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결정론을 넘어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AI를 배격하는 이들을 보면(예컨대 “이거 AI로 쓴 글 아니야?”라며 글쓴이를 낙인찍는 태도 등) 문득 산업혁명기의 러다이트 운동이 떠오른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반발의 역사다. 그러나 기술이 세상을 일방적으로 규정한다는 기술결정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오히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채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방향이 갈라져 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
글쓰기만 보아도 그렇다. 언어모델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소재를 발굴하고, 글의 구조를 설계하며, 최종적인 어조를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AI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정작 내가 원하는 글에 도달하지 못한다. 반대로 초안을 내가 쓰고, 세부적인 다듬기를 AI에게 맡긴다면, 그때 AI는 훌륭한 조력자이자 편집자가 된다.
결국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주체’가 아니라, 인간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이 맺는 관계이다. 기술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러다이트가 증기기관을 부쉈다고 산업화가 멈추지 않았듯, AI를 외면한다고 시대의 흐름이 멈추어 주지는 않는다. 기술결정론의 단순한 도식을 벗어나, 기술을 둘러싼 인간의 선택과 실천을 더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