 하지만 그것도 생활에 여유가 있고 체력과 정신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일회용 인공눈물을 몇 통씩 까서 쓰면서 엑셀의 행과 열 사이를 헤맨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업무 요청 속에서 감정노동을 하고 최대한 무뎌지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다 퇴근해 집에 오면 노트북을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간절하지 못해서일까? 이런 상황에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들고 마감 한 시간이 남은 스타벅스에 가서 디카페인 커피를 들이부으며 글을 쓰려고 하는 나는 ‘억지로 글을 쥐어짜는’ 사람인 걸까.
갑자기 일평생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변신> 등을 썼다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에게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그의 주당 근무시간은 몇 시간쯤 되었을지, 출퇴근 시간은 얼마나 걸렸을지, 가사노동은 직접 하면서 살았는지가 궁금해진다. 혹시 그거 다, 유럽 표준 근무시간이어서 가능했던 거 아니야? 하루 6시간만 근무하고 상사 눈치 안 보고 ‘칼퇴’해서 가능했던 거 아니냐고!
사실 나는 내 말의 모순을 안다. 글을 못 쓰는 이유가 회사 일로 지쳐서 그런 거라면 회사를 안 가는 주말에는 글이 줄줄 잘 써져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고백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회사를 안 가면 글도 별로 안 쓰고 싶어진다. 주말엔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괴로운 월요일 출근길만 되면 글쓰고 싶은 마음이 몽실몽실 솟아난다. 장마철 출근길에 벤치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는 강아지, 출근버스에서 사람들이 짓는 표정, 회사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말투와 걸음걸이, 잠깐 미팅이 있어 밖에 나갔을 때 보이는 눈부시게 파란 하늘까지 전부 다. 회사를 다니면 만나는 모든 것들이 글쓰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사실 주말의 평온과 유유자적이 아니라 주중의 복작거림과 갈등과 피로에서 나오는 걸까?
횟감용 물고기를 옮기면서 수조 안에 천적 물고기를 넣어 놓았더니, 횟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물고기가 살아있더라… 라는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나에게 있어 회사는 그 천적 물고기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회사라는 거대한 천적에 잡아먹히지 않고 바싹 살아있어야 하는 월화수목금에는 글쓰기 세포가 더 민감해지고 활발해진다. 쓰고 싶은 것들이 늘어난다. 물론 그 글을 끝까지 붙들고 써내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조직에 속해 일정한 시간표 속에서 시키는 일을 수행하며 점점 둔해지는 감각이 있다. 반면에 매일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상 속에서 더욱 날카로워지는 감각이 있다. 전자로 인해 점점 틀에 박힌 발상만 하게 되고 자유로운 창작을 할 에너지를 잃는다. 하지만 후자 덕분에 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게 되고 새로운 글감을 얻기도 한다.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면, 회사라는 천적이 주는 긴장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쓰고 싶은 글들의 목록을 늘려 나가야 할 것 같다. 동시에 그 글감을 글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 체력과 정신력 전부를 회사에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섬세해져야 한다. 마치 아가미를 자유자재로 여닫는 물고기처럼. 새로운 경험과 감각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되 원치 않는 스트레스는 적극적으로 차단하면서 스스로에게 글 쓸 ‘여력’을 벌어 줘야 한다. (써 놓고 보니 대단히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역시 나한테만 어려운 게 아니었어!)
앞서 말한 즉문즉설에서 법륜스님이 “그러니까 저절로 우러나오는 글만 쓰세요, 억지로 쓰려고 하지 말고.”라고 말하며 답변을 마무리하려 할 때였다. 질문자는 다급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음… 제가 차라리 몸으로 일하는 직종으로 바꾸면 좀 낫지 않을까요?”
법륜스님과 청중은 그 말에 크게 호응하지 않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공감했다. (아아 저도 똑같은 생각 해 봤어요...) 동시에 그녀에게 아주 큰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당신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당신만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어준다면, 당신은 어떻게든 글을 쓸 사람이에요. 그러니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이 모든 피로와 매일의 곤경 속에서도, 써 봅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