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회색지대는 존재하는가?
※ 이 글은 전계운 한국 미제스연구소 소장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하였습니다.
저는 사회학도로서, ‘이데올로기’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소 순진한 이상주의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듯, 이는 결국 헌법 1조 2항이 선언한 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를 확장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 믿음 아래 다양한 사회운동을 경험했습니다.
좌파 지식인 홍세화 선생과 함께한 대안세계화 포럼, 알바연대 활동.
반대로 새누리당 대학생위원회에서의 활동,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조국 전 장관 규탄 시위 참여.
그리고 최근의 정릉골·신월곡 1구역 재개발 간담회까지.
좌와 우를 모두 거치며 몸으로 배운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미 어떤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으며, 결국 중요한 질문 앞에서는 ‘택일’을 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자유냐, 통제냐? 개입이냐, 시장이냐? 우리가 회색지대를 꿈꾸지만, 실제 의사결정의 순간에는 늘 선택이 요구됩니다.
미국 자유당 소속 정치인이자 미제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론 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무력을 통해 이상을 퍼뜨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저는 이 경구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데올로기는 늘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드러나는 태도와 실천을 통해 증명되는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사고를 멈추는 순간입니다. 생각을 중단하면, 위정자들이 정해 놓은 길을 아무 성찰 없이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인간은 어느새 선택권을 잃고, 번영의 길이 아닌 ‘예속의 길’(road to serfdom)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제 묻고 싶습니다.
나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신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의사결정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민주주의는 결국, 이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려는 개인들의 연대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