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 '스레드'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보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 브랜드를 많이 쓴다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꾸짖는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시각은 지금 시대와는 꽤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습니다. 사무엘 헌팅턴이 ‘문명 간 충돌’(clash of civilizations)을 강조했듯, 국제 관계는 감정보다는 구조와 이해관계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패권국 사이에 놓여 있으며, 이 지역 질서 역시 역사적 감정과는 별개로 철저히 전략적 계산 위에서 작동합니다. 그렇기에 한국 외교의 핵심은 현실 인식에 기반한 실리와 균형입니다. 특정 국가를 영구한 적대나 도덕적 기준으로 고정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일본과 물밑 협상을 진행하기도 하고, 필요하면 중국과 협조하기도 하는 유연성이 요구됩니다.
또한 소비와 생산의 영역에서 국경은 이미 오래전에 희미해졌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 WTO 체제 이후 세계 경제는 공급망 중심으로 재편되었지요. 이를테면 원자재는 제3국에서 들여오고, 부품은 일본에서 수입하고, 최종 조립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렇게 제조와 공급의 과정이 촘촘하게 연결된 시대에 특정 국가의 제품을 ‘국가 정체성’과 동일시하며 금기시하는 태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글로벌 체제에서는 상품의 국적보다 효율과 기능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제품 소비를 비난하는 일부 담론은 말과 행동의 간극을 드러내곤 합니다. 일본을 극단적으로 악마화하면서도 뒤로는 일본 여행을 다녀오거나 게임기·의류를 사용하는 이중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태도는 역사적 성찰이라기보다 선택적 분노에 가깝습니다. 역사를 기억하자는 말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소비 선택을 규탄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그 담론은 설득력을 잃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차분한 구조 인식과 성찰된 현실 감각입니다. 감정의 정치가 아니라, 성숙한 시민적 판단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