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왜 숨막히는가?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 무라, 토나리구미, 그리고 한국의 공간들

by 에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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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 '스레드'의 한 유저 분은 일본의 '무라'와 한국의 시골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금번 글은 이 글에 영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오노 후유미의 《시귀》, 유명 동인 게임《쓰르라미 울적에》, 만화《히카루가 죽은 여름》.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일본 시골, 즉 무라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 속 인물들이 모두 이 ‘닫힌 사회’의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꿈꾼다는 사실입니다. 《시귀》의 메구미는 자신을 백안시하는 마을 분위기에 지쳐 도쿄를 동경하고, 《쓰르라미 울적에》의 시온은 고향을 벗어나 옆 마을을 생활 기반으로 삼습니다. 《히카루가 죽은 여름》의 주인공 역시 ‘타지 사람’인 어머니 때문에 동네 사람들의 시선과 소문에 휘둘리며 불안에 시달립니다.


닫힌 사회의 특징은 흔히 ‘계층 이동의 제약, 외부 영향의 차단, 개인의 신념과 선택에 대한 억압’으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일본의 무라는 왜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까요?


일본 농촌사회 연구자인 나가노 유키코(센슈대 교수)는 ‘무라’라는 개념이 에도 시대에 정착했다고 설명합니다. 원래의 무라는 생존을 위한 실용적 공동체였습니다. 농업에 필요한 물, 땔감, 비료, 사료 등 마을 단위로 확보해야 하는 자원이 많았고, 이를 둘러싼 갈등을 막기 위해 규칙과 합의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합의는 세대를 넘어 전승되며 ‘협력과 상호부조’라는 공동체적 덕목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전쟁기에 완전히 왜곡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는 전국적으로 ‘토나리구미(隣組)’라는 이웃 단위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는 마을의 상호부조 기능을 통제·감시 체계로 전환한 것이었습니다. 토나리구미는 주민을 감시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나가노 교수는 토나리구미가 “무라의 본래적 덕성과는 정반대 위치에 있다”고 말합니다. 전후 일본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무라는 ‘개인을 억압하는 부정적 집단성’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사회의 집단주의적 분위기와 맞물려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제 질문을 한국으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시골은 열린 사회일까요, 닫힌 사회일까요? 한국 농촌 역시 강한 공동체성과 상호 감시라는 측면에서는 일본의 무라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면서 공동체 구조가 해체된 속도도 더 빨랐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농촌은 완전히 폐쇄적이기보다는 ‘남아 있는 공동체성과 빠른 변화가 공존하는 반(半)폐쇄적 공간’으로 보는 편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도시는 어떨까요? 표면적으로는 도시가 가장 ‘열린 사회’처럼 보입니다. 익명성, 이동성, 직업군의 다양성, 외부 개방도 등 모든 지표가 개방성을 향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국 도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인을 구획합니다. 학벌, 직장, 주거 지역, 소비 패턴 등이 빠르게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며, 이는 새로운 형식의 폐쇄성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열린 듯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닫혀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일본의 무라, 한국의 시골, 한국의 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경계 위를 오갑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공간이 더 낫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 구조 속에서 어떤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는가일지도 모릅니다.


참고자료: Asahi Shimbun (2024, June 15). Drama works show negative effects of closed communities. https://www.asahi.com/ajw/articles/14905316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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