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롤스의 정의론적 관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오래된 격언이지만, 실제 사회 인식과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가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거나, 좋은 대학에 입학해 전문직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랍니다. 그 바람의 밑바탕에는 자녀가 소위 ‘3D 업종’이나 중소기업에 들어가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을까요? 그 핵심에는 “분배정의(distributive justice)”와 “대체가능성(substitutability)”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습니다.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분배정의를 두 가지 원칙으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자유의 원칙, 둘째는 차이의 원칙입니다. 이 중 차이의 원칙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와 일용직 노동자의 급여에는 큰 격차가 있습니다. 만약 두 직업의 보상이 동일하다면, 누구도 의사가 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는 막대한 공부량과 시간, 그리고 개인적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불평등은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로 러시아 등 구(舊) 공산권 국가를 보면, 의료 수준이 자본주의 국가보다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의료인의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의사 지원자의 수가 줄어들고,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의료 수준의 저하는 곧 사회복지의 저하로 이어지므로,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사, 변호사, 대기업 근로자 등 대체가 어려운 직종의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우수합니다. 사회는 이들의 노동이 필수적이며, 그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을 갖는 것이 하나의 절대선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한 인간을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어 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있었던 ‘의료계 대파업’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전문의들이 정부 정책에 반발해 대거 미용의료 시장으로 이탈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들이 다시 대학병원으로 돌아가려 하자, 병원 측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파업을 주도했던 의사 A씨 역시 과거 몸담았던 병원에 재입사를 시도했지만,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사례는 의사조차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이자 동시에 그 효율성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사회는 언제나 개인을 필요로 하지만, 결코 한 개인에게 영구적인 자리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한 인간의 진정한 대체불가능성은 직업의 종류가 아니라, 그가 어떤 태도로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