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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May 07. 2018

바라는 일상을 만드는 즐거움

'비전화공방' 워크숍 후기

3월 3일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비전화공방 워크숍에 다녀왔다.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일상>이라는 주제로 총 7회에 걸쳐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나는 그중 첫 번째 워크숍, <바라는 일상을 만드는 즐거움>에 참여했다. 이날의 공기와 분위기를 잊고 싶지 않아 기록으로 남긴다. 당시 나는 복직 후 기대와 다른 현실에 허덕허덕하던 차였는데, 아래와 같은 강의 소개를 보니 아니 갈 수가 없었다.


"퇴근하면 녹초인데, 내 생활은 어디 있지?"

"얼마를 벌어야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내 일상을 내 손으로 만들어 꾸릴 수는 없을까?"

자급자족하며 적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궁리를 작당하는 이야기 자리에 초대합니다.



비전화공방은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출처: 비전화공방서울 홈페이지)하는 곳이다. 비전화공방 제작자들은 1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한 농작물로 밥을 해 먹고, 전기와 화학물질을 덜 쓰는 방식으로 직적 집을 짓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 하지만 이 곳의 성격을 단지 '전기와 화학물질을 덜 쓰는 기술을 배운다'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비전화공방 제작자들은 하나같이 도시 속에서 끊임없이 소모되고/소비하는 삶을 벗어나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경험하고 싶어 1년간의 비전화공방 과정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영수증으로만 남는 삶이 아니라 직접 만들고 자립할 수 있는 삶. 그리고 혼자만 잘 사는 삶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갈 수 있는 삶. 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나는 그들이 벗어나고 싶었던 삶이 어떤 것인지, 또 바라는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것 같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떤가요? 매연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야근과 잔업을 밥 먹듯이 하고 있지 않나요? 주 5일 동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거나 반사회적이기까지 한 ‘밥벌이’를 하면서 돈을 법니다. 주중의 ‘자기 희생’을 보상받고 ‘사회적 속죄’를 하기 위해 주말에는 취미 활동을 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자원봉사 등으로 ‘더 바쁘게’ 보냅니다.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더 쌓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더 자극적인 주말 활동이 필요하고 결국 돈이 더 필요해 주중에 더욱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 일본 비전화공방 설립자이자 한국 비전화공방의 '센세'이기도 한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책, <30만원으로 한 달 살기> 중에서


이날 워크숍에서는 비전화공방 1기 과정을 마친 제작자 세 분이 패널로 나와 간략한 비전화공방 소개와, 그동안의 소회, 그리고 1년의 과정을 마치며 느낀 '행복하고 적당하게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약하자면 1) 자기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2) 실제로 그렇게 살려고 해 보는 것,  그리고 3)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 나가면서 지출을 줄이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이 중 자급력과 지출에 대해서는 그날 적어 놓은 메모 내용을 소개한다.


모델 1. 낮은 자급력, 높은 지출, 지출을 커버하기 위해 높은 수입이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자유시간이 없어진다. 자유시간이 없기에 자급력을 키우기 어렵다.
모델 2. 자급력을 높이면 지출이 줄어들어 적은 수입으로도 생활이 가능해진다. 자유시간이 많아지고 자급할 여력이 늘어난다.(물론 수입과 자유시간이 반드시 반비례하진 않는다)


그런데 모델 1에서 모델 2로 나아가는 과정이 힘들고 불편하거나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것처럼( 감히 '처량하게'라는 말을 붙여 본다) 느껴진다면 새로운 삶의 모델이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지출을 줄인다'고 생각하면 행복할 수가 없다. '자급력을 높여서' 지출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이 자급력을 높이는 과정은 '새로운 풍요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설명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비전화공방에서는 새로운 비전화 제품, 예를 들어 햇빛 건조기나 친환경 변기 등을 제작할 때 만드는 과정도 아름답게, 물건 자체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중시한다고 했다. 이 제품에 어떤 색을 칠해야 사람들이 이 물건을 아름답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지 하루 종일 논의한 적도 있다고.


강의실 뒤편에는 '내가 바라는 삶은'이라는 주제로 포스트잇을 붙이는 란이 있었다. 워크숍 중간 쉬는 시간에 살펴본 포스트잇 판에는 나와 다르지 않은 고민들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나 비슷한 고민을 갖고 사는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사람과 자연과 어우려져 살면서 내가 가진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즐기는 것' 우리는 다 비슷한 바람을 안고 산다.
내가 쓴 '내가 바라는 삶'. '생계를 위한 일을 넘어 나 자신과 사회에 의미가 있는 일을 하기'


워크숍 마지막은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사실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1년의 과정을 마치셨는데, 그동안 정말 무엇을 얻었나요? 이제 앞으로 뭐해서 먹고 사실 건가요?

나는 이 말을 세련되고 우아하게 포장해서 질문하려다 그만두었다. 내가 하려던 질문이 내가 휴직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묻던 질문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휴직하면 좋아? 일년씩이나 쉬면서 뭐 했니? 이제 뭐할 거야?


꼭 무엇을 하면, 그 결과로 아주 좋은 무엇을 얻거나 그 전과 다른 훌륭한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그게 가치관의 큰 변화든, 새로운 진로든, 먹힐 만한 비즈니스 모델이든. 꼭 그런 것들을 얻어야만 궤도 밖의 시간들이 가치가 있는 게 되는 걸까. 남들이 보통 가는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너는 이만큼의 시간을 투입했으니 남다르고 유별난 어떤 아웃풋이 나오겠지' 하고 쳐다보는 팔짱 낀 사람들의 기대가 싫었는데 내가 어느새 그러고 있었다.

이제 내가 그런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든 입장이 되자 나한테 그런 걸 묻던 사람들도 별다른 악의는 없었음을 깨닫는다. 단지 그들은 자기가 안 가본 길이 궁금했고, 직접 부딪혀서 해 볼만한 여력은 없고, 궁금증을 해소할 가장 간편한 방법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비전화공방은 최근에 2기 비전화공방 제작자 모집과 선발을 마쳤다. 나는 1년 동안 풀타임 제작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제작자 과정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신없는 도시 서울 어딘가에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힘이 난다. 그들에게 누군가는 몽상가라고 할 테고, 누군가는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할 테고, 누군가는 그래서 그게 돈이 되냐고 물을 테지만 괜찮다. 남들이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다정하고 상냥한 공동체가 어딘가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제작자로서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도시 속에서 적당하게 사는 법을 다루는'적당 포럼' 같은 주말 워크숍은 참가해 보고 싶다. 비전화공방의 행보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아래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하거나 뉴스레터를 구독 신청하기를 추천한다.


http://noplug.kr/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08112145005&code=900370

 * '바라는 삶' 포스트잇 및 제작자 인터뷰 화면은 MBC '세상기록48'(20180308 방송)에서 가져왔다.




 새로운 Brunch 매거진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을 열었다. 제목은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앙드레 말로) 에서 가져왔다. 오랫동안 좋아해 왔던 말이다. <퇴근길 마음 챙김>이 명상, 지금/여기에 깨어있기, 자기 돌봄에 대한 이야기라면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은 현재의 삶, 그리고 바라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정말 언젠간 그 꿈을 닮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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