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피지 못하고 스러져 간 소중한 생명
최근 한 무인점포에서 벌어진 사건은 단순히 ‘절도’라는 법적 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가 개인의 일탈을 어떻게 바라보고 제재하는가를 되짚게 하는 사례였습니다. 한 여학생이 잘못된 선택을 했고, 일부 어른들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CCTV 화면을 공유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선과 조롱 속에서, 아직 미성숙한 학생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렀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절도는 분명 잘못입니다. 그러나 사적제재 역시 또 다른 폭력이며, 법적으로도 금지된 행위입니다. 사회학적으로 보았을 때, 근대국가는 법적·물리적 폭력을 독점하는 결사체입니다. 장정일 작가가 말했듯,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 결사체”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개인이 처벌의 권한을 행사하는 순간, 공동체는 쉽게 감정적 복수와 집단적 응징의 소용돌이로 빠져듭니다. 이는 근대적 법질서가 막고자 했던 바로 그 지점입니다.
종교적 관점 또한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에게 돌을 들고 모여든 군중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결국 사람들은 돌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누구도 완전히 ‘무결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타인을 판단하고 응징하는 일에 앞서 겸손해야 한다는 윤리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학생이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비난보다 먼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고, 책임보다 먼저 배움의 기회를 가져야 할 나이였습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비극을 ‘2차 피해의 구조’로 설명합니다. 일탈행위를 저지른 개인보다, 그 개인에게 가해지는 낙인·조롱·추적이 훨씬 더 강력한 상처를 남기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약점과 순간적인 어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적제재는 정의가 아니라, 공동체의 감정이 휘발된 폭력일 뿐입니다. 최소한의 인간애가 있다면, 돌팔매질은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법은 국가가 집행해야 합니다. 공동체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생명은, 그 어떤 실수보다도 먼저 존중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