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만의 글쓰기 루틴 만들기

by 몽돌

“매일 하면 직업이다. 매일 쓰면 작가다.”


처음 이 말을 만났을 때의 전율을 기억한다. 그렇지,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사람만 작가가 아니라 매일 쓰는 사람이 작가인 거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일 조금이라도 쓰기로, 그리고 매주 한 편의 글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글쓰기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꽤나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힘이 들어가는 일을 최대한 힘을 덜 들이고 하려면 그 일을 습관으로 만들면 된다고 했다. 나는 글쓰기를 습관처럼 만들기 위해서,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노력해왔다.


그렇다. 노력해 왔다는 건 여전히 잘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엔 주중 퇴근 후에 글을 썼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서 혹사당한 몸을 집에 돌아와 다시 모니터 앞에 앉히는 것은 어지간한 의지력으로 쉽지 않았다. 내가 찾은 방법은 달달한 아이스 초코를 마시거나 짭짤한 포카칩을 계속 입에 넣어 주는 것이었다. 퇴근 후 글쓰기 원고가 한 편 한 편 쌓이는 만큼 뱃살이 나왔고 속이 더부룩해졌다. 퇴근 후 글쓰기는 건강의 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엔 회사 점심시간에 점심을 샌드위치로 떼우며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워드 창을 작게 띄워 놓고 몰래 글을 쓰고 있으면 내 뒤로 양치컵을 가지러 온 부장님이 왔다 갔다 하며 내 모니터를 봤다. 뒤에 오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워드 창 속 글씨체는 점점 작아져 내 눈에도 안 보일 지경이 되었다.


안되겠다 싶어 다음 점심시간부턴 회사 프린터기에서 A4 용지를 한 장 빼내어 그 위에다 글을 썼다. 이번에는 커피를 사 온 차장님이 “아니 점심에 뭘 그렇게 열심히 해?”하고 내 종이 위에 얼굴을 드밀어 재빨리 팔꿈치로 가렸다. 아… 한눈에 못 알아보게 영어로 써야 하나? 아님 톨킨의 문자처럼 나도 내 언어를 만들어야 하나?





결국, 다시 퇴근 후에 글을 쓰게 되었다. 항상 내 결심은 금요일 저녁에 괴발개발 쓴 초고라도 일단 완성하는 것이다. 그래야 주말 내내 초고 하나 못 썼다는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와 내 침대를 보면 널브러져 와식생활을 하고 싶기 마련이고… 그렇게 잠깐 누워 뒹굴거리다 잠깐만 봐야지, 하고 유튜브를 틀면 게임 끝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잘 시간이 되어 있다.


주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중에 난장판이 된 집안을 치우고 주중에 못 만난 친구를 만나고 주중에 못한 운동을 하고 나면 어느덧 토요일 밤. 아, 불안감이 밀려온다. 오늘의 나는 얼렁뚱땅 살았지만 내일의 나는 글쓰기 의지가 충만할 것이라 믿는다. 이런 식으로 글쓰기는 일요일 점심으로, 저녁으로 미뤄지고... 자체 마감 기한인 일요일 저녁이 되면 이제껏 팽팽 논 나를 탓하고 나의 재능 없음을 탓하고 글감 고갈을 탓한다. 하지만 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일 뿐이다.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꾸역꾸역 글 한 편을 써낸다.


이렇게 주말 내내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하며 노는 고등학생처럼 사는 나를 보면서 P는 이해가 안된단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서 써야 돼? 그냥 안 쓰면 안 돼?”

나는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그러게 말이야, 대체 왜 이렇게까지 쓰려고 할까?






나이를 먹으며 배운 것 중 하나는 의지력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금요일에 초고 한 편을 써내고 싶어서 모 독립서점에서 하는 금요일 글쓰기 모임에 등록하기로 했다. 모여서 각자 자기 글을 쓰고 쿨하게 헤어지는 모임으로, 회비는 한 주에 만 원이었다. 처음 수업을 간 날에야 알았다. 회사에서 서점까지는 장장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 것을……


금요일 퇴근길 지하철 2호선에 끼인 채 두 시간을 달려가 한 시간 반 글을 쓰고 다시 한 시간 반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온다. 이건 좀 시간 낭비 아닌가 싶었지만, 마침내 서점의 문을 열고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글을 쓰기 위해 돈까지 내고 ‘셀프 글감옥’을 찾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이 속에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일곱 시 반이니까 저희 글쓰기 시작할게요. 아홉 시까지 자유롭게 써 주세요.”


서점지기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타닥타닥 노트북 타이핑을 시작했다. 나도 얼결에 첫 문장을 썼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문장을, 검열없이 세 번째 문장을 썼다. 네 번째 문장을 쓸 때쯤 나도 모르게 내 글 속에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잠수해 있을 땐 세상의 온갖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물속에서 글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다시 찰방, 하고 물가로 올라와 옆 사람의 타닥타닥 글 쓰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숨을 고르다 다시 첨벙, 하고 잠수해 들어갔다.


금요일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혼자 쓸 때보다 길게 잠수할 수 있었다. 혼자 쓸 때 나를 괴롭히던 자기 검열을 앞사람의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 막아주었다. 여러 사람의 타닥타닥 타이핑 소리를 들으면 산만하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날 초고 한 편을 다 쓰고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와, 정말 너무 좋다! 이 모임 영원히 안 없어졌으면 좋겠다! 매주 와야지!


말이 씨가 되었는지, 그 다음 주부터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져 글쓰기 모임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여정 중이다.


요즘은 아침에 20분 일찍 일어나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6시 40분에 맞춘 알람이 야속하게 울리면 그리스 신화 속 우주를 짊어진 아틀라스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렇게 몸을 질질 끌고 가 노트북 앞에 앉힐 때면, P의 질문- “아니 꼭 그렇게까지 써야 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그런데 또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시간이 줄어드는 걸 아까워하며 쓴다.


글쓰기는 꼭 헬스장 같아서, 그 앞까지 가는 게 어렵지 막상 들어가면 항상 좋다. 나는 내가 좀 더 망설임 없이, 수월하게 그 헬스장까지 입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길을 닦아 놓는다. 디자인이 예쁜 글쓰기 유료 어플을 산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참가한다. 이번엔 언제든지 휴대폰에 연결해 글을 쓸 수 있도록 초경량 블루투스 키보드도 샀다. 너무 가벼운 걸 산 탓인지, 한동안 가방에 키보드가 들어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오랜만에 꺼낸 키보드는 가방 안에 넣어 다니던 초콜릿이 찐득하게 묻어 있었다. 가방 속 짐 더미에 잔뜩 눌린 키 몇 개는 벌써 잘 눌러지지가 않았다.


영화 <패터슨>에서 패터슨은 버스 운전사를 하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에 시를 쓴다. 버스 출발 전 십 분동 안 시 두어 줄을 쓰다가, 동료가 와서 이제 출발 시간이라고 알려주면 시를 쓰던 수첩을 닫고 운전대를 잡는다. 그 영화를 보며 나도 패터슨처럼 생활 속에서 자분자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고 물 마시듯이 글을 쓰고 싶다. 매일 드라마를 보면서 심심해서 아령을 들었다 내렸다 했더니 어느새 무거운 아령도 가볍게 들어 올리게 된 사람처럼 말이다.


한 번도 ‘홈트’에 성공해 본 적 없는 나, <100 문장으로 정복하는 생활영어> 책을 사면 늘 열 문장을 넘겨 본 적이 없는 나는 과연 매일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블루투스 키보드에 묻은 초콜릿을 닦으며 다짐해 본다. 내일은 꼭,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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