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리면 안 쓸 거예요?
다시 나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시간
책 소개 방송을 듣다 에세이 두 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책 소개를 듣는 것과 구매 결정을 내리는 데에 십오 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고 궁금해하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엉엉. 이런 걸 보면 역시 저자가 매력이 있어야 잘 팔리는 에세이가 되는가 보다.
좋은 글은 무엇일까.
좋은 책은 무엇일까.
좋은 콘텐츠란 무엇일까.
책을 낸 이후로 계속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현재까지 정리한 결론은 많이 팔리는 책이 꼭 좋은 글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 그렇지만 많이 팔리는 책은 (내 선호와는 상관없이) 어느 정도는 좋은 콘텐츠이긴 하다는 것이다.
한동안 서점가를 강타한 캐릭터 에세이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뭐 이런 책을 사서 보냐고 생각했다. 공자 맹자를 이야기하는 곰돌이 푸라니, 말이 되냐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펴서 곰돌이 푸가 이야기하는 성현의 말씀을 읽다 보니 하루 종일 회사에서 전투 모드로 성나 있던 마음이 곰돌이 푸 인형 궁둥이처럼 부들부들 해지는 게 아닌가. 나는 그날 이후 읽어보지도 않고 가벼운 책이겠거니 섣불리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책은 좋은 글의 묶음집이기도 하지만 만 삼천 원짜리 부적이기도 하다. 힐링, 위로, 위안은 아무리 많아도 넘치지 않는다. 서점을 걷다 책 제목에 ‘이건 완전 내 이야기’라고 위로를 받는 것, 계속 그 책 근처를 서성거리다 결국 만 삼천 원을 지불하고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 소장하는 순간 왠지 마음이 뿌듯하게 차오르고 내일은 오늘보다 괜찮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보게 되는 책. 그런 책은 글 한편 한 편이 빼어나진 않더라도 좋은 콘텐츠임이 분명하다.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좋은 콘텐츠(라고 쓰고 잘 팔리는 콘텐츠라고 읽는다)를 생산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결국은 그게 그거 아니야? 싶지만 분명 다르다. 잘 쓴 글이지만 굳이 내 지갑을 열고 사고 싶진 않은 글도 있다. 글을 잘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부적처럼 내 가까운 곳에 두고 싶은 콘텐츠도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서점에 갔을 때, 나는 유명 소설가가 쓴 에세이와 매우 잘 쓴 평론집을 제쳐두고 한 신인 작가의 에세이집을 사 왔다. 왜냐면 그녀가 너무 궁금했고, 비슷한 나이대의 그녀가 쓴 글이 내 상황에 가장 힘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가 내 책을 그렇게 사고 싶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잘 팔리는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걸까. 그러려면 작가 개인이 매력이 있으며 시대가 원하는 주제를 다루되 동시에 차별화가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유니크하되 수용 가능하고 팔릴 만한 유니크함! 그건 마치 '꾸안꾸' 급으로 어렵다. 꾸민 듯 안 꾸민듯한 룩이 실은 고도로 공들인 스타일링인 것처럼, 깊은 고민과 계산 끝에 매력적인 콘텐츠가 나오는 것인가 싶다.
그렇지만 좋은 콘텐츠, 팔리는 콘텐츠가 되지 않으면 글을 쓰는 의미도 없는 걸까?
많이 팔리거나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너무나 좋아하는 책 몇 권이 있다. 그런 책의 존재는 책이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을 때 나를 붙들어 주는 주문 같은 것이 되었다. "괜찮아, 000 책도 진짜 좋은데 잘 안 팔렸잖아." 요즘 붙들고 있는 이야기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초판 600부가 팔리기까지 8년이 걸렸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팩트 체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일부러 하지 않고 있다.
평소엔 이런 주문들을 외며 초연하게 지내다가도 이게 맞는지 아닌지 영 갑갑해진다. 충동적으로 강남역에서 타로카드를 봤다. 첫 책을 냈는데 반응이 별로 없다고, 두 번째 책을 낼 수 있을지, 안 팔려도 내는 게 맞을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타로 봐주는 분이 무심한 듯 타로카드를 섞으며 말했다.
"근데, 안 팔리면 안 쓸 거예요?"
그 말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 계속 쓰긴 쓸 거예요."라고 대답하고는 스스로 내가 한 말에 깜짝 놀라서 오 방금 나 좀 멋있었지 하고 생각했다. 안 팔려도 써! 그냥 써 계속! 이 얼마나 시지프스 같은 자세야. 어쨌든 쓴다. 안 팔려도 쓴다. 잘 팔리는 운때가 오지 않아도 쓴다.
그런데 왜?
왜 쓰려고 하지?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왜’에 대해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장맛비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노트에 오늘 타로카드를 봤던 일과 그래도 쓰겠다고 말하던 순간에 대해 썼다. 마음속 생각들을 계속해서 백지 위에 풀어놓았다. 하루 종일 들끓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순간 조금은 답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다 보면 내 주변의 거칠고 지직거리는 소리에 주파수를 맞추게 된다. 남의 목소리, 사회의 목소리,
권위자들의 목소리, 내가 생긴 바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소리들. 사는 것은 고단하고 피곤한 일이라 그냥 그 소음을 기본 세팅값처럼 나도 모르게 틀어놓게 된다.
글쓰기는 다시 사려깊게 주파수를 돌려 나에게 맞추는 일이다.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내 눈으로 바라본 사랑하는 이들, 진짜 슬픔과 고통과 진실 쪽으로 다시 나의 중심을 옮겨 놓는 일이다.
그렇게 나에게 주파수를 맞추며 타닥타닥 글을 쓰는 순간, 세상의 소음이 걷힌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좋은 글, 좋은 책, 좋은 콘텐츠가 뭔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다. 답 따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정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영영 '팔리는 콘텐츠’는 만들 수 없을지라도, 나는 노트를 열고 오늘을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